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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훈 목사'에 해당되는 글 4건
2018.08.12 15:37

20180812일 설교 말씀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이 두려울 때 (주경훈 목사)

 

[창세기 32:24-31]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성경은 영혼의 거울이어서 처음에 성경을 읽으면 내가 성경을 읽지만, 성경을 깊게 보면 성경이 나를 읽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야곱과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세상과 하나님 의 중간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신자도 아닌 불신자라고 하기엔 과한 느낌이 듭니다.

 

그의 이름과 출생부터가 그러합니다. 이삭은 아들 이름을 야곱이라고 짓습니다.

야곱은 히브리어로

아케브’ : 발꿈치, ‘야아코브’ : 배신자, 속이다

야곱이라고 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사기꾼, 속이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야곱은 자기 이름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야곱은 평생토록 속이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는 모태 신앙으로 성장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서라면 편법을 쓰고 거짓을 행하는 것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살아온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이 두려워 보이고 더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땅 가운데 살아갈 때에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야만 내 삶이 안전할 것 같다는 그 안정감을 세상에서 느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지만 자녀 문제만큼은, 회사에서만큼은, 가정생활은, 부부관계는, 노후대책은, 재물에 관한 부분은 세상적인 것들을 더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흔들릴 때마다 우리 안의 야곱이 얼굴을 디밀고 올라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존재가 바뀌어 이스라엘이 되는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는 정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인생으로 변화가 되어집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이 두려울 때

1. 에서의 군대가 아닌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야곱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집으로 돌아갑니다. , 아버지를 속이고 위태로워지자 어머니의 권유로 하란이라는 곳으로 도망쳤었습니다.

 

[창세기 27:44]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며칠 일 줄 알았지만 20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창세기 32:1]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수많은 천사들이 야곱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창세기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그 광경이 너무 은혜로워서 그곳에 특별한 의미를 그 현장 가운데 붙입니다.

 

[창세기 32:2]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마하나임은 천사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6:53]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야곱에게 찾아온 천사는 엄청난 두 군단이었습니다.

 

[창세기 32:6]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이 말을 들은 야곱은 마음이 무너집니다.

[창세기 32:7]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그는 다시금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아서에게 뇌물을 보냅니다. 조금 전 하나님을 만난 모습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창세기 32:7]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입니다. 누가 빠졌습니까? 마하나임이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호위하고 있는데 에서의 군대에 사로잡혀서 판단력과 모든 것이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얼어붙은 강으로는 노를 저어 갈 수 없습니다. 믿음이 식으면 두려움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메시지 보다 에서가 당신을 죽이러 온다는 400명의 군사가 더 커 보입니다. 에서의 400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위기가 오면 자기에게 뭐가 있는지 까먹습니다. 날개를 편다면 비상할 수 있지만 날개를 펴지 않고 뛰어다닌다면 그 날개는 짐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이 두려울 때

2. 에서가 아닌 하나님과 씨름하라

[창세기 32:22]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아무리 생각해도 재물은 안 될 것 같으니 사람을 보냅니다. 에서를 만나면 살려달라고 빌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어떻게 하면 에서의 마음을 풀 것인지 에서에 대한 생각에 가득 차 있습니다.

 

[창세기 32:24]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은 씨름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덮치셨습니다. 야곱의 인생 가운데 에서를 덜어주시기 위하여 달려드셨습니다. 에서와 씨름하지 말고 나와 씨름하자 이 의미를 가지고 지금 야곱에게 달려드시는 겁니다.

 

결국 우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맥스 디프리

 

얍복’ : 비우다, 털어내다, 쏟아내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얍복은 야곱에게 절망의 땅입니다. 그동안 자신의 머리로 안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 되는 한계를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땅이 하나님을 만나는 땅이 됩니다.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을 채우는 땅이 됩니다.

 

[창세기 32:25]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어떻게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할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힘으로는 넉넉히 이기는데 축복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꺾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의 허벅지 관절이 부러져 서 있지 못하고 하나님 옷자락 붙잡고 매달려 있습니다. 그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습니다.

 

나는 못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32:26]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마가복음 10:48]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열정 끈기를 가지고 지금 붙잡고 있는 겁니다. 주님께 매달린 영혼 하나님께서 만져주십니다. 하나님의 터치만으로도 옛사람의 자아가 무너집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은 떨리는 목소리로 야곱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자기 이름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창세기 27:19]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창세기 29: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야곱은 자기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진실 된 고백을 합니다.

