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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목사'에 해당되는 글 107건
2018.11.04 15:28

20181104일 설교 말씀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김은호 목사)

 

[골로새서 1:13-14]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는 지난주에 바울이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그치지 않고 기도했던 두 번째, 세 번째 기도의 제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두 번째 기도의 제목은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골로새서 1:11b]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그런데 문제는 타락한 죄성을 가진 우리는 기쁨으로 모든 일에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없다는 겁니다. 체념을 하고 인간의 모든 의지를 동원해서 억지로 한 두 번 정도는 참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든 일에 기쁨으로 견디고 참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을 우리에게 기쁨으로 모든 일에 견디고 참으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11a]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 디나미스가 우리에게 임하기 시작하면 그 성령의 능력으로 어떤 상황과 관계 속에서도 기쁨으로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 기도의 제목은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골로새서 1:12]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도의 기업은 우리의 구원 곧 천국을 말합니다.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은 그 구원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원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골로새서 1:1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렇다면 흑암의 권세는 무엇을 말할까요?

1) 흑암의 권세는?

사탄의 세력을 왜 권세라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권세는 권력과 세력을 아울러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엄청난 권력과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추종하고 따르는 엄청난 귀신들을 포함한 졸개들을 거느리고 있고 죄와 죽음이라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탄의 권세가 아닌 흑암의 권세라고 할까요?

 

왜 흑암의 권세라 부르는가?

1. 사탄의 세력이 빛 되신 주님을 떠나 어두움에 속한 영이기 때문

[누가복음 22:53b]

어둠의 권세로다

 

[에베소서 6:12]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2. 사탄이 빛이신 우리 주님과는 대조적인 악한 속성과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

 

[요한복음 10:10a]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악한 영이 임하면 반드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 일어납니다.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사탄은 눈을 멀게 하여 갈 곳을 알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한일서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흑암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는 곳에는 언제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결박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두려움과 염려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분열과 미움과 고통과 증오와 온갖 저주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흑암의 권세 아래에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2:2]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빛 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두 흑암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나라에 있었습니다.

 

3) 누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었는가?

[골로새서 1:1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흑암의 나라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로새서 1:1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모두 과거 시제 완료형입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사랑의 나라로 옮기신 이 사건이 우리의 과거에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겁니다.

 

[요한복음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남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거듭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옮기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그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그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그 아들의 나라로 우리가 옮겨졌다는 겁니다.

 

[사도행전 26:18a]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실 뿐 아니라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완전히 이주 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빛의 나라로 옮겨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 이상 흑암의 권세를 두려워 하거나 숨어 지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배하고 다스리는 나라를 천국,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왜 굳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천국의 시작과 천국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의 중심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천국은 왕 되신 주님의 통치가 있는 곳입니다.

 

천국은 어린 양(예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 들 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27b]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 7:10]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요한복음 14:3]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빌립보서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바울은 정확히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중심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에는 황금 길이 있습니다. 열두 진주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천국은 아닙니다. 천국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열두 진주 문이 아니고 황금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천국을 맛보며 누리며 살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천국이 만일 황금 길이고 열두 진주 문이라면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죽었다 깨어나도 누릴 수 없습니다. 재벌 회장이나 누릴까 말까 어떻게 그 천국을 우리가 누리며 살아가겠습니까?

 

천국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확신하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의 성경이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계의 시작입니다. 천국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윤리입니다. 천국이 없는 소망은 산소망이 아닙니다.

 

누가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심을 받는가?

 

[골로새서 1:14]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죄라는 것은 명령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죗값이 지불되어야 사라집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완벽하게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동안 사탄이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안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지불하시므로 흑암의 권세는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릴 권리를 박탈당한 것입니다.

 

지금 아들의 나라를 경험하라

우리는 죽어서만 이 아리라 지금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1:1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네가 죽으면 그 때 옮기실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에 이미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셨습니다.

