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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5 14:12

20180805일 설교 말씀

 

심판에 보류된 사람들 (박경철 목사)

 

[아모스 7:1-9]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2.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5.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중보기도의 원형

독일 전쟁사에 보면 한 통신병의 처절한 죽음 이야기가 있습니다. 적국에게 포위되어 본부에게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데 통신선이 끊겨서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전선을 연결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약 1미터 정도가 모자랐습니다. 통신병은 전선의 피복을 벗기고 자신의 양손에 묶고 옆에 있던 다른 통신병에게 빨리 전보를 치라고 합니다.

 

마침내 본부에서 연락을 받고 긴급 지원군이 도착하여 부대원 전원이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통신병은 전기에 감전되어 죽어있었습니다. 이 순고한 한 통신병의 죽음이 부대원 전원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 신학에서는 이 통신병의 순고한 죽음을 일컬어 중보기도의 원형이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희생이 모두를 살려낸 것처럼, 한 사람의 중보가 모두를 살려낼 수 있다는 진리를 오늘 우리 가운데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

오늘 본문 아모스서는 북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메뚜기 떼 재앙으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때 아모스가 중보기도하여 하나님은 그 뜻을 거두시고 재앙을 거두십니다.

 

[아모스 7:2-3]

2.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두 번째 불의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금 이스라엘을 향해서 심판과 재앙을 계획하셨지만 이번에도 아모스의 중보기도로 심판을 거두십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두 번이나 심판을 취소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안에서 중요한 두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의인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키는 큰 힘이 있다

[야고보서 5:16b]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출애굽기 32장에서는 심판을 돌이키셨는데 에스겔 22장에서는 심판을 돌이키지 않으십니다. 동일한 상황이었지만 그 심판의 결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에스겔 22:30-31]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유다는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심판을 당합니다. 바로 중보기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중보기도가 한 민족의 역사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돌아온 사람들은 대개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며 믿기 전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 오 할레스비 기도

 

중보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멸망 받을 사람을 구원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 기도하는 자는 절대 패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지쳐 쓰러져있는 사람을 살려내는 역할을 합니다.

 

중보기도는 남도 살리지만 나도 사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1:42a]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예수님은 100% 기도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기도는 100%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중보기도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에 굉장히 기쁨으로 반응하십니다.

 

기도의 힘을 무시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보기도는 영적 기류를 바꿉니다.

 

2. 심판이 보류되었다

아모스의 기도로 메뚜기 떼와 불 심판이 보류되었습니다. 세 번째 다림질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되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재앙을 돌이키시기도 하시지만 완전한 돌이킴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심판하십니다.

 

어느 철학자가 5분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죽여보라고 합니다. 5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소리칩니다.

 

군중에서 이를 보던 한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 철학자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그를 향한 육체의 심판을 잠시 보류해 주셨던 겁니다. 하나님이 곧바로 데려가실 수도 있지만 잠시 보류해주시는 겁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언제 가는 죽고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 죽음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을 자각하는 그 순간 나에게 보류된 심판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어서 주님께 나오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사람에게는 잠시 보류해 주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확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 어떻게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앞으로 나오시기를 간곡히 축원 드립니다.

 

누군가에게는 희소식이 누군가에게는 슬픈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시편 50:15]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 환란에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채 그냥 형식적으로 끌려 나오신 분이 있으실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 동안 그 심판을 얼마 동안 보류해 주실 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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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 15:08

20180715일 설교 말씀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12-16]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리의 잘못과 실수로 받는 고난과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이 있다.

 

[베드로전서 4:15]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우리의 잘못과 실수로 고난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드러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말한다. 우리는 내 잘못과 실수가 아닌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을 때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

 

고난에 대한 태도

1. 이상히 여기지 말라

[베드로전서 4:12]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낯선 사람에서 유래된 말이다. 고난을 친정어머니가 오는 것처럼 반겨 맞으라는 것이다.

 

고난에 대한 태도

2.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3]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즐거워하라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고난이 다가오면 그 고난을 존중해주고 기뻐 날뛰라는 것이다.

 

고난에 대한 태도

3. 부끄러워 말라

[베드로전서 4:16a]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세상은 고난을 실패와 수치로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이라면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1.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13a]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주님께서 당신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이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표현했다.

 

[골로새서 1:24]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가 나의 잘못과 실수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고 하면 그것은 저주나 실패가 아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여하다는 것은 혈연으로 맺어서 떨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연합체,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 주님이 받으신 고난이 새삼 느껴진다. 그 마음이 전달되어 진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14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시고 나온 범브란트 목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특이한 황홀경과 같은 기쁨을 맛보며 살았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주님과 관계가 맺어졌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받는 고난을 주님이 받는 고난과 동일하게 생각하신다.

 

[사도행전 9:4b]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도행전 9:5a]

주여 누구시니이까

 

[사도행전 9:5b]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박해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를 박해한 것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였냐고 하신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그러므로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2. 영광의 날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13]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는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를 말한다. 주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재림하신다. 그날에 주님의 고난에 참여한 자들이 어린아이들처럼 기뻐하며 날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고 영광만을 받으려고 한다. 그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 사람들은 고난을 아주 거창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런 것만이 고난이 아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을 믿음으로 받는 박해와 멸시도 고난이다. 창조의 질서를 어기는 동성애는 죄라고 말하는 것으로 인해서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것도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을 말할 때마다 영광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다.

 

[로마서 8:17b]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요한복음 15:20]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과거 예수님을 미워하고 박해했던 세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은 주는 것 없이 우리를 미워한다. 신앙생활하면서 일부러 고난을 자청하지는 말되, 그 고난이 다가온다면 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로마서 8:18]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장차 주님이 오셔서 내가 누리게 될 영광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돈 때문에 신앙에 양심을 팔지 마시고, 가난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질병 때문에 하나님 원망하지 말고, 장차 내가 누리게 될 영광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교해 보시면 그 영광의 소망 때문에 고난을 이겨내면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3.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14]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영광의 영은 성령님을 말한다. 지금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데 주님이 방관하시면 말이 되겠는가? 반드시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그 고난받는 사람 위에 함께 하신다. 같이 아파하시고 울어주시고 힘도 주시고 순교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마가복음 13:11]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고난받는 자에게는 그만큼 성령님이 강력하게 임하신다.

 

[사도행전 6:15]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왜 돌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이 천사 같았을까? 그것은 영광의 영 곧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령님을 깊이 경험하려면 고난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성령이 충만하면 고난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고난을 통과할 때에 성령을 만날 수 있다. 고난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다.