 

[창세기 32:28]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소유권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싸우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상과 싸웠습니다. 이제 세상과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은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씨름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하는 존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제 도망치지 않습니다. 에서가 두렵지 않습니다. 절뚝거리며 에서에게 다가갑니다. 잘 걷지 못하지만 걸을 때마다 기억했을 겁니다. 나는 이스라엘이다.

 

[출애굽기 1:5a]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이 구절은 창세기 전체를 정리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형성될 민족의 근간이 형성되었다는 겁니다. 야곱의 허리, 허리라는 단어가 에레크입니다.

 

예레크’ : 허벅지 관절

 

그는 평생 다리를 절 때마다 내가 이걸 의지해서 살았는데 이게 무너져서 절고 있는데 그래서 불편하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떠 올리며 불편하게 그 인생을 살았는데 하나님은 부러진 그 중심 부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민족의 역사를 만들어 가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입니다.

 

약한 그 부분 속에서 하나님의 민족을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흔들리십니까? 하나님의 방법보다 세상의 방법이 더 커 보입니까? 에서의 400명 앞에서 무력하게 휘청거리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 역전의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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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8 13:20

20180408일 설교 말씀

 

고통이 찾아 올 때 (주경훈 목사)

 

[요한복음 9:1-7]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 선물 중에는 의미 있고 고마운 것도 있고 때로는 뭐 이런 걸 줬나 하는 것도 있다. 우리는 종종 고통은 선물이다라는 말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고통이란 축복의 포장지이다

 

하나님은 즐거운 상황을 통해서는 속삭이시고 양심을 통해서는 말씀하시지만, 고통을 통해서는 크게 외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확성기다” - C.S 루이스

 

고통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고통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받아야 할까?

 

불교에서는 인과응보의 논리에 따라서 너로 인해서 온 것이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숙명론에서는 이 고통은 반드시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니 그냥 그것을 견디라고 말한다.

현대를 붙잡고 있는 세속주의에서는 고통은 힘든 것이니 할 수만 있다면 피하라고 한다.

 

불교는 받아들이라고 하고, 숙명론은 견디라고 하고, 세속주의는 피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고통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 말씀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요한복음 9:1]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여기서 보다라는 단어는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주목하여 관찰하여 보는 것을 뜻한다.

 

[요한복음 9:2]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사람은 자기 수준 이상을 질문할 수 없다. 질문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과 관점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죄로 인하여 고통이 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람 가운데 주어지는 모든 고통은 근원적으로 보면 인간 타락 이후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모든 고통은 죄 때문에 주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 가운데 벌어지는 고통이 나의 죄, 부모의 죄 때문에 오는 것만은 아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 앞에서 분석하듯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들은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객관이 무엇일까? 객관을 뒤집으면 관객이다. 객관이라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고통 앞에서 객관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큰 아픔을 겪고 있는 분에게 당신의 마음을 잘 압니다. 많이 힘드시죠?” 정말 알 까요? 똑같은 아픔을 겪어도 사람 각자가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그 사람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유산의 아픔을 격은 사람에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혹은 더 건강한 아이를 주시려고...” 만약 그렇다면 처음부터 임신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혹은 이 아픔을 통하여 반드시 상처 입은 많은 이들을 치유하게 되실 겁니다.” 그 사람은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지금도 살아가기 힘듭니다.

 

가족을 잃은 아픔 중에 있는 분에게 더 좋은 곳으로 가셨으니 평안하세요물론 그렇지만 그렇게 말씀하신 분도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지금 가실 마음이 있으십니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잘 생각해보고 회개해 보세요.” 이 말은 하지 말아야 할 말 가운데 첫 번 째 말입니다.

 

이 말들은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우리는 고통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요나, 사울, , 요셉 모두 고통의 원인은 달랐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라 우리 가운데 고통이 다가오면 그것을 죄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혹시 내가 죄를 지어서... 어떤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내 안의 죄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을까?

