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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1 22:46

20180921일 금요기도회

 

하나님의 탄식 (김은호 목사)

 

[창세기 6:5-7]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한탄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의 탄식

[창세기 6:6]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특별하게 지으시고 좋으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한탄하사 근심하셨다고 합니다.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한탄 (나함) = 뉘우치다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후회하셨다거나 유약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계획을 후회하신다면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시고

근심 = 슬퍼하심, 마음 아픔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이사야 43:21]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목적대로 생활할 때 가장 안정적이고 평안합니다. 그때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립니다.

 

[에베소서 2:10a]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임명받은 우리 인간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상황을 우리가 쉽게 이해하게 표현하신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신인동형동성적

신학적으로는 신인동형동성적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뉘우치시고 후회하신다는 겁니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간의 언어적 영역으로 옮겨 놓은 겁니다.

 

하나님의 탄식이 주는 교훈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고 슬프게 한다.

하나님은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 때문에 탄식하고 아파하십니다. 우리도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간다면 마음 아파합니다. 관계 때문입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있지만 내 삶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죄악이 하나님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하나님의 후회, 탄식, 아픔, 눈물은 우리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탄식을 먼저 하십니다. 관심이 없다면 탄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6:5]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탄식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그냥 무심코 보신 것이 아니라 주목하여 진단을 내리시면서 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죄악도 많아졌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실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10-12]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의인이 없습니다. 아무리 저 사람은 법 없이 살아갈 사람이라도 겉으로 죄는 없을지라도 그 마음속에는 죄악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3:13-15]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겉으로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보여도 하나님은 생각을 보시는데 그 어떤 사람도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17:9a]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대하 16:9a]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하나님은 드러나는 죄만 보시는 분이 아니시고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생각, 죄의 뿌리까지도 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이라고 합니다.

 

[요한13:15a]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우리는 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내가 칼로 돌로 무기로 사람을 쳐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닙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감정, 생각도 살인입니다.

 

[마태복음 5:28]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살을 맞대고 관계를 맺지 않았어도 마음에 음욕을 품고 바라보면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의 죄의 뿌리까지 보십니다.

 

[야고보서 4:8]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두 마음을 품은 것까지도 아십니다.

 

[예레미야 16:17]

17.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

 

누구도 하나님의 눈동자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인정받으려는 것인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늘 저울에 달아보십니다. 결과보다 동기와 과정을 더 중요시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창세기 6:7]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인간뿐 아니라 죄 없는 모든 동물까지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공의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주는 교훈

하나님은 창조물을 다 쓸어버리실 만큼 죄를 미워하십니다.

[창세기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셨으면 그렇게까지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만큼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잠언 8:13]

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교만, 악한 행실, 패역한 입 이것들은 하나님의 눈에 비춰진 대표적인 악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구호가 아닙니다.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겁니다.

 

인간의 죄는 다른 피조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장차 최후의 심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전 우주에 미칩니다. 사람과 관련된 모든 창조물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인간이 범죄 하니까 더불어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육축과 식물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북한도 우상숭배를 하니 그 땅이 황무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탄식에 대하여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탄식하십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대적하는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하나님을 탄식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시원케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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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22:52

20180914일 금요기도회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김은호 목사)

 

[창세기 6:3]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던 시대와 같이 죄악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

타락한 천사들과 인간들

킹 제임스 번역 성경만이 완전한 성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타락한 천사와 인간이 성관계를 하여 거인족 네피림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평범한 여성과 남성이 관계하여서는 고대의 명성 있는 거인이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로 장가와 시집을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0]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사는 하늘나라의 천사고 네피림을 만든 천사는 타락한 천사라고 그럴듯하게 말합니다.

 

이 세상은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입니다. 성경은 천사의 타락과 기원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천사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일에 킹 제임스 번역과 이단들의 말처럼 타락한 천사들과 인간들이 관계를 맺어서 네피림이 나왔다면 노아의 홍수는 사람이 아닌 타락한 천사를 심판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담의 후손, 사람의 딸들은 아담 이전의 인간

창세기 1장의 창조는 혼적인 인간을 만들었고, 2장에서는 그중에 한 사람을 택하여 생령이 되게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 사람들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

이것이 정통적인 겁니다. 신분이 다르고 생활의 양식이 전혀 다른 후손이 만나서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 점점 믿음을 지키며 살아왔던 셋의 후손이 경건이 사라져 가면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2]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그들은 여인들의 외모, 아름다움만 보고 닥치는 대로 자기 아내를 삼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진노하셨는가? - 성적인 타락

지금도 사람들의 선택이 기준이 외모입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24:38]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그때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기 전까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결혼의 동기와 목적이 잘 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은 생명의 창조를 위해서 그리고 관계를 통한 사랑과 즐거움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성을 즐거움으로만 생각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성적인 타락이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로마, 폼페이 모두 성적인 타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국가가 가정을 지켜야 하는데 차별 금지법을 만들어서 동성연애를 합법화 시키려고 하고 종교 차별법을 만들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역행하는 법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타락한데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타락하겠습니까?