 

영광의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사는 날 동안 정말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실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자들이 죽음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4.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고난은 영광의 순간이 된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복으로 말하고 영광으로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다.

 

[다니엘 3:2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같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출세하고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드러낼 수 있는 때는 고난의 때이다.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고난 가운데 당당하고 즐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당신을 보니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것입니다.

 

이 고난이 나로 하여금 다시 오실 주님의 영광의 날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이 고난이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이 고난이 힘들고 어렵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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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15:39

20180708일 설교 말씀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즐거워하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12-16]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난에 대한 생각

여러분은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난을 좋아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은 내 인생에 저주라고까지 생각하며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사주팔자, 운세를 보기도 하고 양심마저 버리고 비굴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종교를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0]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디모데후서 3:12]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14:22b]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전서 4:13a]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4a]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이렇게 성경은 고난에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복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고난을 복이라고 하지 않는다.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반드시 받아야 할 고난과 받지 말아야 할 고난이 있다.

[베드로전서 4:15]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인한 고난

살인이나 도둑질은 십계명 중 육계명과 팔계명에 속한 중범죄이다. 그다음 악행은 중범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할 때 나쁘다고 얘기하는 범죄를 말한다. 교통법규 위반, 거짓말, 약속 위반 등 사회적 중범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할 때 이건 안된다고 말하는 나쁜 행동을 말한다.

 

그리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타인을 위해 감독관의 입장에 서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이 감독관처럼 되어서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해서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일로 인해서 고난을 받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고난을 당했는데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고난으로 착각을 하며 억울해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고난은 그런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성도들을 보면 예수가 생각나서 그리스도인, 우리말로 예수쟁이라고 불렀다. 존경의 의미가 아니라 경멸의 의미로 불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은 내가 그리스도를 내 삶에 들어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것

 

내 실수로 받는 고난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내가 받는 고난을 말한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으면 굉장히 혼란스러워한다. 그것은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고난을 한 자루에 집어넣고는 흔들어 섞어버렸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고난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 케네스 해긴 그리스도인의 고난

 

이 고난이 나의 잘 못과 실수로 주어진 고난인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고난인지 구별을 해야 하는데 그냥 그 고난 자체로만 대해 버린다. 이 고난을 구별하지 못하면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애매모호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다가왔을 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에 대한 태도

1. 이상히 여기지 말라

[베드로전서 4:12]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상상을 초월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히브리서 11:36-38]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래서 베드로는 불 시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한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낯선 사람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해하려는 적처럼 대하지 말고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 친구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불 시험이 나를 연단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불 시험을 막아 주실 수 있다. 하지만 그 불 시험을 막지 않으신다.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서이다. 성도는 이런 불 시험을 받으면서 의심의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모난 부분이 깎여 지면서 순결해진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불 시험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려 오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나를 실패하게 하거나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를 연단해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과수의 나무를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다. 하나님도 우리를 대하실 때 우리를 연단하여 단단히 세우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니 지금 당하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친정어머니가 오실 때 빈손으로 오시지 않듯이 고난도 마찬가지다. 그 고난의 보따리 속에는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것이 참 많이 들어 있다.

 

고난은 주님 주시는 변장된 축복이다

 

성경을 보면 불 시험당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다윗이 있다. 17년을 사울 왕으로부터 쫓겨 다녔다. 수없이 오랜 생활 동안 굶주리면서 불편한 생활을 했다. 자신으로 인해서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했다.

 

[시편 119:71a]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또 한 사람 욥이 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모든 재산 그리고 건강을 잃었다.

 

[욥기 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절대로 이상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고난에 대한 태도

2.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3]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즐거워하라는 것이 현재 능동형으로 되어 있다. 고대 사회에서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말과 같이 사용되었다. 인사하듯이 반겨 맞으라는 것이다. 고난이 다가오게 되면은 그 고난을 굉장히 존중해 주면서 너무나 기뻐서 날뛰라는 것이다.

 

고난이 다가왔을 때 이렇게 기뻐할 수 있겠는가? 죗성을 가진 우리 인간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편지를 쓴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하고 주님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이렇게 반응했다.

[마태복음 16:22]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렇게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님이 받으시는 고난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순절의 성령 충만을 받고 난 후에는 고난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사도행전 5:41]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고난을 즐거워하며 기뻐하게 되었다.

 

예수님도 고난을 기뻐하신 적이 없다.

[마태복음 26:38]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모든 사람은 고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난을 두려워한다.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해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

 

고난에 대한 태도

3. 부끄러워 말라

[베드로전서 4:16a]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실패, 수치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이라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다니는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분이 계신다.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교회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 역시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고난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용하신 그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 8:38]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자녀로 삼으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그 주님을 부끄러워한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실수로 인한 고난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이 다가오면 즐거워하며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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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1 13:17

20180701일 설교 말씀

 

이렇게 서로 사랑하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9-11]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권면했다.

1. 기도하라

[베드로전서 4:7]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보초를 서는 군인처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절제하면서 기도하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 삶이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고난과 핍박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직분과 신앙 연수를 자랑하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은 운동선수가 결승선이 보여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열렬히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질수록 더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사랑은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고 덮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덮어짐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허물이 보이면 정죄하지 말고 덮어주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기도로 호흡하고 사랑으로 덮어야 한다. 이 말은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사랑은 사람과의 관계를 말한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관계가 중요하다.

 

오늘은 이렇게 사랑하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우리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라

[베드로전서 4:9]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대접하는 것이 곧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대접한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필록세노스라고 하는데

필로스’(사랑) + ‘크세노스’(나그네)

대접하라는 말은 나그네에게 사랑하라는 말이다.

 

공동 번역에서는 이 말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여러분은 모두 나그네들이니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극진히 대접하십시오

 

고대에는 숙박시설이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했다. 성경을 보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다.

 

[마태복음 25:35]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때의 심판에 기준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로마서 12:13]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네로 황제의 핍박을 피해 여기저기 피해 살고 있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집과 가정을 개방해서 잘 대접해 드렸다.

 

그런데 자신의 집을 오픈하고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래서 대접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한다.

 

[베드로전서 4:9]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왜 우리가 원망 없이 대접을 해야 하는가?

첫째, 원망 없이 대접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원망 없이 대접하는 것을 잊지 않으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10:42]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는다. - 존 웨슬리

 

내가 지금 봉사하면 당장은 고생과 손해가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이루어진 봉사와 섬김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잊지 않고 복을 주신다.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이 심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보고 자라는 여러분의 자녀들도 누군가를 대접하고 섬기는 자로 살게 됩니다.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베드로전서 4:10]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허락해 주셨다. 만약에 다 동일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은 삭막해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서로 다른 달란트를 주셨다.