[누가복음 13:1-5]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예수님은 당대의 두 가지 큰 사건을 통해서 고통의 원인 그 고정 관점을 깨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이 죄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고통이 죄 때문이라면 악인의 형통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시편 73:1-7]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악인의 삶은 벌받아야 하는데 사업도 잘되고 건강하고, 자녀도 효자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가? 고통의 원인은 다양하다. 고통에 대한 오해를 버려야 한다. 물론 나의 명백한 죄 때문이라면 회개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다면 고통의 원인을 굳이 찾지 마십시오. 고통도 힘든데 왜 죄 된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갑니까. 그보다는 하나님 앞으로 더 빨리 나올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유석경 전도사님이 돌아가신 후 그분의 설교를 모아서 책을 출판하였는데 제목이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많은 오해 중에 버려야 할 첫 번째 오해가 모든 고통의 원인이 나의 죄다라는 오해를 버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을 신뢰합니다.”

 

고통의 원인은 몰라도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다. 고통이 찾아올 때 더 빨리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야 한다.

 

[요한복음 9:3]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의 관점은 고통의 원인에 있지 않다. 고통의 결과를 주목하신다.

 

[요한복음 9:3](메세지 성경)

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탓할 사람을 찾으려고 하니, 너희의 질문이 잘못되었다. 이 일에 그런 식의 인과관계는 없다. 차라리 너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주목해 보아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만한 고통의 원인은 없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 안의 사람에게 적용할 고통의 결과는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그 관점으로 우리의 관점이 바뀌어야만 한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수수께끼 같고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1. 그리스도의 빛 아래 거하라

 

[요한복음 9:5]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한복음 8:4-5]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한복음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려 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고 계셨다.

 

[요한복음 8: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모두 흩어졌다.

 

[요한복음 8:10-11]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이 여인의 죄를 보고 고통을 주려고 했다. 예수님은 고통이 아니라 회복을 주셨다. 예수님은 벌하려 오신 게 아니라 죄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

 

[요한복음 8:12]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기독교의 본질은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의 회복에 있다.

그리스도의 빛 안에 있는 우리가 누구인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둠이라는 것은 없다. 빛이 없으면 어둠이다. 빛이 등장하는 순간 어둠은 사라지게 된다. 고통이 찾아올 때 그리스도의 빛 아래 거하는 저와 우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어둠 안에 있지 마십시오. 고통도 힘든데 자신을 자책하며 학대하며 그 안에서 그렇게 머물러 있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버림받은 이들만 받아 주시고, 병든 이들만 치료하시며, 눈먼 이들만 보게 하시고, 죽은 이들에게만 삶을 되돌려 주신다. 죄인들만 거룩하게 하시며, 어리석은 이들만 슬기롭게 하신다. 한 마디로 가엾은 이들에게만 은혜를 베푸신다.” - 루터

 

그리스도의 빛 안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2. 해결하는 삶을 포기하고 해결 받는 삶을 살라

인생은 두 가지다. 내가 내 인생을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거나 해결 받기 위하여 무릎을 꿇는 삶이 있다. 맹인 역시 자신의 삶의 위해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주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빛으로 채워졌을 때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 해결하는 인생에서 해결 받는 삶을 선택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품고, 예수님의 방법을 신뢰했다.

 

[요한복음 9:6]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예수님의 침에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방법을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보신 것이다. 맹인은 인생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었다. 예수님은 씻으라고만 말씀하셨다. 맹인은 결과도 모르고 기대도 안 된다. 그러나 주의 말씀 붙잡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순종이기에 그곳까지 걸어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그것이 꼭 하나님의 응답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도 주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약점을 다 드러내고 하나님의 방법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의 방법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빛을 따라가는 삶. 결과를 맡기는 삶.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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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6 23:04

20180126일 금요기도회

 

뿌리 깊은 그루터기 (주경훈 목사)

 

[이사야 6:13]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당신은 언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가?”

1. 존경 받는 부모가 되는 것

2. 행복한 결혼

3. 행복한 인간관계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자녀가 인정하는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는가. 다음 세대의 문제는 다음 세대의 것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문제다.

 

[이사야 6:1]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보통의 선지자는 1장에서 부름을 받지만 이사야는 6장에서 받는다.

웃시야는 잘 나갈 때에 교만이라는 병에 걸린다. 이 병은 약이 없다. 주변 사람이 더 힘들어진다. 한 때 국가회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왕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나병에 걸려 죽어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

옷걸이가 자기에게 걸려진 옷이 자기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에 불구하다.