 

[창세기 6:3a]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나의 영은 루하그라고 하는 히브리어로 성령, 생명, 생기, 바람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맥적으로 그 뜻을 살펴야 합니다.

 

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여기서는 성령보다는 생명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하여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실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6:3a]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왜 그들을 생명을 거두는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이런 성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육체가 더럽혀지고 죗성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인간이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친밀한 교재의 대상으로 지으시고 사랑을 나누고 싶으셔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정욕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육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 8:12]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육신은 몸이 아니라 타락한 죄의 본성을 말합니다.

 

왜 육신대로 살면 안 되는가?

1. 빚진 자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8:12]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사도바울이 말하는 빚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그 빚을 갚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로마서 1:14]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은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한 평생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왜 육신대로 살면 안 되는가?

2. 육신대로 살면 죽기 때문이다

[로마서 8:13]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악용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이 있기에 육체의 생각을 따라 살아도 된다는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된다고 합리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연약하여 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는 것은 죄 중에 악질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육신대로 살면 안 됩니다.

 

[로마서 8:14]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우리 안에 성령이 없으면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걸로 끝내시는 게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광야의 인생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 육체의 장막을 벗는 그날까지.

 

그런데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갑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을 파워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시면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고 모든 것이 형통하지는 않습니다. 얻어맞기도 하고 누명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니까 열매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큰 소리로 찬송합니다.

 

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가?

1.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로마서 8:13]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담배, 술과 같은 것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끊을 수 있게 됩니다.

 

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가?

2. 생명과 평안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서 8:6]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생명과 평안이 임합니다. 돈다발 쏟아져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창세기 6:3b]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은 인간의 수명이 120세가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120

베니아 사람들은 인간의 수명을 120년으로 생각합니다. 60년을 살다 죽으면 60년 동안 귀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창세기 8:22]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노아의 홍수 이후에 지구의 엄청난 변화를 통해 인간의 수명이 단축됐습니다.

 

[창세기 11:11-13]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이것을 보게 되면 인간의 수명을 120년을 못 박은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120년 후에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120년은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회개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신 이후에도 120년 동안 심판을 유보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9]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에 강포가 가득해도 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는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이 임하게 하시려고 시간을 주십니다. 이것이 이 땅의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십니다. 심판을 유보하신 것이지 취소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때가 되면 반드시 임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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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7 22:45

20180907일 금요기도회

 

슈퍼맨이 되지 말고 사람이 되라 (김은호 목사)

 

[창세기 6:1-4]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역사를 보면 오늘을 읽을 수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를 보면 지금의 시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 6:1]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사람의 번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복 중에 하나입니다.

 

[창세기 1:28a]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번성은 점점 많아지고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에 계속해서 그 생명이 번성하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9:1]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이 노아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악을 제거하시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7:20a]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번성을 복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92:12]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성경 곳곳에 사람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복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인구 절벽 시대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17조를 쏟아부었는데 결과는 꽝입니다.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고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창세기 6:2]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이 부분에 대한 견해 차이가 많습니다.

 

첫 번째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은 타락한 천사로 인간의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견해는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천사가 아닌 이 세상의 타락한 천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이 시대를 심판하신 것은 천사의 타락이 아닌 인간의 타락 때문입니다. 구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천사는 영적 존재로 장가와 시집을 가지 않는 존재입니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 성별이 없습니다. 인간과 육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담의 후손, 사람의 딸들은 아담 이전의 무리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이중 창조를 믿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성경은 창조와 종말은 희미하게 다루고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희미하게 숨겨 놓으신 창조와 종말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세 번째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은 셋의 후손,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건한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은 사는 패턴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하나님께 속한 자가 있고 세상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셋의 후손들도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셨는가?

1. 성적인 타락

[창세기 6:2]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인들의 아름다운 외모만 보고 마음이 동하면 닥치는 대로 아내로 삼았습니다. 육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불경건한 가인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것인데 단지 육체적 욕망만 보고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마태복음 24:38]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비가 내려서 곧 심판하기 직전인데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갔다는 겁니다. 시집, 장가가 잘 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결혼의 동기와 목적이 잘 못되어다는 겁니다. 결혼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동물적 관계로 더럽혀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생명의 창조

2. 관계가 깊어지고 맺어지는 겁니다.

3.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즐거움만 찾으려고 합니다. 노아의 홍수의 비극은 잘 못된 결혼의 비극이었습니다.

 

우리들 주변을 보게 되면 믿음이 좋은 형제가 얼굴이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자매를 아내로 맺으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바라보고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왜 소돔과 고모라, 폼페이, 로마가 망했습니까? 다 성적인 타락입니다.