 

은사를 주신 이유는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봉사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고 봉사하게 하시기 위해서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이다.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청기기란 오이코노모스관리자라는 뜻이다. 물질과 시간의 원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물질과 시간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은사도 하나님이 주셨다. 그 은사를 따라서 봉사를 하되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온전하게 사용해야 한다.

 

은사를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청지기이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통해 선한 청지기처럼 봉사해야 한다. 자기희생이 곧 봉사다.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절대로 섬김의 삶을 살 수 가없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따라서 섬김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섬김의 자세

1.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말하라

[베드로전서 4:11a]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말로 하는 섬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랄레이’() :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

로기오’() :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때 사용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 할 때는 자신의 사상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서 전해야 한다. 말의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처럼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전해야 한다.

 

섬김의 자세

2.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라

[베드로전서 4:11b]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봉사하는 것 역시 내 힘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 내가 지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열심으로만 하다 보면 선을 행하다가도 낙심이 될 때가 있다.

 

하나님의 공급하는 힘으로 한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을 말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잘 알고 계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오셨다.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으려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해져야 한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전서 4:11c]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섬김의 목적

섬김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그 목적하나만 가지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봉사하는 분들 가운데는 자신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고 힘과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나를 알리기 위해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0: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성도 여러분 더 늙고 병들기 전에, 지금 있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봉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힘이 있을 때 주님의 나라와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만 받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다 보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누군가를 열심히 섬기는 삶을 살다 보면 인생의 기쁨을 알게 된다. 인생의 보람과 행복은 얼마나 내가 베풀고 섬기며 사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내가 얼마나 베풀며 살고 있는가, 얼마나 흘러 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가, 얼마나 섬기는 삶을 살고 있느가를 묻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주님의 기쁨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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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5:44

20180624일 설교 말씀

 

기도로 호흡하고 사랑으로 덮으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모든 일에는 때와 기한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도 말세, 지구 종말을 얘기하고 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가 말하는 만물의 마지막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여 이루어질 심판과 우주적 종말을 말한다.

 

성경은 예언과 성취로 되어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456회나 나온다.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초림보다도 재림이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다시 오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6:27]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러면 예수님이 심판 주러 다시 오실 때에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베드로후서 3:10]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마태복음 24:29]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하늘의 권능들은 그동안 사람들을 미혹했던 영들을 말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2,000년 전에 그러한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 마지막이 훨씬 더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어쩌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인생에 영원한 하루는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도하라

[베드로전서 4:7]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군인이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초를 서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한다. 절제에 기초한 깨어있는 정신을 근신이라고 말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는 것도, 운동도, 여가 생활도, 수다 떠는 것도, 모임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욕을 따라 다 살다 보면 언제 기도할 수 있겠는가?

 

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1. 우리의 삶이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5:8]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영적 전쟁에는 싸우는 대적이 있다. 바로 원수 마귀다. 마귀는 졸지도 않고 계속해서 두르 다니며 무너트릴 가정과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제자들은 모두 잠들었지만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잠들지 않았다. 사탄은 우리가 삶에 안주해서 삶에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든다.

 

[누가복음 18:8b]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 다시 오실 때가 되면 믿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는 사람이다. 불가 2~30년 전에는 깊은 산골짜기에 기도의 소리가 울려 퍼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도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2.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핍박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성도들은 네로 황제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었다. 그 핍박 앞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베드로는 그러한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다.

 

[베드로전서 4:12-13]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런데 누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결론은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는 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전략을 짜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전략과 계획을 짜는 것보다 기도가 먼저다.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먼저다. 누군가를 향해서 비난과 야유를 퍼 붓는 것보다 기도가 먼저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에 무릎을 꿇으면 내 마음에 평안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자는 정체성이 분명하다.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해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따지지 않는다.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누가 최후의 승리를 노래하던가? 돈 있는 사람?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 아니다. 기도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마지막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12]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도바울도 말한다.

[디모데후서 3:1-2a]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자기 밖에 모르고 돈을 사랑한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특징이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오직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삶을 사는 것은 죄다.

 

베드로는 기도를 먼저 얘기하고 사랑을 말했다. 그것은 결국 기도하는 자 만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기도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런데 내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오는 사람, 아주 껄끄러운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기도하는 자만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기도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기도가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기도를 많이 했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 기도하고 난 후에 나는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고린도전서 13: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아주 열렬히 깊게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운동선수가 긴장된 마음으로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과 같다. 이만하면 되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더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핍박, 고난이 더 깊을수록 더 열렬히 깊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한다. 처음에는 열렬히 뜨겁게 사랑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식어간다. 가정에 문제, 직장의 문제가 생겼는가? 서로를 향해서 허물을 들추어내고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와도 서로 합력하여 사랑하면 그 문제를 다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이 무엇일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다.

[잠언 10:12]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사랑은 덮어주는 것이다. 까발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장님이 되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허물이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사랑이 식어지면 죄와 허물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모른다.

 

그래서 마음은 현미경이 되어 버린다. 현미경으로 보게 되면 만질 것, 먹을 것이 없다. 마찬가지다. 현미경으로 사람을 보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보게 되면 허물이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그 보혈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가려주셨기 때문이다.

 

[시편 32:1]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물론 죄를 덮어준다는 것은 불의를 눈 감아 준다는 것이 아니다. 연약하여 넘어진 것을 덮어준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죽을 때 자기가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지 않고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죽는다.” - 토니 캄폴로니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러므로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

 

성도 여러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하루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이 우리의 인생에 마지막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한마디로 하면 마지막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도로 호흡하고 사랑으로 덮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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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17:34

20180617일 설교 말씀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라 (김은호 목사)

 

[예레미야 29:7-13]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서 완전한 핵폐기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단계적으로 비핵화가 이루어지고 북한이 개방되고 북한에서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빌론의 평안을 구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레미야의 편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많은 하나님의 사람은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하며 정체성마저도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편지를 쓰게 하셔서 그 편지를 통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생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다.

 

바벨론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

[예레미야 29:7a]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바빌론은 자신의 나라를 여러 차례 침공하고 성전을 약탈하고 불에 태운 원수의 나라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벨론은 타도의 대상이었다.

[시편 137:1]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백성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시편 137:8-9]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바벨론이 우리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 약 1,500km4개월 정도 걸어서 끌려갔다. 바벨론의 군인들은 힘들어 우는 아이를 바위에 내쳤다. 그런 모습을 보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겠는가? 북한은 지구상에서 기독교를 가장 탄압하는 국가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북한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면 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을 힘들게 한 기업이나 가정, 어떤 사람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한다면 기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해야 한다. 신앙생활은 내 이념과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마태복음 26:39b]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신앙생활은 내 뜻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왜 바벨론 성읍이 평안을 구해야 하는가?

