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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일 설교 말씀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김은호 목사)

 

[사사기 6:17-24]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드온이라는 사람을 사사로 부르셨다.

[사사기 6:16]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기드온은 큰 용사가 아니다.

매우 소심하고 겁이 많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사사기 6:15b]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기드온은 영적으로도 나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불렀다.

그것은 평가의 기준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상황과 현실을 가지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부르심의 소명에 따라 평가하신다.

어떻게, 어떤 이유로 부르셨는지 소명에 따라서 평가하신다.

하나님과 함께하여 이루어질 미래의 가능성을 보시고 평가하신다.

 

기드온이 표징을 구하다

[사사기 6:17]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기드온은 가장 먼저 여호와의 사자에게 표징을 구한다.

 

기다려 주시기를 구함

[사사기 6:18a]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예물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다려주기를 청한다.

 

[사사기 6:19]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염소를 잡고 한 에바(10kg)의 가루로 떡을 만들고 국까지 끓여 양푼에 담아 가져왔다. 최소한 2시간 이상은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기다려 달라고 하는 기드온의 요구는 무례해 보인다.

여러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다림을 약자의 전유물이라고 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보통 낮은 자, 약한 자이기 때문이다.

이등병이 사단장에게 기다려달라고 하면 기분 좋게 받아들이겠는가?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사사기 6:18b]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기다려 주셨다.

화를 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머물러 기다려 주셨다.

우리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다.

 

[이사야 30:18a]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기다려주신다.

그런데 우리는 조급하고 기다려주지 못한다.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푸시하고 이끌어가지는 분이 아니시다.

내가 깨닫고 마음의 문을 여실 때까지 밖에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인내하시며 기다려주신다.

하나님의 그 기다림의 은혜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시다.

 

최선을 다하여 예물을 준비하였다

염소와 밀가루 한 에바는 자신의 모든 것일 수 있다.

표징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예물을 준비하였다.

자신의 전부를 걸고서라도 자신에게 말씀하신 이가 어떤 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부르심의 소명을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어떤 것도 내려놓지 않는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기도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내 삶의 우상을 내려놔야 한다.

기드온은 헌신과 내려놓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표징을 구했다.

 

표징을 구한 하나님의 사람들

모세도 하나님께 표징을 구했다.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변하고 그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로 바뀌었다.

하나님은 표징을 통해 확신을 주셨다.

 

에례미야 역시 선지자로 부르셨을 때 말을 못한다고 했다.

[예레미야 1:6]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예레미야 1:9]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확인을 위해 표징을 구했다.

 

우리도 표징을 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표징을 구해야 할까?

결론적으로는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표징을 구할 필요가 없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구별할 수 있는 계시의 말씀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표징은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을 하는데 확신이 없다면 그 확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표징을 구할 수 있다.

시시콜콜한 모든 일의 표징이 아니다.

왜냐하면 확신 없이 불안으로 내 인생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편 86:17a]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우리의 삶에는 은총의 표징이 필요하다.

특별히 내 인생의 전환점에서는 확신이 중요하다.

내가 새 언약의 백성이지만 확신이 없다면 은총의 표징을 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물을 받으심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 놓고 그 위에 국을 부르라

[사사기 6:21]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불이 하늘이 아니라 바위에서 나와 살랐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기드온이 드린 예물을 받았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서 살아 역사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런 표징을 받았다면 기뻐해야 하는데 도리여 슬퍼하였다.

[사사기 6:22]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기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사야 6:5a]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면 기뻐해야 하는데 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가복음 5:8]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도 고기를 잡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통해서 선생님이 아니라 메시아 하나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죄인 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두려워 떨 수밖에 없다.

 

[사사기 6:23]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큰 용사로 부르신 기드온이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이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시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있기를 원치 않으신다.

흔들리는 자, 두려워 떠는 자는 결코 영적전쟁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다

기드온은 그동안 조상들로부터 듣고 하나님에 관하여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았다.

그의 아버지 집에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한일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은 것이다.

[사사기 6:24a]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어디에서? 거기에서 제단을 쌓았다.

하나님을 만난 그 자리다.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사람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기도하였다.

 

예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호와를 위한 것이다.

내 중심의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여야 한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가장 먼저 예배의 자리로 나간다.

그리고 여호와를 위하여 재단을 쌓는다.

나를 위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린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 사랑, 은혜를 말해도 예배의 자리로 나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게 되어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의 수단이 아니다. 예배는 우리 삶의 이유이고 목적인 것이다.

예배보다 우선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여호와 살롬

[사사기 6:24a]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놀라운 변화다. 우상을 숭배했던 자가 겁쟁이였던 자가 자신의 입술로 친히 하나님을 고백한다.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두려움에서 해방된 것이다.

예배를 통하여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예배는, 내 중심의 예배가 아닌 여호와를 위한 예배는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평안을 누리게 한다.

 

예배의 결과는 평안이다.

왜냐하면 살롬은 하나님의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관하여 아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예배의 자리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하늘로부터 임하는 놀라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배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며 평강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