[창세기 19:4-5]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관하겠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 성적 관계를 가지겠다는 뜻입니다. 성적 타락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성경을 보거나 인류 역사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에는 언제나 성적이 타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서 동성애를 합법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셨고 둘이 한 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성애는 창조의 질서를 깨트리는 무서운 죄입니다. 동성애는 인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망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정통적인 가정이 파괴됩니다. UN은 계속해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많은 나라에 압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동성애는 배격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동성연애에 빠진 사람들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그들이 동성연애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셨는가?

2. 네피림의 영웅화

[창세기 6:4]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네피림은 힘이 세고 머리가 뛰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지도할 위치에 있던 자 들을 이었습니다. 그 당시 네피림은 좋은 의미가 아니라 악을 행하는 데 있어서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런 네피림을 숭배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네피림은 하나님의 눈에는 비인간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비쳐진 강한 용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이상의 존재를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아내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슈퍼맨이 되지 말고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남보다 강한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슈퍼맨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우리가 그런 인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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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22:39

20180831일 금요기도회

 

이렇게 기도하라 (임권동 선교사)

 

[에베소서 6:18-20]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은 인도에서 사역하고 계신 임권동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저는 인도 중부지역에서 다양한 사역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한 것은 1987년 정도입니다. 선교를 하다 보면 선교사님은 어쩌다가 선교사님이 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청년 때부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가 궁금했습니다. 제가 만난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교는 희생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을까. 우리가 너무나 이분법적으로 선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선교적 존재로 선교사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제가 처음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거의 30년 전입니다. 그때 부르심이 지금까지 저절로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매일 아침 새롭게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또 나를 선교사로 부르셨구나 하는 부르심에 대해 선교사로 살아갑니다.

 

내일은 미스터리입니다. 모릅니다.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시작할 때에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때 내가 여전히 부족하고 충성되지 못하지만 또다시 은혜를 주셔서 부르시고 사용해 주십니다.

 

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강하게 마음을 주셨습니다. 처음엔 20년간 섬기려 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은 더 강한 마음을 주셨고 30,,, 평생을 인도를 위해 섬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대로는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주시길 기도드렸고 주님이 주신 두 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로 살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두 아이가 선교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역은 저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열병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왜 나 같은 사람을 보내셨습니까? 능력 있는 자를 보내셔서 현장에서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왜 저를 보내셨습니까?”

 

그러나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다. 너는 내가 보낸 곳에 서 있으면 된다.” 이 말씀 때문에 결국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하는 선교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과 동역자를 통해서 선교를 해 나가시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영광된 목적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만 죄 된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팀 사역을 하라고 하십니다. 단호하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 조건을 달았습니다. 이 팀 사역은 제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셔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책임지십시오. 문제는 생겼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올려드렸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처음 만난 고난은 열병이었습니다. 3일 째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이런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집이 검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검은 장막을 치우시며 울타리를 쳐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울타리가 쳐지던 소리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바닥까지 울타리를 쳐 주셨습니다. 열병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를 책임지십니다. 여러 가지 영적인 치열한 전쟁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키시지만, 하지만 정말 치열하게 전쟁했던 것은 내부적인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비의 집을 떠나서 선교 현장으로 나갑니다. 그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지키고 간직하고 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떠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보여주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떠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운동경기에서 힘이 들어가면 실수가 나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 선교는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교를 나를 위한, 교회를 위한, 선교를 위한 선교를 할 때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출발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고민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영혼을 위해서 나누어 주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기도를 합니다.

[에베소서 6:18-20]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갇힌 자의 모습으로 이 글을 섰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갇힌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자기를 감옥에서 건져주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밤에 우리가 기도할 때 다시 한번 열방을 품고 이제는 보내는 선교사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선교적 존재로 나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집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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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4 23:09

20180824일 금요기도회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라 (김은호 목사)

 

[시편 16:7-9]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오늘 시편 16편의 강해를 마치려고 합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다윗의 첫 번째 고백이 나를 지켜주소서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다윗이 달랐던 것은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께 피하였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시편 16:2]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 건강, 자녀도 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복의 열매만을 복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진정한 복은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나님 자신이 내 인생의 복이다. 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하늘에 있는 성도에게는 더 이상 연약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땅 가운데 성도는 연약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완전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시편 16:4a]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괴로움이 더 한다.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 받으려 우상을 숭배하지만 결과적으로 괴로움이 더 한다. 우상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매이게 만든다. 그런데 성령이 운행하시면 그런 묶임이 풀어진다.

 

[시편 16:5]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삶의 이유가 되신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지켜주신다. 내 분깃을 지켜주셔서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하신다.

 

[시편 16:6]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땅이 있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이 있다. 그것은 가정, 직장, 내가 머물러 있는 캠퍼스입니다. 더 나가서 우리의 외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역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아름답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복습이었습니다.

 

[시편 16:7a]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훈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훈계 속에는 책망, 징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간음과 살인죄를 지었을 때 주의 종을 보내어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에게 훈계를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훈계를 하지 않는 부모는 마지막에 반드시 눈물을 흘립니다.