1. 그 성읍이 평안해야 나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9:7b]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하나님의 명령은 엄밀하게 따지면 바벨론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이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용서는 너무나 힘들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자를 위한 용서는 죽음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하신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왜냐하면 용서를 해야 내가 살고 용서를 해야 사탄이 나와 내 가정을 공격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를 품고 있으면 사탄이 공격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힘들지만 용서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10:5]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우리는 어느 집에를 가던지 누구를 만나던지 기도를 해야 한다.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이 사람이 평안할지어다. 라고 기도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 바벨론 성읍이 평안을 구해야 하는가?

2. 평안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9:11a]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불안, 두려움이 아니다. 평안이다. 하나님의 뜻은 평안이다.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난이 면제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평안이 없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평안이다.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유다 백성들은 지금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을 당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와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해야만 했다.

 

바벨론의 70년 포로생활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70년으로 정하셨을까? 그것은 가장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실 때 징계의 기간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신다. 정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징계하신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징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를 보면 그 내용이 있다.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크기와 길이가 있다.

 

징계가 가볍다면 죄를 범상히 여긴다. 징계가 너무 크다면 영원히 낙심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그 죄와 관계된 징계를 주신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내린 징계는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었다. 하나님은 70년 징계 기간이 끝났을 때에 돌아오게 하셨고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런데 2020년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에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적인 관점,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보게 되면 625전쟁은 우상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여러 곳에서 만일 너희가 우상숭배를 하면 반드시 징계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한국교회 안에 이런 일이 있었다. 193899일 장로교 27차 총회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평양의 서문밖교회에서 있었다. 그 총회는 일본이 강요한 신사참배가 우상숭배가 아닌 국가 행사라고 결의를 했다. 많은 성도와 목사님들이 우상숭배라 하여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총회는 우상숭배를 결의하고 교회가 신사참배에 앞장섰다.

 

그 후 정확히 10년 후 194899일에 평양에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하나님은 2년간의 기회를 주셨지만 한국교회는 회개하지 않았고 625전쟁이 일어났다. 유물론 사상을 가진 공산정권은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북한 땅에 세워졌던 3,500여 교회가 흔적도 없이 문을 닫아야 했다. 1907년 평양에 대부흥운동이 있었다. 그 산실인 장대현 교회가 세워졌던 곳에 주체사상의 총 본산지인 만수대가 들어섰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졌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우상 앞에 절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20년이 되면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바벨론의 70년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 625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2020년이 되는 해에 우리 조국에도 이런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예레미야 29:12]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내가 그렇게 하겠지만 그래도 내게로 와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에스겔 36:36b]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되면 그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에스겔 36:37a]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분명히 약속하셨지만 그래도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도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부르짖어 기도하라

[예레미야 29:12a]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한 기도를 말한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요, 불이 붙지 않은 불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 세네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평범하게 기도하지 말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내게로 와서 기도하라

[예레미야 29:12b]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이것은 회개와 관련되어 있다. 범죄 하여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인데 그냥 기도하지 말고 그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회개하고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하셨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온 마음으로 기도하라

[예레미야 29:13]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온 마음은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의심을 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확신이지 확률이 아니다.

 

[예레미야 29:13]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간절히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경험해야 한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감격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때이다.

우리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이 평화적 분위기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몰아내고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오늘부터라도 간절하게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625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2020년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운명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국의 운명 역시 기도하는 여러분의 무릎에 달려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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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15:57

20180610일 설교 말씀

 

이렇게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김은호 목사)

 

[시편 42:4-11]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것이 있다. 영적인 침체를 겪게 된다. 본문에 보면 낙심이라는 단어가 무려 3, 불안이 2번이나 나온다.

 

[시편 42:5a]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시편 42:6a]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시편 42:11a]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4절에 보면 마음이 상하였다는 말도 있다.

[시편 42:4b]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이것을 보게 되면 이 시인에게도 영적인 침체가 왔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도 영적인 침체가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도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엘리야 선지자,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영적인 침체가 있을 수 있다.

 

영적 침체의 원인은 엘리야 선지자는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기대가 사라짐으로 영적 침체를 빠졌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명예가 손상되었을 때, 인기가 사라지거나 제물들을 잃어버렸을 때 영적 침체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선을 행하다 낙심하는 경우도 있다.

 

[갈라디아서 6:9a]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언제 영적 침체가 오는가?

1.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질 때

[시편 42:4]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인은 과거에 여러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전에 나가 축제의 예배를 드렸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하나님의 전으로 나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할 상황에 빠져있다.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마음이 상한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나 홀로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데 눈치를 보며 홀로 나와 예배를 드리는 모습과 온 가족이 나와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비교하면 마음이 상한다. 예배를 드리고 싶지만 건강의 이유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도 다가올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지면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되어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침체에 빠지지 않으려면 예배를 여러분의 인생에 최우선 순위로 두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요나 2:4]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비록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예배드리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언제 영적 침체가 오는가?

2.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

[시편 42:7]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멀리서 보면 장관으로 아름다운데 가까이서는 떨어지는 소리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거대한 파도와 물보라가 덮친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날들이 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물질, 건강,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두렵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두렵다. 이럴 때 우리의 영혼은 낙심한다.

 

언제 영적 침체가 오는가?

3.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할 때

[시편 42:9a]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반석이신 하나님은 자신을 안전에게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이 시인은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그 하나님을 믿는데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냐고 한다.

 

고난이 너무나 크거나 시간이 길어지면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을 때가 있다. 하나님이 꼭 나를 잊어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 영혼이 낙심되고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언제 영적 침체가 오는가?

4. 비방과 조롱을 받을 때

[시편 42:10]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너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냐고 비방하고 하나님을 조롱한다. 그런데 대적들로 인한 비난의 칼이 내 뼈를 찌르듯이 아프다고 한다. 살을 찔러도 아픈데 뼈를 찌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면 그것이 내게 아픔이고 눈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런 영적인 침체가 우리 가운데 왔을 때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1.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시편 42:6]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요단 땅은 이스라엘을 뜻하고 헤르몬과 미살산은 이스라엘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산을 비유하여 말한다. 시인은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한다는 거다.

 

우리도 내 영혼이 낙심되고 불안할 때 과거의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기억을 해야 한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내 인생 가운데 그렇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지금과 미래의 인생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바쁘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2.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라

5절과 11절에 보면 시인은 지금 자신의 영혼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내 영혼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시인은 낙망하고 불안한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의 영혼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진정한 회개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시편 42:5]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42:11]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질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에게 외쳤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여전히 찬송하겠다고 한다.