 

이사야는 성전으로 향한다. 그는 회복이 시작되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자기 안에 쌓여진 죄악을 보게 된다. 빛이 강할수록 잘 보인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숨겨진 죄악이 낱낱이 보이게 된다. 이사야는 나라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너져 있는 것을 깨닫는다.

 

[이사야 6:8]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는 주님께서 보내길 원하셨고 그 뜻에 순종한다.

그런데 주님은 지금은 괜찮은 거야 앞으로 더 힘들어 질것이라고 하신다.

[이사야 6:11]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지금 나라가 위기지만 아직 망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제 망하여 황폐해 진다고 하신다.

 

[이사야 6:12]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포로로 끌려갈 것 이라고도 하신다.

 

[이사야 6:13]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포로로 끌려간 사람의 십분의 일이 오는데 그들도 불같은 심판을 받는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루터기만 남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루터기만 남은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현실 가운데 무엇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지금 이사야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이제 대학의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게 된다.

2025년도가 되면 학령인구가 지금보다 20% 감소된다. 주일학교 역시 20% 감소 될 것이다.

2028년 한국교회의 주력 세대인 60~70대가 은퇴자가 된다.

2050년 노동 인구가 부족하여 외국인 노동자가 더 많이 들어오게 되고 이슬람교가 기독교를 능가하게 된다. 한국이 지금의 출산율이 지속되면 위기가 올 것이다.

 

숫자 보다 질적인 문제도 심각하다.

이혼, 낙태, 음주, 흡연, 혼전 성관계 등에 너무나 관대해져 간다. 세례를 받은 교인들이 탈세례식을 받기도 한다.

정말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역시 이사야가 품었던 그림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뿌리가 깊은 그루터기이다. 뿌리가 깊고 살아있다면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뿌리가 깊은 그루터기는 보이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무는 스스로 자리를 결정하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자세를 바르게 한다.

자리보다 중요한 것은 자세다.

우리의 자리가 어떠하던지 간에 그곳에서 그루터기가 되어 생명을 살려야 한다.

 

오륜교회는 한국교회와 열방을 섬기는 교회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다.

가정과 교회가 연합하여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과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도록 돕는 대안적 크리스천 교육기관이다.

 

관계 중심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머리가 아닌 의미와 심장을 겨냥하여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관계는 없다.

부모만큼 아이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는 없다.

교사만큼 부모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는 없다.

교회만큼 교사에게 영향력 있는 존대는 없다.

교사와 부모와 교회는 한 아이를 위해 연합해야 한다.

 

가정과 교회가 분리되는 것만큼 우리의 아이들의 믿음도 멀어질 것이다.

한국교회는 수평적 선교는 잘 했지만 수직적 선교에 실패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은 40시간,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3,000시간이다.

우리는 부모로써 자녀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정예배 드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녀를 만나서 얘기해 보면 누가 더 많이 배우는가. 부모다. 자녀는 부모의 교사다. 자녀를 만나야 한다.

 

오륜교회의 꿈미 홈페이지(http://coommi.org/)를 통해 원포인트 통합교육을 할 수 있다. 오륜교회는 비전공통체이다.

 

이사야가 보았던 꿈을 함께 보기를 희망합니다.

[이사야 60:21-22]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루터기만 남은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제 만나야 합니다. 희망을 살려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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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30 17:47

지금(Now), 승리(Won)하라 (주경훈 목사)

 

[요한복음 11:17-26, 38-44]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무엇인가를 붙잡고 살아간다.

그것을 놓으면 내 삶이 어려워질까 봐 붙잡고 살아간다.

그것을 놓았을 때 오히려 안전한데 그것을 놓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 이유는.

첫째, 주어진 객관적인 고통보다 주관적인 고통

둘째, 미래에 대한 불안

 

두 가지다 사실이 아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은 모든 사람에게 대동소이하다.

우리에게 고통이 다가올 때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느낀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르다와 마리아는 고통 가운데 있다.

무엇인가 잡고 싶은데 잡을 것 없는 가운데 놓여 있다.

베다니’:가난한 자들의 집

이들은 지금 베다니에 살고 있다.