 

[잠언 23:13-14]

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우리의 자녀는 천사가 아닙니다. 타락한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방치하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훈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8]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잘 못된 길로 가는데 징계가 없다면 아직 하나님의 친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우리도 자녀들을 훈계할 때 사랑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비교하지 마십시오.

 

오늘 다윗은 주님의 훈계를 복으로 여겼습니다.

[시편 119:111] (새번역)

111. 주님의 증거는 내 마음의 기쁨이요, 그 증거는 내 영원한 기업입니다.

 

부모의 훈계를 잔소리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6:7]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다윗은 잠들기 전에 자신의 양심을 통해 나를 교훈하셨다고 한다. 우리 안의 성령님은 끊임없이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우리를 교훈하십니다.

 

밤마다라는 것은

지속적인 훈계

인생의 밤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나갈 때 인생의 낯에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인생의 밤을 만났을 때 성령께서 내 양심을 통해 내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밤마다 양심을 통해 훈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시편 16:8]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지금 다윗은 사울 왕에 의해서 쫓겨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때를 물었다. 하나님께 물으면 바로 듣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누리게 될 복은?

첫째, 흔들리지 않는다

오른쪽은 강력한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내 인생에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다윗은 위급한 상황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30:6]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자기를 믿었던 사람들이 배신하여 돌을 들어 쳐 죽이려고 했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그 앞에 모시고 살았기에 그 하나님을 힘입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시편 62:2]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3:6]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은 문제를 보지 않고 상황을 보지 않고,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님을 의식하고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광야의 인생길을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풍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누리게 될 복은?

둘째, 기쁨

[시편 16:9]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돈다발이 쏟아지지 않아도 기쁨을 누립니다.

 

[시편 16:10]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기쁨이 있는 자를 만나면 그 기쁨이 흘러옵니다. 하나님에게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그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내가 그 주님을 모시고 살면 그 기쁨이 자동으로 흘러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 앞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서 그 주님을 찬양할 때에 주님 안에 있는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에게 흘러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그 주님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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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7 22:37

20180817일 금요기도회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김은호 목사)

 

[시편 16:4-6]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우리는 시편 16절을 금요기도회에서 나누고 있습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위기 때마다 하나님에게 피했다. 나를 지켜주소서라고 기도만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피했다.

 

이것이 다윗과 우리의 차이점이다. 우리는 기도만 하고 주께 피하지 않는다. 말씀을 떠나서 우리의 욕심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주께 피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편 16:2]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놀라운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복의 열매만을 가지고 복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그 열매를 뛰어넘어서 하나님 자신이 내 인생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알았다.

 

하나님이 복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복이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고난도 복입니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를 존귀한 자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땅에 있는 성도도 있고 하늘에 있는 성도도 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전투교회, 하늘의 교회를 승리교회라고 말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자신 안에 있는 죗성으로 인해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넘어지고 질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그 안에 연약함이 있습니다.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말합니다. 그럴지라도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면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스바냐 3:17]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가 내 자신을 봐도 한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면서 기쁨을 금하지 못할까 싶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의 피로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관계 때문입니다. 관계는 실제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내 자신을 존귀한 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메뚜기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시편 16:4a]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의지할 대상을 찾아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다윗이 보니까 사람들이 환란의 때에 아무 도울 힘도 없는 우상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하나님께 피하면 복을 받고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다른 신을 따르면 괴로움이 더해진다.

 

왜 우상을 섬기게 되면 더 괴로움이 더할까?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 신에게 매임을 받게 된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묶인 것이 풀리는 자유함이 있다. 하지만 우상의 특징은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얽매이게 하여 매임을 받게 만든다. 이사를 할 때에도 손 없는 날을 찾아서 이사를 하게 한다. 우리는 호기심으로라도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시편 16:4b]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다윗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시편 16:4c]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타로점을 보고 부적을 붙여본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제주도는 지사가 제사를 지내는 초혼관을 하도록 조례를 만들었다. 그런데 원일용 지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래서 제사의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서 매스컴에서 말들이 많았다. 정치하시는 분들 중에 이런 분이 있나 싶었다.

 

[시편 16:5]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다윗이 왜 하나님께만 피하고, 하나님만을 복이라 말하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지 말하고 있다. 여호와가 내 삶의 터전이고 곧 사업하는 모든 목적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시편 23:5]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는데 뒤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게 살아왔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분깃을 주셨을지라도 그 분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내가 잘 간직하고 바르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수고를 했는데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십일조를 약속하시면서 우리 인생에 메뚜기 재앙을 주지 않으시고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내 인생의 산업과 소득이 되어주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분깃을 지켜주신다.