 

여전히 찬송한다는 것은?

상황에 메이지 않고 반복적으로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

오드’(여전히) : 반복하여, 오히려

오덴누‘(내가 찬송하리로다) : 큰 소리로 찬양하다

 

시인은 자신이 낙망하고 불안한 상황에 있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변함없이 도리어 큰 소리로 반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에게 명령해야 한다. 내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해도 그 상황에 매임을 받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문에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가 아니라 여전히입니다.

 

인생의 밤중에도 찬송하는 것

[시편 42:8]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여기서 밤은 인생의 밤을 말한다. 사람들은 인생의 밤을 만나면 좌절한다. 죽음을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그런데 인생의 밤을 만나면 사람 만나기가 싫어진다. 밖에 나가기가 싫어진다. 입술이 열리지가 않는다. 그럴 때 가만히 있으며 안 된다. 공황장애로 간다. 의지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인생의 밤중에 여전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오륜의 모든 지체들이 인생의 밤을 만났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이다.

[시편 42:11b]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인생의 밤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인생에 밤 가운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이다. 시인은 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시편 42:11b]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지금은 내가 비록 지금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실 것을 믿었다. 이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

 

그렇다. 믿음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동굴은 한없이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터널을 아무리 길어도 그 끝이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인생의 긴 터널 가운데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타나심으로 도우실 겁니다.

 

영적인 침체를 겪으셨습니까? 예배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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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3 15:51

20180603일 설교 말씀

 

하나님! 목마릅니다 (김은호 목사)

 

[시편 42:1-3]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목마름의 고통을 당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목마름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경험했지만 목마름의 고통을 당하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목마름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이런 육체적 목마름뿐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목마름, 승리 대한 목마름, 민주주의에 대한 목마름, 그 밖에도 돈, 쾌락, 명예 등 많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은 누가 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저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시인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었고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시를 썼습니다.

 

[시편 42:1]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 갈급합니다

 

지금 시인은 자신의 갈급함을 목마른 사슴으로 비유하고 있다. 사슴이 동물 중에 가장 갈증을 많이 느끼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슴은 풀을 먹지 않고 일주일 이상을 견디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는 며칠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은 단순한 목마름을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라 죽고 사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인의 목마름은 영적의 목마름이다.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다. 갈급하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아라그인데 고대하다, 부르짖다, 헐떡이다.라는 뜻이다. 지금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만나주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 나에게 이런 영적인 목마름이 있습니까? 세상의 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만나주시지 않으면 지금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이 목마름이 있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목마름의 고통이 우리에게 없다.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개척교회 시절에는 있었는데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점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돈, 취업, 비즈니스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 그 영적인 목마름이 없다는 것이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잡스가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에 초정 되어 한 연설의 말미에 이런 얘기를 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배고픈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주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갈망하라는 거다. 배고픈 자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 배부른 사람들, 출세한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저는 갑질하는 대기업의 자녀들을 보고 분노하기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벌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릴 적부터 배고품을 알고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보고 자랐다면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사야 55:1a]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두 목마를 수밖에 없다. 지금 어떤 사람은 돈, 쾌락, 인기와 명예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런데 물질을 가졌다고 목마름이 사라진던가? 많이 배워 명문 대학을 나오면 목마름이 사라지던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이 있다. 이것은 어떤 것으로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채워질 수 있다.” - 파스칼

 

왜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많은 걸 가져도 부족할까? 우리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영적인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만이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도 내 영혼이 채워지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내 영혼의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

 

그런데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다.

 

[마태복음 5:6]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영적인 만족을 누린다.

 

[시편 107:9]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인격적인 관계다.

 

[이사야 41:17]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오늘도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찾으신다. 똑똑한 자들이 아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사슴이 되기를 바랍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

 

시인이 시냇물로 비유한 것은 우리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되시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13a]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인간은 가진 것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생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영적인 목마름이 온 것이다.

 

[요한복음 19:28]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주님이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외치셨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가 지옥에서 받아야 할 대표적인 형벌이 목마름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6:24b]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죗값을 대신하신 것이다.

 

둘째,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기 위해서다.

 

[요한복음 4:1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무엇일까?

[요한복음 7:37b-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여기서 말하는 생수는 지금 마시고 있는 그런 물이 아니다.

[요한복음 7:39a]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우리 안에 내주한 성령의 역사가 곧 생수를 마시는 것과 같다. 성령이 임하시면 잠자는 영혼들이 깨어난다. 우리의 영혼이 독수리처럼 날아오른다. 세상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평강이 임한다.

 

[시편 42:2]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하나님 갈망합니다

 

갈망하다는 말의 뜻은 목이 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는가?

[시편 42:2a]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한다.

 

[시편 42:3]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지금 시인은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조롱받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시편 42:3b]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한다. 고난 가운데서도 누리고 있는 평안을 모른다.

 

시인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양식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조롱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얼마나 마음이 상하는가. 오늘도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네 인생이 왜 그러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시인은 도리어 하나님을 갈망했다.

 

내 영혼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아무리 조롱하고 비난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을 판단한다. 기도에 응답이 있으면 살아계시고 응답이 없으면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시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조롱하고 비난해도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갈망한다.

 

갈급함과 갈망은?

그것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다.

[시편 42:2]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 시인은 지금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을 그토록 갈망했다. 예배가 이렇게 중요하다.

 

예배란 하나님의 생수를 마시는 것이다. 주님은 물을 달라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동문서답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목마르십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목마름을 겪고 있습니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당하셨습니까?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 그런 비난과 조롱을 받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오십시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그런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주린 영혼을 채워 주십니다.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기름부음을 허락하실 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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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14:15

20180520일 설교 말씀

 

음행을 피하라 (김은호 목사)

 

[고린도전서 6:18-20]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음란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보다도 더 음란한 시대를 살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얼마나 음란물을 보는가?” 의 설문에

1~3: 남자 44.4%, 여자 43%

1~3: 남자 35.4%, 여자 5%로 나타났다.

 

요즘 청소년들은 가상현실로 음란물을 보며, 쉬는 시간에는 유사 성행위 장난을 치기도 한다고 한다.

 

대학생에게 혼전 성관계의 대한 설문에는

있다 : 남자 78.7%, 여자 70.8%,

없다 : 남자 15.7%, 여자 18.1%로 답했다.