 

[마태복음 12:28]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1b]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성경에 나오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장차 죽어서 들어가게 될 천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경우에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면서 살 천국을 말합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그 임재 속에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사방의 우격쌓임을 당해도 주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임재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 주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그분이 빛으로 임하시기 때문에 어둠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17]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누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 문제가 없으면 행복할까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경험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니엘기도회 기간 동안에 있습니다. 21일간 우리가 영광의 보좌 앞에서 찬양하실 때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겁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리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동안에 얼마를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몇 년을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을 부르실 때에 그 영광스러운 아들의 나라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입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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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8 16:32

20181028일 설교 말씀

 

기업을 얻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라 (김은호 목사)

 

[골로새서 1:11-12]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그치지 아니하고 기도했던 첫 번째 기도의 제목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세 번째 기도의 제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견딤과 오래 참음

[골로새서 1: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고 주님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하므로 반드시 견딤과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2:1b-2a]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견딤과 오래 참음이란?

견딤과 오래 참음은 거의 동일한 의미라고 봐도 됩니다. 그렇지만 언어적 의미로 보게 되면 견딤은 환경적 어려움에 굴복하거나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견디는 것을 말하고, 오래 참음이란 대인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인데 복수하지 않고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환경적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 견딤,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참아내는 것을 오래 참음입니다.

 

편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오래 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으로 핍박이 있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래 참고 견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기다려 주지 못하는 조급함 때문에 가정이 위기를 맞고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많은 분들은 견딤과 오래 참음을 무관심함과 회피로 알고 있습니다. 견딤과 오래 참음은 체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견딤과 오래 참으심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예수님의 곁에 있던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을 칼로 쳐서 귀를 떨어트리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52-53]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주님은 온갖 조롱과 수치를 받으시고 골고다의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 의해서 배신을 당할 때도 이를 갈 거나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든지 열두 군단이나 더 되는 하늘의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복수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주님은 주어진 고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에게도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견디어 내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견딤과 오래 참음입니다.

 

모든 영역에 필요한 견딤과 오래 참음

인내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한곳도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6:9]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는 일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도의 응답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니엘 10:12b-14a]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주님은 첫날에 응답을 주셨지만 다니엘에게까지 오기에는 21일간의 영적인 전쟁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0:22]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도 끝까지 견디는 자가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1:19]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그런데 본문을 보면 우리를 부담스럽게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골로새서 1:11b]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라

여러분은 환난과 박해를 당할 때도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인격적인 무시와 수모를 당할 때도 기뻐할 수 있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이 계속되는 데도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쁨과 빠름에 길들여져 있어 조급하게 살아갑니다.

 

[디모데후서 3:4]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주님 오실 때가 임박하면 사람들이 배신을 더 잘합니다. 굉장히 조급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것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전의 사람들 보다 오래 참지 못합니다. 쉽게 화를 내고 쉽게 싸웁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라

 

마지못해서 억지로 견디고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모든 일에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 달라는 겁니다.

 

사실 기쁨은 오래 참음과 거리가 먼 단어입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인내는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라는 겁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기쁨으로 모든 일에 견디어 내고 오래 참을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오래 참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을 수가 있나요? 하나님에 대해서도 오래 참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환난과 핍박에 오래 참을 수가 있나요?

 

어쩌다가 내 인간의 의지를 동원하고 발동해서 한두 번 정도 오래 참을 수는 있지만 모든 일에 기쁨으로 견딤과 오래 참으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체념을 하면 모를까 내 의지로 버텨내는 대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하게 하라

내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역사하시기 시작하면 가능합니다.

[골로새서 1:11a]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그의 영광의 힘은 하나님의 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임하시면 그 영광의 힘이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권능이라는 단어가 디나미스입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힘이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본능을 뛰어넘어서 모든 일에 기쁨으로 견딤과 오래 참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표준 새번역에서는 11절의 말씀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11] (표준새번역)

11.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과 핍박을 만나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깊어도 하나님의 영광의 힘이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디나미스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기 시작하면 우리는 기쁨으로 모든 일에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크고 웅장한 굴착기라 할지라도 가만히 있으면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땅을 파게 될 때 산도 옮기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힘이십니다. 그 영광의 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나약한 사람도 모든 일에 기쁨으로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에 우리 가운데 오래 참음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야 타락한 내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어서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나약한 사람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이 역사하시면 어떤 환경과 관계의 어려움도 기쁨으로 견뎌낼 수 있습니다. 내가 견뎌내는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견디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그 영광의 힘이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시기를 원합니다.