 

[시편 128:1-2]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수고한대로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

 

[시편 16:6]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땅만이 아니라 다윗의 인생 가운데 베풀어주신 은혜를 말한다. 우리에게 줄로 재어준 땅은 가정, 직장, 교회, 학교, 내가 머무르는 곳이다. 내 삶의 현장을 말한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삶의 현장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보다 관점이 중요하다.

 

여러분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곳, 하나님이 세우신 곳,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곳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나 자신을 아름답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겠습니까? 시각을 바꾸시고, 관점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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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22:20

20180810일 금요기도회

 

절망 속에도 돌파구는 있다 (정지운 목사)

 

[예레미야 33:1-3]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강대국의 틈에 갇혀서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33장은 이스라엘의 터닝포인트와 같습니다.

 

[예레미야 33:1]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왕의 죄수들 정치범의 수감소에 예레미야가 갇혔습니다. 사방을 봐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돌파구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1. 말씀이 임하면 역전이 시작된다

[예레미야 33:1b]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두 번째 말씀이 있다는 것은 첫 번째 말씀도 있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32:1]

1.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중요한 것은 시위대 뜰에 갇혀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해 주시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3:1]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정말로 암울한 것은 우리를 짓누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감옥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의 독 안에 든 쥐처럼 현실 안에 갇혀서 절망합니다. 그러나 진짜 절망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겁니다.

 

[디모데후서 2:9]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지금 겪고 있는 고난으로 돌파구가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면 역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여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나 3:1]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 인생의 전반전뿐 아니라 후반전에도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지금도 고난당한 당신을 위해 일하신다

[예레미야 33:2]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창세기 1:26]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주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만 하시고 물끄러미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도 고난을 당하신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향해서 큰 그림을 그리십니다. 내가 그린 그림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그림이 보이지 않습니다.

 

[창세기 39:20-21]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요셉이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을 겁니다. 고난이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의 상황, 절망에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5:7]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절망의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 재물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축소시킵니다.

 

3. 부르짖는 기도가 새로운 간증을 만든다

[예레미야 33:3]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역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부르짖어야만 들으시는지 궁금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원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편 18:6]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하나님은 부르짖지 않아도 들으시는 분이시지만 고난의 때에 정확한 주파수를 맞추시기를 원하십니다. 최악으로 몰고 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기도하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민수기 13:28]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은밀한 일이란 단어가 견고한 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 6:20]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부르짖을 때 아무리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의 일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응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간증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모든 것이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일을 펼쳐 가십니다.

 

우리의 인생에 고난이 찾아왔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레미야 51:54]

54. 바벨론으로부터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도다 갈대아 사람의 땅에 큰 파멸의 소리가 들리도다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7]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절망 속에도 돌파구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역전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현장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다시 한 번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간증의 역사가 일어나는 이 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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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3 23:03

20180803일 금요기도회

 

하나님을 의식하라 (김철호 목사)

 

[사무엘상 7:3-11]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아무리 이리저리 피해도 결국 하나님께 발견된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창세기 17:1]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신명기 18:13]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모든 시대에 적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사이다와 같이 시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구마처럼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최고의 고구마는 누구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받은 백성이지만 늘 하나님께 같은 죄를 반복하여 지으며 하나님께 마음이 갈 듯 갈듯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펴볼 사람은 사무엘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으로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인생

[사무엘상 7:3]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신랑 신부의 관계와 같이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게 사랑하셨지만 백성들은 변덕스러운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관계는 오래갈 수도 없습니다.

[잠언 4:23]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심장이 하나이듯이 마음도 하나이어야 하는데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을 합리화하는 순간 타락합니다.

 

어느 순간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절대 타협해서도 합리화해서도 안 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순간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말과 행동으로 금방 표출되어 드러납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은 마음의 비율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을 조금씩 줄여간다고 한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한마음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스스로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고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향한다는 것은 마음을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아무리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도 둔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은 일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위하여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야만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혹시라도 두 마음을 품었었다면 하나님을 향한 한마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묻어가는 인생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삶은 묻어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사무엘상 7:8]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어떤 공동체에나 묻어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늘 사무엘에게 묻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8절에는 우리라는 말이 3번이나 나옵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 없습니다.

 

[사무엘상 7:6]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눈앞에 어떤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형식적으로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을 때 기도가 중단됩니다. 사무엘을 향해서 우리를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일대 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저희의 인생이 예수님께 묻어가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저희 모두는 덤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묻어간 인생이라고 언제까지나 묻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을 잊어버리는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묻어가는 인생은 한두 번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위기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묻어가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묻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도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도 응답해 주시지만 그들이 직접 나와 눈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삭줍기 인생

[사무엘상 7:11]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이삭줍기 인생입니다.

 

[사무엘상 7:10]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사무엘이 기도하여 큰 우레가 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호수아 24:12-13]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도 이스라엘 백성의 수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이삭줍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땀 흘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구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서 9:10]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골로새서 1:29]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저와 우리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모습입니다.