 

이번에는 혼전 순결에 대해서 기독청년들에게 물었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 38.7%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 : 61.3%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는가?”의 질문에는

있다 : 52%

없다 : 48%

 

혼전 동거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더니

찬성 : 50.1%

반대 : 38.3%로 답했다.

 

이런 통계를 보게 되면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통계뿐 만 아니라 사용하는 대화를 보면 성과 관련된 욕들이 많다. 욕이 아니면 대화가 안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한 시대인지 알 수 있다.

 

음행을 피하라

[고린도전서 6:18a]

음행을 피하라

 

음행을 피하라는 것은 음행으로부터 도망치라는 것이다. 음행은 다른 것과 달리 그 유혹에 대하여 철저하게 피해야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음행은 도전해서 싸워서 이겨내는 것이 아니다. 음행은 피하여 이겨내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빅터 클라이는 음란물의 중독된 사람들을 연구했다.

첫 번 째 단계는 호기심의 단계다. 대부분의 죄가 호기심으로 출발된다. 동성연애, 담배 모두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두 번 째 단계는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무감각의 단계이다. 가책도 없게 된다.

네 번째는 실제로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음란은 처음 호기심이 들어 올 때부터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된다.

 

왜 고린도 교인에게 바울이 강력하게 음란을 피하라고 했을까? 당시 고린도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음란의 문제가 컸다.

 

[고린도전서 5:1]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이것이 교린도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라는 신전이 있었다. 그곳의 여 사재들은 밤 만 되면 고린도 시내로 내려와 몸을 팔았다. “고린도인처럼 행하다라고 하면 매춘을 행하다라고 뜻했을 정도로 음란했다고 한다.

 

당시 헬라권 문화의 사람들에게는 이원론이라는 철학이 있었다. 우리 육체는 더럽고 악하다고 생각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은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더럽고 악하기 때문에 이 몸으로 어떤 일을 하던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성적으로 타락하게 만들었다.

 

바울은 왜 음행을 피하라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했는가.

 

왜 음행을 피해야 하는가?

1.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18]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 시기, 질투 등도 따지고 보면 죄를 짓는 것과 같은데 왜 음행만 자기 몸에 죄를 짓는다고 했을까? 그것은 음행만큼 자기 몸을 전인격적으로 타락하게 만드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음행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임질, 매독, 에이즈 등과 같은 병이 많이 나타난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하루에 약 7만 명의 아이들이 성병에 걸린다고 한다. 음행은 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게 만든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정까지 파괴 시킨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가정이 깨어지는 70%가 음행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게 되면 음행은 전쟁보다도 더 심각한 피해를 가져다준다. 뿐만 아니라 영혼을 망하게 만든다.

 

[잠언 6:32-33]

32.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33.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이렇게 음행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음행을 피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 음행을 피해야 하는가?

2. 내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고린도전서 6:15]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음행을 피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주님과 신비적으로 연합되었다.

 

[요한복음 14:20]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듭난 영 만이 주님과 연합되어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영 만이 아니라 내 몸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고 한다.

 

[고린도전서 6:15b]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 바 되어 있는 자가 어떻게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냐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16]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창녀와 합하게 되면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창세기 2:24]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주례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결혼해서 부부가 성관계를 맺으면 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몸 만이 아니라 다양한 속성과 기질이 서로 섞여 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음란한 생활을 많이 한 사람은 반드시 철저하게 회개하고 결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생각하지 않은 굉장히 음란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

 

왜 음행을 피해야 하는가?

3.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고린도전서 6:19a]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여 계신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의 전이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3:16]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구약에서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성전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의 몸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성전이다.

 

[고린도전서 3:17]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이 얼마나 거룩했는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그 자를 죽였다. 왜 우리의 몸을 학대하거나 해로운 것을 먹으면 안 되고 음행을 하면 안 되는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3]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음란을 피하는 것이 거룩함이라는 것이다.

 

왜 음행을 피해야 하는가?

4. 내 몸은 하나님께서 값을 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이다

[고린도전서 6:19b-20]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다. 당신의 아들의 생명을 주고 우리를 사셨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의 영혼만 값을 주고 사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내 몸도 값을 주고 사셨다는 것이다. 내 몸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자신의 몸을 학대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소유다.

 

우리가 이제 음행을 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7:2-3]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1. 자기 남편과 아내를 두라

결혼을 하지 않으면 성적인 욕구를 이겨내기 힘들어서 결혼을 해서 자기 아내, 자기 남편을 두라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이고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많은 경우에 성적인 욕구를 해결할 수 있어서 음행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빨리 결혼하십시오. 그리고 결혼을 하였다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를 다하십시오.

 

[고린도전서 7:3]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여기서 의무는 부부관계를 말한다. 합법적인 부부의 관계는 하나님 보시기에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건강하고 정상적인 것이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2. 서로 분방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7:5]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방을 따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 잠자리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욕주의는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기도에 집중할 때는 그렇게 할 수는 있는데 서로 합의하에, 그리고 긴 시간이 되면 안 된다.

 

[고린도전서 7:5b]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사탄은 언제나 틈을 노린다. 틈이 생기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성적으로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음행을 피하라. 아직도 음행의 자리에 있으시다면 오늘부터 음행을 끊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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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15:46

20180513일 설교 말씀

 

부모를 경외함이 거룩함이다 (김은호 목사)

 

[에베소서 6:1-3, 레위기 19: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은 신학 성경에서 유례된 절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세계 많은 크리스천들이 5월 둘째 주를 어버이 주일로 섬기고 있습니다.

 

어버이 주일의 유래

어버이 주일은 원래 어머니 주일이라는 명칭으로 미국에서부터 시작됐다. 1914년 미국 의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지킬 것을 결의를 하였고,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어버이 주일로 바뀌게 되었다.

 

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도 5월 둘째 주일을 어버일 주일로 지키게 되었고, 1974년부터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고치게 되어서 교회도 어머니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게 되었다.

 

우리가 왜 어버이 주일을 지키는가? 이 날 하루만이라도 효도를 하기 위해서? 아니다. 잊고 살았던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감사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뉘우치고, 반성하며 부모 공경의 삶을 새롭게 결단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버이 주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부모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가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부모를 섬기라

1. 주 안에서 순종하라

[에베소서 6:1]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순종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휘파쿠오아래에서 듣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서 부모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다. 부모 공경은 듣는대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모의 말씀을 잔소리라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순종은 부모님이 나보다 배우지 못했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할지라도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겸손하게 듣고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순종에는 조건이 있다. 주 안에서이다. 부모의 말씀에 다 순종할 수 없다. “너 예수 믿지 마, 기도하지 마, 우상을 숭배해라이럴 때 우리는 순종할 수 없다. 그러나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왜 우리는 주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가.

