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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에 해당되는 글 4건
2017.04.13 10:19

[2017 특새 4]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김은호 목사)

 

[마태복음 27:32]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로마 군병에게 온갖 조롱을 당하신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으로 끌려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실 기력이 없으셨습니다.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구레네 시몬.

시몬이 강제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게 된다.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는데 성경은 그의 가정이 영적인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로마서 16:13]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는 시몬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시몬의 아내이다.

이것을 보게 되면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그 가족이 영적인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도 이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쉽지 않다.

 

[누가복음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내가 십자가를 지었으니 세상에서 너희는 풍성하게 누리며 살라고 하지 않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예수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한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이다.

 

23절에 나오는 따라오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됐다.

에르코마이 (따라오다) : 별다른 의미 없이 누군가를 뒤따라가는 것

아콜루데오 (따르다) :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확고부동하게 따르는 것

 

습관적으로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 이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확고부동하게 주님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매 순간 질문을 던지고 주님처럼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절대로 주님을 따를 수 없다.

내 안의 성품과 욕망을 부정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 안에는 죗성이 있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

아무리 예수 믿고 거듭났어도 우리 안의 죗성이 우리를 이끌려고 한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로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셨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를 모세혈관이 터져서 땀방울에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간절하게 반복해서 기도드렸다.

예수님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 아버지의 뜻 앞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죄 없는 예수님도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웠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골고다 언덕에서의 승리가 있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는 겟세마네 동산이 없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주시옵소서만 하는 기도로는 자신을 부인할 수 없다.

죄와의 투쟁이 있어야 내 자신을 부인할 수 있다.

 

2.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십자가는 일상적인 고통과 아픔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잘 못해 놓고 십자가라고 한다. 아니다.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내가 받는 어려움, 핍박, 희생이다.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할 것은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내가 구원받은 자로서 주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장난이 아니다.

이 길은 나를 부인하고 내게 맡겨 주신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로 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각자 내가 지어야 하는 십자가가 있다.

자식, 아내, 부모, 직장의 동료, 인생의 아픔, 관계의 어려움, 질병이 십자가일 수 있다.

사람마다 십자가는 다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그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예수님 때문에 배부르고 출세하고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탄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지 말고 쉽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한다.

[마태복음 27:40b]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십자가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내려오라는 거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십자가 없는 구세주가 되라는 거다.

우리에게도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한다.

세상 사는 사람의 그 길을 가야지 왜 남이 안 가는 좁은 길을 가려고 하냐고 유혹한다.

십자가 없이도 얼마든지 영광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누가복음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날마다 그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다.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지 앞세우고 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앞세우려고 한다.

그 권세와 영광과 능력만 앞세우고 지려고 하지 않는다.

앞세우기 전에 우리는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부활의 아침은 없었다.

십자가를 져야 십자가로 말미암은 영광을 볼 수 있다.

 

십자가가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 축복이 있다.

우리는 마지못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닮고 싶어서, 따르기 위해서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다.

편하고 쉽게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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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11:59

[2017 특새 3] 박해와 희롱을 당하신 예수 (김은호 목사)

 

[마태복음 27:27-31]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지금까지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수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공권력을 지니고 있는 로마의 군병들로부터 박해와 조롱을 당하십니다.

 

600명의 군병들이 예수를 관정(빌라도 총독의 관저)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제수 한 사람을 희롱하고 조롱하기 위해서 로마의 600명의 군병이 동원됐다.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다.

옷을 벗긴다는 것은 어떤 위치에서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왕이라고 조롱하기 위해서 왕이 입는 붉은색 옷 홍포와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왕이 드는 금으로 된 홀 대신 갈대를 손에 들게 했다.

 

이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을 하기 시작한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손에 들고 있는 갈대를 빼앗아서 머리를 내리쳤다.

 

이런 모멸감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이런 모욕을 받을 때에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 얼굴을 가리지 않으셨다.

[이사야 50:6]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왜 얼굴에 침을 뱉을까?

육체의 고통을 주기 위해서 가 아니라 수치와 모멸감, 멸시를 안겨주기 위해서다.

 

왜 예수님은 이런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을까.

그것은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다.

지난 주일 설교 말씀과 같이 우리의 죗값은 수치와 부끄러움이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이런 수치, 멸시를 당하셨다.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초라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높이려고 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군가를 무시하며 자기 스스로 높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 교회 안에도 있다.

누군가를 무시함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들은 이제 희롱을 다하고 예수님을 못 박으려 끌고 나간다.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아이들이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처럼 놀림을 당하셨다.

 

다시 홍포를 벗기고 예수님의 옷을 다시 입혔다.

보통은 자신의 옷을 입고 십자가를 매고 형장까지 간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홍포를 입혔다 벗겼다.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눠 가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누군가의 조롱을 당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럴 때 나를 위해서 이런 조롱과 수치를 당하신 주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주님을 닮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 주간 우리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데 동정만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내게 왔을 때 주님을 닮고 싶습니다.

이런 수치와 조롱의 상황이 내게 왔을 때 주님을 묵상함으로 잘 견디게 도와주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은 많아도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다.