 

[이사야 65:23]

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신앙생활에도 성취감이 있습니다. 우리의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해 낼 때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는 해 본 사람이 계속하게 됩니다. 기도의 맛을 한 번 본 사람은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기도의 땀방울을 많이 흘려야 영적인 내공이 쌓이게 됩니다. 수고하지 않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3]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믿음에 대한 수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믿는 것 어렵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때로는 고난도 받고, 상처도 받고, 물질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믿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은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삭줍기 인생은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인생은 이삭줍기 인생을 살아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힘들게 기도했던 사무엘입니다.

 

쉬운 길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쉬운 길은 내가 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어려운 길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만을 남길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무엘상 2:18]

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신앙입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오늘의 기도회를 통해서 나의 시선이 온전히 주님만을 또렷하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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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7 22:11

20180727일 금요기도회

 

다른 복음은 없다 (김정만 목사)

 

[갈라디아서 1:6-10]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저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을 해 왔습니다. 된다~ 된다~ 잘 된다!! 당연하지!!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하 하 하~ 하나님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와서는 하나님 믿고 신앙이 있는데 교회 밖에서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 모든 짐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오사리 기도원에 가서 1주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방언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귀신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찬송만 해도 놀라운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교회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전도, 선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를 자랑하고 소개해야 합니다.

 

언제 여러분이 가장 행복합니까?

낚시에서 대어를 잡는데 놓치면 옆 사람이 좋아합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봅니다. 어떻게든 넘어트리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자꾸 안 되게 하려 합니다. 세상에서 남이 안 되게 하려는 것만큼 나쁜 게 없습니다.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십니다. 주님은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시고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내 모든 삶을 인도하십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주님 앞에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오.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인간을 찾아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1. 내 복음관에 정착하자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복음만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 복음이 있다면 어떤 이단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2. 내 교회관에 정착하자

주인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인의식이 확실하면 책임 의식을 가지게 되고 그럴 때에 희생 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내 모든 희생은 하늘나라에 기록되어 집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희생 의식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 와서 엔조이만 하고 가려고 합니다.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3. 내 사명관에 정착하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전도일 줄로 압니다. 전도하시면 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세상일에 관심 갖지 말고 영적인 일에 관심 가지시길 바랍니다. 거룩한 열정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4. 내 목양관에 정착하자

목사와 성도, 성도와 목사의 비전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담임목사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5. 내 가정관에 정착하자

중요한 것은 가정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아내, 남편의 외도가 소돔과 고모라 같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관이 정착되어 있지 않아서입니다. 자녀들이 왜 결혼을 안 할까요? 매일 싸우는 걸 보니 결혼 생각이 안 듭니다. 혼술, 혼잡, 혼밥족이 많습니다. 특히 혼신, 혼자 신앙도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자기 좋은 것만 찾아서 예배를 보니 주관적이 됩니다. 절대로 혼자 신앙생활하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 찾아 의지하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이 있어도 나의 힘이 되시는 주를 사랑하십시오. 문제의 해결 자 되시는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교회로 나가십시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사람 보지 마세요, 문제 보지 마세요, 상황 보지 마세요. 주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기도할 때마다 모든 걸 하나하나 해결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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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22:42

20180720일 금요기도회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김은호 목사)

 

[시편 16:2-3]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1절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신앙고백이 참 중요하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자신을 지켜주실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줄 수 없었다. 다윗은 기도만 하지 않고 행동했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와 고백까지는 하는데 행동하지 않는다. 주님께 피해야 한다. 다윗은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 주님께 피하는 가장 확실한 증표는 순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입술로는 주께 피한다고 하지만 순종은 없다.

 

정말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켜주심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편 16:2]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지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라고 고백한다. 다윗의 신앙고백의 특징은 언제나 나의 하나님이다.

 

[시편 31:14b]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이것은 다윗의 체험적 고백이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늘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면 이것은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고백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신분이 바뀌게 된다. 신분으로써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나는 그의 자녀가 된다. 예수를 믿으면 신분의 변화가 가장 먼저 온다.

 

사역적으로 보면 관계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우리는 그의 종이 된다.

 

다윗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알았다. 고백만 하고 끝내지 않았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하지 않고 끊임없이 물었다. 전쟁에 나갈 시기와 때를 물었다. 다윗은 적군의 상황을 묻지 않았다. 적군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윗은 언제나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이 전쟁이 하나님의 뜻인지 물었다. 그리고 때를 물었다. 우리는 때를 묻지 않아서 실패할 때가 많다.

 

정말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면 물어야 한다. 묻지 않고 행함은 죄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우리도 주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 모셔야 한다.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도 그 물음에 답을 주신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물음에 답을 주신다.

