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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4일 설교 말씀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김은호 목사)

 

[사사기 6:11-16]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하여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지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다. 7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의 압제에 시달림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 말씀하셨고

마침내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셨다.

 

오늘 본문은 기드온이 사사로 부르심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성경에는 12, 사무엘까지 포함하면 13명의 사사가 나온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사를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자기 백성의 구원뿐 아니라 징계도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

사람을 통해서 뜻을 분별하게 하고 깨닫게 하신다.

사람들은 방법을 찾고 프로그램을 찾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부르신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

1.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왔다.

[사사기 6:11]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일까?

[사사기 6:14a]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성육신하시기 이전의 예수그리스도다.

 

아브라함, 모세, 베드로 모두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우리의 부르심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 하나님은 일하는 자를 부르신다.

[사사기 6:11b]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기드온도 열심히 밀을 타작하고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다.

성경을 보면 부르심을 받은 자는 한결같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다.

빈둥거릴 때 부르심을 받은 자가 없다.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 일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을 너무나 싫어하신다.

게으름은 하나님 앞에서 악함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지금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때가 되면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쓰지 않으신다.

지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부르신다.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때 부르신다.

 

[사사기 6:12]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큰 용사여!

큰 용사는 강한 힘을 가진 용사를 말한다.

기드온은 과연 큰 용사일까?

기드온의 모습은 큰 용사, 강한 용사와는 너무나 멀었다.

 

기드온은 큰 용사가 아니었다.

포도주 틀에 숨어 밀 타작을 하였다.

원래 밀 타작은 넓고 평평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기드온은 좁은 곳에서 밀 타작을 하고 있다.

[사사기 6:11b]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기드온은 미디안과 대적할 용기가 없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청년이었다.

 

하나님께 항변하였다.

[사사기 6:13:a]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하나님께 따진다.

 

[사사기 6:13b]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반복된 우상숭배의 죄로 징계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영적으로 어린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가 처한 현실과 상황만을 중요시 생각한다.

이것을 보게 되면 기드온은 영적으로 볼 때도 큰 용사가 아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나약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계속하여 표징을 구하였다

[사사기 6:16]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은 이런 약속의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기드온은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표징을 구한다.

[사사기 6:17]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기드온이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 올려놓고 국을 쏟아부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의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로부터 나와 불살랐다.

확실한 표징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또다시 표징을 구한다.

[사사기 6:37]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정말 그렇게 되었다.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그 주변은 말라있었다.

이쯤 되면 항복해야 하는데 또다시 표징을 구한다.

이번에는 반대로 양털은 마르고 주변 땅에 이슬이 있게 해달라고 또 표징을 구한다.

하나님께서 또 그렇게 해주셨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이렇게 여러 차례의 표징을 요구했다.

이것을 보게 되면 기드온은 굉장히 의심이 많고 연약한 사람이었다.

 

두려워하여 밤에 우상을 파괴함

[사사기 6:27b]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기드온은 큰 용사가 결코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럼 하나님은 왜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말씀하셨을까?

[사사기 6:12b]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사기 6:16]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우리 하나님은 용사이신 하나님이시다.

[출애굽기 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전쟁에 능하신 분이다.

누구라도 큰 용사인 하나님과 함께 하면 큰 용사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소심한 사람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르다

[사사기 6:15b]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기드온은 자신을 극히 약하고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정 반대로 큰 용사라고 말씀하신다.

 

왜 평가가 이렇게 다를까?

그것은 평가의 방법과 기준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평가할 때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지금 처해 있는 상황만 가지고 평가한다.

스펙, 현재의 연봉, 수익, 생활의 환경을 가지고 평가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신다.

맡겨 둔 소명에 따라서 평가하신다. 하나님을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평가하신다. 미래의 가능성을 보시고 평가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부르심의 목적과 사명을 미리 말씀하셨다.

 

[창세기 12:2]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나이가 75세였다. 자식도 없는 무명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를 부르실 때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으로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마침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으로 만드셨다.

 

[요한복음 1:42b]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시몬은 흔들리는 갈대를 말한다.

게바 곧 견고한 반석으로 세워주신다고 한다.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베드로를 한 어부로 평가하지 않으셨다.

견고한 반석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로 평가하셨다.

 

이렇게 내 자신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다르다.

그렇다면 누구의 평가가 맞을까?

우리는 누구의 평가를 받아들여야 할까?

 

내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다.

나의 평가가 가장 맞는 것 아닐까?

그렇지만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내 안에 주님이 거하고 있다면

내 자신의 평가보다도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만이 가장 공평하고 의로우신 분일 뿐 아니라 가장 온전하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당신은 남자답고, 담력 있고, 해병대 출신이고, 당신은 강한 자야라고 말해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평가하실 때 너는 비겁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다.

 

아무리 어떤 사람을 향해서 당신은 복받은 사람이라 말해도 하나님께서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평가하시면 그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다.

 

사람의 눈에는 굉장히 불행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시면서 너는 행복한 사람이야 하고 말씀하시면 누가 뭐라 해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기드온은 마침내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큰 용사로 나갔다.

300명의 용사를 데리고 나가서 미디안의 135천의 군대를 여지없이 물리치고 승리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큰 용사다.”

 

내 눈에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 있고 함께 싸워주신다면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용사입니다.

그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이고 믿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