 

기업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1:12]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도 된 우리가 받게 될 기업은 무엇일까요?

 

[베드로전서 1:4]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성도의 기업은 천국을 말합니다.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부분을 얻게 했다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은 우리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온 열방과 민족과 백성과 방언들 가운데서 예수 믿는 모든 성도들도 함께 동일한 기업을 받아 누리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예수를 믿음으로 얻게 된 구원이 불법적, 위법적으로 얻게 된 것이 아니라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십자가에서 죗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보다 더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신명기 33:29a]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이스라엘 대신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기준은 돈, 출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은 구원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으셨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하박국은 노래했습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하리로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현실이 암담하고 슬프고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뛰어넘어서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 그리고 일터에 베풀어주신 그 은혜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영광스러운 천국에 기업을 합당하게 얻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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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1 14:13

20181021일 설교 말씀

 

주께 합당하게 행하라 (김은호 목사)

 

[골로새서 1:10]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계획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9b]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나침반과 같아서 우리에게 방향만을 제시해 주실 뿐이지, 우리 인생의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신령한 지혜와 총명인데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지성과 이해력, 판단력, 통찰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골로새서 1:10a]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주께 합당하게 행하라

합당하다라는 것은 어떤 가치의 품격에 부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4:1]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빌립보서 1:27a]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제 우리는 주께 합당하게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이유는 주께 합당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왜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할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순종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가 원하는 것과 맞으면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결코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없던 걸로 하며 내 소신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우리 안의 성령님은 그 얄팍한 뜻을 잘 알고 계십니다. 순종하지 않을 걸 뻔히 아십니다. 순종하려는 자세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동기를 점검하라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지 그 동기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내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기에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는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자신의 욕심, 야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떤 일을 선택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먼저 내 마음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여러분의 마음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왜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야 하는가?

1. 범사에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함

[골로새서 1:10a]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9]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바울은 죽느냐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4]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5:10]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시험해 보라는 겁니다.

 

왜 우리가 바울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로마서 14:18]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소속과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세상 속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한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는 것일까요?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녀의 교육, 기도, 예배, 충성, 헌신, 물질을 드리는 것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요한삼서 1:3]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아무리 내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도 진리를 떠나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왕따를 당하고 손해를 본다 해도 진리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자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무슨 일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우리의 모든 일에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결정한다면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왜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야 하는가?

2.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기 위함

[골로새서 1:10a]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선한 일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착한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9]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누구도 자기의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10a]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하나님의 목적 중에 하나가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디도서 2:14]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더 경건하고 더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교처럼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더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16]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 사람은 여러분의 믿음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고 착한 행실을 보고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평가하십니다.

 

여러분의 직장, 학교,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손해 볼 각오하고 착한 일을 하며 살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왜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보다도 착한 일을 하지 못하며 살아갑니까.

 

왜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야 하는가?

3.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기 위함

[골로새서 1:10b]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베드로후서 3:18a]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신앙은 한 번의 사건을 통해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체험적인 신앙을 통해서 성장하는 겁니다.

 

[호세아 6:3]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알자라는 것은 상대방과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믿음이 성장합니다. 평범할 때보다는 고난을 받을 때 우리의 믿음이 많이 성장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게 만나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71]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이 유익이라고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아프고 쓰리고 힘든데 그 고난을 통해서 나의 모난 부분들이 제거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 42:5]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인생의 혹독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내가 30, 40, 모태 신앙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직분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광야 길을 걷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경험하고 있는 인생의 고난과 광야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이 성숙하고 성장하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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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15:24

20181014일 설교 말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소서 (김은호 목사)

 

[골로새서 1:9]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가 맺혀지는 역사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치지 않는 기도