 

[시편 16:2b]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 물질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보다 더 깊은 신앙의 고백이 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사람들은 열매를 가지고는 감사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 열매만이 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이 나의 복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복이다. 내가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복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감사하면 그 소유를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복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복은 그 열매가 아니라 주님 자체가 복이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복으로 여기는 신앙을 가졌다. 다윗은 젊은 날에 엄청난 인기와 권력,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오직 주님만이 나의 복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시편 6:2]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다윗도 건강만 회복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깨달았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게 저주받은 사람,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처럼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들을 존귀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이라는 말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도 있다는 말이다. 천국의 백성들이 있다. 그런데 하늘의 성도들과 땅의 성도들은 차이가 많다.

 

하늘의 성도들은 영적 전쟁이 없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을 승리교회라고 말한다.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전투교회라고 말한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끊임없이 우리 안의 죗성과 싸워야 한다. 악한 영의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다윗은 말한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라고 한다. 왜 우리가 존귀한 자들일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인데 내가 그분을 믿고 존귀한 자가 된 것이다.

 

[고린도후서 4:7]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순간 주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가장 볼품없는 그릇이 질그릇이다. 그런데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졌다. 내 인생의 존재가치는 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그랬다. 외모, 실력, 스펙 이런 것들로 가치가 결정됐었다. 예수를 믿은 후에는 그릇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릇에 담겨진 것에 따라서 달라진다. 내 안에 보배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보배이신 주님에 의해서 내 가치가 결정된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의해서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당당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을 존귀하다고 하지 않는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소유한 자가 하나님의 눈에는 존귀한 자다.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존귀한 자로 보아야 한다.

 

[시편 8:4]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5]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이 우주에 비해서 볼품없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저 큰 우주보다도 나를 마음속 깊이 돌보시냐고 한다. 하나님은 내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일지라도 나를 생각하시면서 곤고 하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재를 나눌 수 있는 건 우리 밖에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개는 개같이 소는 소같이 사람은 하나님같이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에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어주셨다.

 

우리의 존재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가치 있게 산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기쁨이고 존귀한 자들로 보았다. 하나님 역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스바냐나 3:17]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자식은 하는 것 없어도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기쁨을 준다. 관계 때문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관계 때문에 기쁘신 거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관계다. 십자가의 해산의 고통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누군가의 하나님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이 내게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복이 아닙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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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22:33

20180713일 금요기도회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김은호 목사)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이 시편 16편은 다윗이 썼다. 황금 시, 금언 시라고 부른다. 그만큼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있다. 다윗은 이 시를 가장 어려울 때 썼다. 사울 왕으로부터 쫓겨 다니면서 쓴 시이다.

 

어려울 때를 잘 견디면 금언이 될 때가 많다. 잘 나갈 때 번영의 때에 우리가 얻는 교훈보다는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이 훨씬 많다. 다윗이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은 아주 어려운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노래했다. 다윗의 신앙이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최고의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을 때였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 시를 많이 섰다. 다윗의 인생 가운데 고난이 없었다면 이런 주옥같은 시편은 나오지 않았다.

 

다윗은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다윗만이 아니라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완전한 자는 없다. 모세도 물이 없어 참지 못하는 백성을 향해 참지 못하고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쳤다. 그 일로 인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시켰다.

 

다윗도 살인죄와 간음 죄를 지었다. 그리고 인구조사를 했다. 하나님은 동기를 보신다. 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고 했냐를 보셨다. 자신의 막강한 군사력을 드러내 보이려고 했었다. 그리고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하니까 원수의 나라 블레셋 땅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신앙의 국경선을 넘어선 안됐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신앙의 국경선이 있다. 그런데 다윗은 너무 힘드니까 신앙의 국경선을 넘어 블레셋 땅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신분이 들통났다. 그래서 미친 사람으로 연기를 했다.

 

[사무엘상 21:13]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신앙의 국경선을 넘으면 이렇게 비굴하고 초라해진다.

 

[사무엘상 21:14]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아기스 왕은 연기를 하는 다윗을 보고 진짜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아기스 왕이 왜 그렇게 순순히 속아 넘어갔겠는가? 다윗이 연기를 잘 한 것이 아니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완전한 사람은 없다. 완벽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여기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엘로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지금 다윗이 자기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았기 때문에 나를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무서운 꿈을 꾸면 아빠에게 달려온다. 아빠가 지켜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신앙의 고백이 중요하다. 기도의 내용보다는 대상이 중요하다. 내가 기도하는 대상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면 내용이 달라지 게 된다. 내가 예배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한다. 다윗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았기에 나를 지켜달라고 했다.

 

사람은 나를 지켜줄 수 없다. 그 나라의 최고의 권력자인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데 어떤 사람이 지켜줄 수 있었겠는가. 다윗은 알았다. 하나님만이 나를 지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우리가 언제 이런 기도를 드리는가. 우리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는 이런 기도를 못 드린다. 세상의 줄이 끊어질 때 비로써 그때야 이런 기도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만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인생의 줄을 끊으실 때가 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다윗은 기도하고 행동이 나왔다. 우리는 기도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윗은 기도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갔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많은 성도들이 지켜달라고 기도만 한다. 주님께 피해야 한다. 피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가지 지켜달라고 기도하는데 순종이 없다.