[에베소서 6:1]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옳다는 것이다. 의롭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모를 섬기라

2. 조건 없이 공경하라

[에베소서 6:2]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구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공경의 뜻은 무겁다는 것이다. 신약은 존경하다’, ‘칭찬하다’, ‘귀하게 여기다이다. 부모의 무게를 인정하고 부모를 존경하며 가치 있게 여기라는 것이다.

 

공경이라는 말의 반대는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잠언 23:22]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신명기 27:16]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런데 오늘 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자식이 너무나 많다. 배우지 못해서, 가진 게 없어서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자녀가 많다. 부모를 공경이 아니라 공격하는 자식이 많아졌다. 그러나 우리는 조건 없이 공경해야 한다. 나를 낳아 주셨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싫든 좋든 부모님이 계시기에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약속 있는 첫 계명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십계명 가운데 일계명부터 사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오계명부터 십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그 중간에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이 있다. 그래서 브리지 계명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를 공경할 수밖에 없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주신 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복을 약속한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밖에 없다.

 

[에베소서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 만이 이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야타브’ (잘되다) : ‘막힘이 없다’, ‘그침이 없다

아라크’ (장수하다) : ‘계속해서 길어지다

 

나만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가문이 자자손손 이어진다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면 공경이 공경을 낳는다. 복이 복을 낳는다. 그런데 공격이 공격을 낳는다. 부모를 공격하면 여러분의 자식이 여러분을 공격합니다.

 

부모를 공경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부모를 섬기라

3. 부모를 경외하라

[레위기 19:3]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사전을 찾아보면 경외라는 뜻은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이라고 되어 있다. 경외라는 말씀은 공경하라는 말씀보다 더 한 단계 강력한 말씀이다. 경외는 하나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용어다. 사람에게 쓰이는 경우는 북한밖에 없다.

 

왜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경외라는 말이 사람에게도 사용되었을까? 그것은 이 땅의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생물학적으로 이해하기 이전에 직분으로써 이해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 하나님께 직분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한다. 자녀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배워야 한다.

 

부모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빨리 깨닫는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는 아무리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해 줘도 이해를 잘 못한다.

 

부모는 직분으로써 만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생명의 원천으로서 하나님 다음으로 신성하고 존엄한 대상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를 무시하거나 저주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떤 죄보다도 엄하게 다루셨다.

[출애굽기 21:15]

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7]

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마가복음 7:10]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잠언 20:20]

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부모를 저주하면 여러분의 인생의 등불이 꺼질 수 있습니다. 조금 배웠다고 부모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부모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 = 부모님 경외

 

[요한일서 4:20b]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경외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듯 부모를 경외하는 자녀가 많지 않다. 부모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원수처럼 지내는 자식이 많다.

 

부모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 행동도 하신다. 때로는 자녀에게 상처가 되는 말씀을 하실 때도 있다. 때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기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틀렸다고 판단하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부모님을 논리적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언제부터 부모와의 관계가 논리적이었습니까? 이해가 안 되고 설명이 잘 안될지라도 부모를 공경하고 더 나아가 경외하십시오.

 

부모를 경외함이 거룩함이다

레위기 19장은 거룩장이라고 한다.

[레위기 19:2]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내가 거룩하기 때문에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3장부터는 아주 길게 거룩을 설명하신다. 그런데 가장 먼저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 거룩하다고 말씀하신다.

 

[레위기 19:3]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거룩함의 첫 번째 명령이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명력하신 것이 안식일을 지키라 세 번 째 나오는 거룩은 십계명에서 나오는 일계명과 이계명이다.

 

[레위기 19:4a]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이것이 일계명이다.

 

[레위기 19:4b]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이것이 이계명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이것이 거룩이다 라고 말할 때에 십계명의 일계명과 이계명이 먼저 나와야 할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먼저 거룩을 말씀하시면서 네 부모를 경외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다른 게 먼저인데 부모를 경외하라고 가장 먼저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삶의 시작은 부모를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표적인 행동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면 거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 거룩함의 출발이라고 하신다.

 

코데쉬’(거룩) :‘잘라냄’, ‘분리함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구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이 땅의 사람들과 어떻게 구별되겠는가 그것은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다. 아무리 밖에서 인정을 받아도 내 가정에서 부모를 경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눈에는 그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아니다. 구별된 사람이라고 보지 않으신다. 우리는 가정에서 부모를 경외함으로 이 세상의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가. 인륜이고 천륜이기 때문인가?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 당신의 자식이었을 때는 미처 몰랐더랍니다

당신이 그랬듯, 나도 이제 당신처럼

내 자식의 보모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이제야 알아차린

당신의 가슴과 그 눈물을 가슴에 담고

당신의 사랑이 무척 그리운 이 시간에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지켜보시는

고마운 두 분께 외쳐 봅니다.

사랑합니다....내 어머니, 아버지...!!!”

 

정용철 사랑합니다. 내 어머니, 아버지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 하나 있다. 너도 나중에 자식 낳고 키워 봐라. 실제 자식을 낳고 키워 보니 부모의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워지는 이 시간 우리도 이렇게 외쳐 보십시오.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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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14:00

20180506일 설교 말씀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김은호 목사)

 

[열왕기상 2:1-3]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한 유언적인 명령을 함께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죽을 날이 임박하매

[열왕기상 2:1]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다윗은 자신에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열왕기상 2:2a]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 통일 왕국을 이루었던 이런 다윗에게도 인생을 마무리하고 하나님 앞에 서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음은 가장 평등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남의 일인 것처럼 살아간다.

 

샬롯 키틀리라고 하는 두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암으로 투병하다가 3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살고 싶은 날이 참 많은데 저한테 허락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가 되어 함께 늙어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딸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를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누리고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요?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암과 투병 중에 있으면서 이 땅을 떠나면서 그녀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인생의 죽음 앞에서 생각해 보면 하찮은 일까지도 다 감사한 일이 될 수 있다. 다윗에게도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다. 다윗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억울해 하지 않았다. 아주 당당하게 맞이하고 있다.

 

다윗의 유언적 명령

1.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열왕기상 2:2b]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배장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아버지에 이어서 왕이 되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후계자로써 왕이 되었다. 그러니 솔로몬이 마음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겠는가. 백성들이 자신의 말을 잘 따라줄 것인지 등의 불안이 있었다. 이런 마음을 알고 있는 다윗이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되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신명기 31:7a]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왜 힘써 대장부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이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31:7b]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가나안의 원주민을 몰아내는 영적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야 된다고 한다. 솔로몬의 삶 역시 영적 전쟁이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전쟁을 많이 치렀다. 그 전쟁은 구속사적으로 보면 모두 영적 전쟁이다. 두려워 떨면 그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움을 가진 자는 전쟁을 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영적 전쟁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보고 살아가려면, 탐욕의 지배를 받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려면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되어야 한다.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일까 하며 두려워하면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이 세상은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이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면 무식한 사람 취급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면 손해를 당해야 하는 시대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힘써 대장부가 되지 않으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기 쉽지 않다.