[골로새서 1:9a]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우리는 기도를 부탁받은 그날 그 순간 기도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뿐 아니라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에베소서 1:16]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바울은 왜 기도할 때마다 그치지 않고 기도했을까요? 그만큼 그 영혼을 사랑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입니다. 여러분이 왜 자녀, 가정, 교회를 위하여 그치지 않고 기도합니까? 그것은 그만큼 사랑하고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도 제목을 가지고 그치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을 보게 되면 동일한 제목을 가지고 10, 20, 30, 죽을 때까지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반면에 응답이 더디다고 기도를 중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가 그치면 기도()가 막히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자식에 대한 기도가 그치게 되면 자녀는 영적으로 질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향한 여러분의 기도가 그치게 되면 교회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과 영광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집을 향한 기도가 그치게 되면 여러분의 집은 그날 이후로 사탄의 잔칫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게도 그치지 않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누군가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포기하지 않고 그치지 않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기도를 그쳐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그치지 않고 기도했던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 안에 그치지 않는 기도가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소서

[골로새서 1:9b]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자녀들을 향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17]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로마서 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을 보면 다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알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 조지 트루엣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게 쉽 던 가요? 어렵던 가요?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시름하며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나니 하나님의 뜻이 금방 깨달아지던가요? 물론 선과 악의 문제라면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니까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의 문제도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볼 때는 둘 다 선하고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1.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성경을 읽다 보면 그 말씀 속에 아버지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듣고 나누고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절대적)인 뜻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찾아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므로 우리 가운데 성령을 보내주셨고 마지막 날에 재림하시고 심판하실 겁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거슬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누구도 저항할 수 없습니다.

 

허용적인 뜻

우리가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협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우리는 거룩하게 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만 내가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 없이 인류 역사가 흘러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없이 흘러간다면 혼란과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로봇처럼 기계처럼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2.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해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근본적인 목적과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필요합니다.

 

[골로새서 1:9b]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신령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서 갖게 되는 지성과 이해력, 판단력, 통찰력을 말하는 겁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판단력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가져야 하나님의 뜻이 분별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지혜의 영이십니다. 모든 것을 통달하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영에 지배를 받게 되면 성령님이 주시는 판단력, 분별력, 통찰력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갖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막을 짖게 하실 때 브살렐 이라는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 35:31]

31.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하나님은 그냥 일을 맡기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그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8:14]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갖기 위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로마서 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지배하는 악한 세상을 말합니다. 자기중심적, 물질 만능적, 음란한 악한 세상을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흐름에 너 자신을 맡기지 말라는 겁니다.

 

너 자신을 이 세상과 동일시하지 말라

 

이 세대를 본 받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상의 흐름에 내어 맡기는 겁니다.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는 겁니다.

 

이 세상을 본 받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뜻에 따라 살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10배나 뛰어난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1:20]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 받고 사는 자에게는 역사할 수 없으십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성령님은 역사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세상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그 놀라운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지 않을 때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말씀을 통해서도 분별되지 않고, 신령한 지혜와 총명도 없어서 분별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내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고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과 평안을 따라서 결정하십시오.

 

[요한복음 16:24]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도 기쁨을 기도의 응답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지 않을 때는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더 큰 기쁨, 더 큰 평안을 따라서 결정을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영이 지배를 해서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서 성공적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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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18:22

20181007일 설교 말씀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매 (김은호 목사)

 

[골로새서 1:5-8]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3]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믿음, 사랑, 소망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내 안에서 거하시며 살아 역사하시는 그 믿음과 연약한 지체들에게 베풀고 실천한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늘에 쌓아둔 소망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과 상급을 말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는 믿음, 사랑, 소망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 세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 세 가지는 우리에게 반드시 항상 있어야 합니다. 한 가지만 없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들음

어떻게 바울을 골로새 성도들이 이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골로새서 1:4]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에바브라로부터 들어서 알았습니다.

 

[골로새서 1:7b-8]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소식보다는 안 좋은 소식을 들을 때가 더 많습니다. 죽이는 말, 인격을 파괴하는 말, 쓴 뿌리를 갖게 만드는 말, 우리를 매임을 당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린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어릴 때 어머니와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43세에 죽을 거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는 가수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43세에 죽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술과 마약에 빠졌고 두려움에 떨다가 43세에 죽고 말았습니다. 저주의 말에 매임을 받아 평생을 두려움에 떨다가 죽은 것입니다.