 

우리의 죗성이 많아서 날마다 날마다 우리를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종교인이 아니라 주님을 닮아가는 작은 예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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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0:54

[2017 특새 2] 바라바냐? 그리스도냐? (김은호 목사)

 

[마태복음 27:15-26]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명절(유월절)이 되면 절기를 축하하는 입장에서 죄인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

이것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었다.

바라바는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악명 높은 죄수였다.

이름은 예수 바라바였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선동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라 한다.

 

바라바를 선택한 무리들.


1. 자신들의 기득권이 사라지기 때문

어떤 조직이던 기득권이 있다.

자신들이 제사장으로써 누렸던 기득권을 지키려고 했다.

 

2. 시기심 때문

빌라도는 알았다. 왜 종교지도자들이 죄 없는 예수를 죽이려 하는가.

그들은 백성들의 관심이 예수님께 향하는 것이 싫었다.

시기라고 하는 것은 공동체에 무서운 악이다. 열등감의 또 다른 얼굴이다.

시기는 영적인 사람에게도 있다.

같은 교인이지만 남보다 기도를 많이 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시기심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다.

선택의 기준이 옳고 그르냐,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내게 유익이 되냐이다.

선동에 의한 잘 못된 선택이 참 많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선동된 백성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스스로 저주한다. 결과적으로 많은 백성이 학살되고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방황하게 되었다.

이런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말은 성취력, 견인력, 각인력이 있다.

 

바라바를 선택했던 백성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우리는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하나님이다.

 

빌라도는 예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총독의 임무는 로마 정부로부터 파송된 정치 지도자다.

민란이 일어나면 안 된다. 민란이 일어나면 자신의 승진에 문제가 생긴다.

어쩌면 현명한 지도자의 판단일 수 있다.

예수라는 한 사람만 희생시키면 나라가 태평하고 자신은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 일로 사도신경에 기록되는 영원한 저주를 받았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이것은 엄청난 저주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신명기 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하나님은 우리 앞에 복과 저주를 두셨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선택의 기준이 말씀이다. 진리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을 선택해야 한다.

돈은 되는데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것은 저주다.

대세를 따르지 말고 분위기를 따르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리의 편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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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0 11:39

[2017 특새 1] 예수님의 침묵 (김은호 목사)

 

[마태복음 27:11-14]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때늦은 후회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 중 때늦은 후회를 대표 적으로 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그 은을 도로 갖다 주면서

[마태복음 27:4a]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죽음을 선택합니다.

 

회개와 후회는 구별된다.

회개는 죄로부터의 돌이킴이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행한 그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한 것이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신하고 회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후회만 한 것이다.

뉘우치기는 했지만 주님께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예수님께 나오지 않고 자살의 길을 택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했지만 베드로는 주님께로 나왔다.

 

가룟 유다도 죄를 지었고 베드로도 죄를 지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이켰지만 가룟 유다는 때늦은 후회는 했지만 주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회개와 후회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회개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단순한 후회는 패배의식만을 가지게 만들고 멸망에 이르게 만든다.

 

성도는 후회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후회를 회개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뉘우치는 감정을 가졌는데 그 감정만을 가지고 회개라고 생각한다.

회개는 뉘우치는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께로 돌아와야 한다.

돌이키는 행동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돌이키지 않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그러나 때늦은 후회는 회개가 아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반드시 구원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지만 후회는 우리에게 패배의식만 가져다주고 결과는 사망이다.

 

이 고난 주간 우리 자신을 한 번 성찰하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 숨겨져 있는 죄악들을 찾아내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주께로 돌이키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총독 앞에 섰을 때 예수님께 이렇게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때 주님은

[마태복음 27:11b]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는 답을 하셨다.

그리고 12절부터는 침묵하신다.

보통 고발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부인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변호를 하시지 않았다.

빌라도가 답답하여 다시 묻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신다.

주님은 계속되는 장로들의 고소와 비난 속에서도 한 마디도 응답하시지 않으셨다.

그러자 빌라도 총독이 크게 놀란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쯤 되면 항변하기 위해서 맞고소를 하기도 하고 변론을 하기도 한다.

 

왜 예수님은 침묵하셨을까.


1.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그 일. 일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닮고 따르기를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면

내가 억울하지만, 자존심이 상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지만 내가 침묵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침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 악인들 앞에서의 침묵은 가장 위대한 변론이 될 수 있기 때문.

사실 지금 예수님을 음해하려고 하는 이 사악한 이들 앞에서 변론은 시간만 낭비하는 것과 같다. 이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겠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고소하고 고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고발한 내용은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짖겠다고 한 것.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로마인의 식민통치를 거역하고 반란을 꽤 한다고 한 것.

 

그런데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영적인 진리를 말씀하셨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진정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영적 진리를 아무리 얘기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침묵하셨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실 때가 있고 침묵하실 때가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물어올 때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나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내가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임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 되심을, 예수님이 나의 왕이심을. 이것만큼은 우리가 숨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은밀하게 세상 속에 숨어 지낼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던지 누구를 만나던지 우리의 정체성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오시는 그 마지막 날에 우리를 부인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내 정체성에 대해서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늘 주님처럼 내가 손해를 보고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해도 내가 참고 침묵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이 드러날 수 있다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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