 

다윗이 이 시를 쓸 때에 자신을 따르는 400~600명과 함께 있었다. 혼자 피하여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원통함을 당한 자, 사회적으로 약자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했다. 그 많은 사람들과 피하여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들을 사랑하고 잘 돌보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은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셨다. 우리도 다윗처럼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오는 동안 언제나 위험은 찾아온다. 엄밀히 말하면 안전한 곳은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는냐가 중요하다. 내가 주님 안에 있는가 주님께 피하고 있는냐가 중요하다.

 

다윗은 늘 여호와를 자신의 피난처로 삼아서 주께 피하는 삶을 살아왔다.

 

[시편 17:7]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다윗은 지금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내가 당신께 피하는데 까닭 없이 나를 죽이려는 자를 당신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사 주님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 달라고 한다. 기이한 사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측량될 수 없는 사랑을 말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이한 사랑이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도 기이한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로마서 5:8]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6]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로마서 5:10a]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다윗이 말하는 기이한 사랑은 문맥적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은총의 날개로 품어주시는 것이다.

 

[시편 17:8]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사람은 바람만 불어도 가장 본능적으로 깜빡거리면서 자신의 눈동자를 지키려고 한다. 눈동자가 히브리어로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을 가까이 가서 쳐다보면 그 사람의 형상이 눈동자에 비쳐서 작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에 우리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켜주신 것은 다윗만이 아니다.

 

[신명기 32:10]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모세가 한 고백이다. 광야에서 백성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셨다고 한다. 광야는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없다. 길이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낯과 밤의 기온차가 크다. 물이 없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낯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다.

 

지금 우리도 구원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광야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여 피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눈동자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치는 자는 하나님을 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을 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윗을 대적하는 사람이 살아남지 못한 이유가 다윗이 하나님의 눈동자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

 

[사무엘상 25:29a]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아비가엘은 다윗이 하나님의 생명 싸개 안에 있다는 것을 보았다. 오늘 이 밤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제사장의 축복

[민수기 6:24]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악한 세력만이 아니고 각종 질병과 전쟁으로부터 보호를 의미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하다. 폭력과 음란의 영에게 노출되어 있다. 자녀들이 잘 되면 뭐 하겠는가. 보호받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다만 악에게서 지켜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시편 127:1]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가 수고하여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한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건강, 물질, 자녀들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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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6 22:25

20180706일 금요기도회

 

페르시아 부흥의 열쇠 (이다윗 선교사)

 

[창세기 22:16-17]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저는 페르시아 A국에서 온 이다윗 이라고 합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곧 현장으로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는 시험을 통해 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들어가 약 1년이 지난 후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피를 토하며 결핵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개에게 물렸지만 약이 없어 치료할 수가 없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를 붙잡고 부르짖어 엄마와 동생이 기도했습니다. 아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년간 지내온 추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아이였기에 데려가셔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방 여행을 다녀와서 이 소식을 듣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의사는 멀쩡한 아이를 왜 데려왔냐고 합니다. 이 아이는 결핵이 걸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주님은 결핵의 흔적도 없이 아주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페르시아 부흥의 열쇠라고 하는 아프가니스탄은 사실상 잠겨 있는 땅입니다. 한국과 같은 하늘, 같은 집이지만 다른 종교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부르카라는 것을 입고 다니며 남편만이 얼굴을 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르카를 입으면 옆을 볼 수도 없습니다.

 

하루는 텔레반에게 협박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올라와서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3일 후에 비전스쿨을 섬겨야 할 일이 있어 버티기 위해서 옆 마을로 대피했습니다. 3일 후 비전스쿨이 시작되었고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자녀와 아이의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여 중국 복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 회개하고 주님 앞에 일어섰습니다.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나갔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전도를 나갔습니다. 열흘 후에 돌아왔는데 모두 기쁨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찰에 쫓겨나고, 맞고 핍받 받았지만 복음을 전했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란은 8천만 명 중에서 기독교인이 700백만 명 정도 있습니다. 이란은 이제 더 이상 선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부흥은 공짜가 아닙니다. 순교의 피가 있었습니다. 순교의 피가 흘려질 때 이란 교회의 부흥이 이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논쟁만 될 뿐 통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하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할 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돌을 던지고 핍박을 해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한 명 한 명 전하다 보면 200명 중 한 명을 궁금해하며 돌아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청년은 청년이 성인은 성인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10년 넘게 문이 막혀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땅에 주님께서 문을 열어 주십시오. 죽음 앞에서 십자가의 보혈이 살아 역사하시는 그런 땅입니다. 주님께서 이삭을 받치라는 약속을 아브라함이 지켰을 때 주님은 대적의 문을 여신다는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 따라서 결단하시고 헌신하여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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