 

래퍼 비와이가 있다. 비와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체성이 분명하다. 비와이는 타락한 문화를 하나님의 문화로 바꾸려는 거룩한 꿈을 가졌다. 그래서 하루에 2~3시간을 자며 열심히 노력해서 오늘의 비와이가 되었다. 그는 대장부다. 강하고 담대하다.

 

Hosanna My life Thank God Oh halle hallelu

(호산나 내 인생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 할렐 할렐루)

 

난 널 지배할 것이다. 다 죽어라. 밤새도록 마셔라

너의 하나님은 나를 악마라 부르지만 난 너의 도움이야

 

그는 자신의 랩을 물맷돌로 사용해서 사탄의 거짓들을 폭로하고 타락한 시대의 골리앗을 무너트리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강하고 담대한 용사로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자녀들이 잔머리 굴리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언제나 강한 용사로 살기를 원하신다.

 

누가 대장부가 되는가?

성경을 보면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진 자만이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될 수 있다.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지면 담대할 수 있다. 우리의 자녀가 임마누엘의 신앙을 갖게 해야 한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힘을 쓰라는 것이다. 힘을 쓰지 않으면 대장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힘쓴다는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게 해서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알게 해야 한다. 인생의 어려움의 문제를 돌파해 나가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졸장부가 아닌 대장부가 되길 원하십니까?

정말 여러분의 자녀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믿음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두려워 떨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여러분의 자녀들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고 쓰러지고 넘어졌을지라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또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윗처럼 영적 전쟁의 선봉에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을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키우십시오. 어릴 때부터 강하게 키우십시오. 힘써 대장부가 되게 하십시오.

 

[누가복음 1:80]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누가복음 2:40]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다윗의 유언적 명령

2.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라

[열왕기상 2:3a]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것을 유언했다.

[열왕기상 2:3b]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왜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는가. 그리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다.

 

왜 다윗은 이 두 가지 유언을 가장 먼저 했을까?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대장부처럼 살아왔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들에게 말할 수 있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그렇다면 하나님이 너의 인생을 지켜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런 가르침과 신앙적인 유산을 남기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신이 없다. 가치를 모른다. 교회를 다니고 직분은 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삶을 살지 못했다. 자신은 졸장부처럼 살면서 죽음의 순간에 너는 대장부처럼 살라고 말할 수는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윗은 힘들지만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를 알고 있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5분 후에 여러분의 인생을 부르신다면 여러분의 자녀에게 어떤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떠나고 싶으십니까? 자식은 부모의 영적 성적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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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12:21

20180429일 설교 말씀

 

은혜가 이깁니다 (김은호 목사)

 

[로마서 5:1-2]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은혜라는 단어다. 그런데 이렇게 흔하게 쓰다 보니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을 말한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값 없이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은혜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받고 얻는 것이다.

 

[로마서 5:1a]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로마서 3:24b]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은혜라고 하는 것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내 열심히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값 없이 얻는 것이다.

 

[로마서 5:1a]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

신학적인 용어로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 한다.

의롭다함이라는 것은 법적인 용어다. 내가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해 주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함을 받는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왜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내 죗값을 완벽하게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의롭다하신다. 내가 죄를 안 지어서가 아니다. 오늘 내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사실 한 가지 때문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보신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다.

 

[로마서 5:1b]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0a]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였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노하시고 심판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었다.

 

[에베소서 2:3b]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화평하지 못하고 뒤틀리면 얼마나 불편한가. 만나기도 싫고 얼굴 보기도 싫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데 하나님과 그렇다면 어떻게 참된 평안이 우리에게 있겠는가.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들이 예수님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다. 죄에 대해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 이 평안은 아무나 누리지 못한다. 반드시 예수로 의롭다함을 얻은 자 만이 이 화평을 누릴 수 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이다. 누린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은 즐기는 것이다.

 

[로마서 5:11]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신앙생활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평안을 누리고 즐기는 것이다.

 

[요한복음 16:33a]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물론 우리는 십자가를 매고 좁은 길을 걸으며 때로는 환난을 겪으며 주님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니다.

 

[로마서 5:3a]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비록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을지라도 찬송하며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누리면서 주님 가신 길을 따르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죽지 못해서 지키는 걸 원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

[로마서 5:2a]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들어감이란 접근, 가까이 감을 말한다. 어떤 곳으로 가까이 나가는 것. 어떤 장소로 입장하는 것을 말한다. 들어감이란 단어는 신약성경에 3번 밖에 안 나온다. 백성이 왕한테 나갈 때 사용됐다.

 

[에베소서 2:18]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왕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기 전까지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 구약시대에는 지성소에 대제사장만이 정결하게 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죄인 된 인간은 누구도 거룩하신 그 영광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없다.

 

그로 말미암아

[로마서 5:2a]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을 말한다.

 

[마태복음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이것은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다. 위로부터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심을 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새로운 살 길이 열렸다.

 

[히브리서 10:20]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들어감을 얻었느니라

 

장차 들어가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미 들어감을 얻게 되었고 그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나간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피에 힘입기만 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히브리서 4:16]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것이 복음이다. 연약한 죗성을 가진 우리에게는 날마다 하나님의 긍휼한 은혜가 필요하다. 매일매일 예수의 피에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가 우리를 견고하게, 우리를 온전히 서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은혜가 이깁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사탄은 우리의 죄를 까발리면서 하나님의 자녀 됨을 부정하게 만든다. 수많은 근심과 염려, 상처와 쓴 뿌리들이 우리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쓰러지지 않는다. 사탄의 참소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서 있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내가 양심에 의존해서 서 있다면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참소 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크다. 결국은 은혜가 이긴다. 생명이 죽음을 이기고, 사랑이 분노를 이기듯이 은혜가 결국 이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이긴다.

 

[로마서 5:2b]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영광은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영광

1.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크게 체험할 때는 예배할 때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비추신다. 예배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다.

 

2.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것

우리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기도제목, 삶과 일터 가운데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예수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전의 밖에서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예수의 피를 힘입어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가시길 바랍니다. 인생이 어렵고 힘들다 해도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가 이깁니다. 반드시 은혜가 이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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