그들은 이곳에서 결손가정으로 살고 있다.

나사로는 그 집안의 가장이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가정을 사랑하셨다.

[요한복음 11:3, 5]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주님은 나사로를 본래 특별히 사랑하셨다.

마리아는 헌신의 아이콘이었다.

마르다는 봉사의 아이콘이었다.

[요한복음 11:27]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의 이 고백을 베드로의 고백보다 높게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가정에 예기치 않는 일이 일어났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다.

고난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베드로전서 4:12]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왜 나입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였는데 왜 이 어려움이 내가 다가오는 것입니까?

이런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왜 나는 안 됩니까?

주님 닮기 원하는데 나는 왜 안 됩니까?

모든 사람이 똑같은 고난을 당한다면 왜 예수를 믿는가.

고난은 똑같이 당하나 확연히 다른 것이 있다.

 

주님이 아신다는 것이다.

나도 주님을 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아시는 것은 무엇인가.

 

1. 우리의 외적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신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하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2. 우리의 내적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신다.

외적으로 볼 때는 죽은 것 같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날 것임을 알고 계셨다.

 

3. 개입하실 때를 정확히 알고 계신다.

기다리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는 속이 상한다.

내가 힘들 때 주님 왜 안 오셨습니까?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한 번도 늦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4. 우리의 고난의 결론을 정확히 알고 계신다.

지금 이 고난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해 힘이 든다.

주님은 우리 고난의 결론을 알고 계신다.

[요한복음 11:4]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죽을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놀라운 병이라는 것이다.

약한 그때에도 여전히 주님을 붙들어 고난 가운데 즐거워할 때 하나님은 영광으로 보답해 주신다.

이것이 우리의 당당함이다.

하나님이 아신다.

 

어떻게 지금 승리할 수 있는가.


1. 지금 부활의 능력을 믿으라

‘if...’ : 만약 ... 했더라면

과거에 잡혀 있다.

만약이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불평과 불만을 쏟게 된다.

만약 주님이 그때 나를 도와주셨더라면.

 

[요한복음 11:23]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과거와 상관없이 주님은 구원을 말씀하신다.

주님이 현재적 구원을 말씀하시니

마르다는 다시 미래로 건너간다.

[요한복음 11:24]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의 믿음에는 현재적 믿음이 없다.

 

'스크루 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이 있다. 책의 내용은 고참 악마가 조카 악마에게 어떻게 하면 성도를 넘어 트릴 수 있는가에 대한 비법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우리의 임무는 어떻게든 인간들을 영원과 현재로부터 떼어 놓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경우에 따라 인간을 과거 속에 살도록 유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미래 속에 살도록 만드는 편이 훨씬 낫다."

 

"미래란 미지의 시간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현실성이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미래란 이 세상과 영원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다."

 

믿음을 가지게 놔두데 과거와 미래에 갇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은 마치 바다 가운데 떨어진 코르크 마개와 같다.

파도가 칠 때마다 앞뒤로 움직이지만 결국 그 자리에 계속 머물게 된다.

 

사탄의 전략은 오늘을 살지 못하게 만든다.

현재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나중에 기도하려 하지 말고 지금 기도하라.

지금 하지 못하면 나중에도 못한다.

믿음은 지금 오늘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는 것이다.

 

주님은 항상 현재 시점으로 말씀하신다.

과거로 숨거나 미래로 도망가지 마십시오.

 

2. 지금 돌을 치우라

[요한복음 11:39]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주님은 막고 있는 어둠의 돌을 치우고 싶어 하신다.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 있다 보면 숨고 싶어 한다.

건드리고 싶지 않아 한다.

 

지금 그 돌을 치워 진리의 빛을 비추라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막고 있는 그 돌을 치우라.

 

동굴 안에 무엇이 있는가.

극복하기도 싫은 모습이 있습니까?

그 모습을 지금 거두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1:40]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내가 치우면 너희 수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3. 지금 풀어나 다니게 하라

[요한복음 11:44]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우리 인생 가운데 묶여 있는 것을 주께 나와 스스로 풀기를 바라신다.

수족이 묶여 있어서 자유하지 못하게 사는 모습이 있습니까?

그것을 풀어 놓으시고 진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을 놓을 때 하나님의 진정한 자유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지금 가운데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 승리를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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