 

반대로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어서 성공적인 삶을 사신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간증을 하신 이민우 목사님은 청소년 시절에 굉장한 문제아였습니다. 학교 성적은 전교 꼴찌였고, 술과 담배를 먹고 피우기 시작했고, 20일간 가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의 아버지는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진정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후 무섭게 공부하여 서울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엘지텔레콤 부사장까지 역임하였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서 장애인을 섬기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는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들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무엇을 듣느냐 하는 이 들음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나와 내 자녀들이 좋은 말 칭찬과 위로의 말, 비전의 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주소서. 반면에 오늘 하루도 부정적인 말, 죽이는 말, 파괴적인 말, 음란한 말,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 귀를 막아 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음

[골로새서 1:5b]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에바브로를 통해서 들은 복음 진리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것이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우리의 죗값을 완벽하게 지불하셨다는 것이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 하사 그 생명으로 죽은 자들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믿으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복음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이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진리요 길입니다.

 

[여호수아 2:10]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기생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여호수아 2:11b]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하늘과 땅에 너희가 믿는 하나님만이 참하나님 이시다라는 말입니다.

 

[여호수아 2:9a]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어찌하여 기생 라합이 이런 상상할 수 없는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들음으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결코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들으면서 생깁니다.

 

복음이 이르매

[골로새서 1:6a]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들은 사건이 어쩌다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이십니다. 때가 이르매 복음이 그들을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저와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로마서 10:14-15a]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복음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이 이르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이르면?

1.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됨

[골로새서 1:6a]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깨달았다는 말은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복음이 이르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좋은 인문학 강의를 들어도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좋은 음악이나 강연이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깨닫게 할 수 있어도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할 수는 없습니다.

 

2. 열매를 맺고 자라남

[골로새서 1:6b]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고 자라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열매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복음은 빛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게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나요? 복음을 들었을 때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졌나요?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면 그날부터 우리 안에 열매가 맺어집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 에바브라

[골로새서 1:7]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준 에바브라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에바브라는 자신이 들은 복음과 가르침을 그대로 골로새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가미하지 않고 바울에게 들은 그 복음을 그대로 전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신실함입니다.

 

역사를 보면 이런 신실한 일꾼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을 찾습니다. 복음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전할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 복음이 이르게 할 사람을 찾습니다. 어떤 직장에 다닐지라도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복음이 그곳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생명의 복음이 여러분과 함께 이르게 되어 많은 열매가 맺어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성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인생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Favicon of http://alkapia.co.kr/ BlogIcon 정보나누미 | 2018.10.08 15:28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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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15:20

20180930일 설교 말씀

 

당신의 신앙을 검증하라 (김은호 목사)

 

[골로새서 1:3-5]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쓴 이유는 골로새 교회 안에 이단 사상이 침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단적인 사상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참된 진리에 굳게 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기도의 지경을 넓히라

[골로새서 1:3]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에바브라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던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2:1]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나와 내 가정, 교회만이 아니라 기도의 지경을 넓혀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다니엘기도회가 그런 기도입니다. 열방과 세계 선교, 조국 대한민국과 북한을 위하여 그리고 다음 세대와 환우들, 여러 고통을 안고 있는 지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릴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세우지도 않았고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했던 것 같이 이번 다니엘기도회를 통하여 다른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골로새서 1:3b]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도 하나님을 말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섰습니다.

 

[에베소서 1:3]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사도 베드로도 동일한 표현을 섰습니다.

 

[베드로전서 1:3a]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는 신(하나님)은 어떤 하나님도 참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18]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천사를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만이 참하나님이십니다.

 

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만이 참하나님이실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보내주셨는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아버지를 우리 가운데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보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게 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이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참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감사의 내용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믿음

[골로새서 1:4]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골로새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해서 실제로 내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의 믿음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2.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골로새서 1:4]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사랑을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가지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아가페,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간직하고 있지만 않고 연약한 성도들에게 베풀었습니다.

 

[로마서 5:5b]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셔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실 때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음 바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게 그 하나님의 사랑이 없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부음 바 되어 있지만 우리 안에는 타락한 죗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죗성 가운데 가장 타락한 탐욕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담을 쌓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됩니다. 성령의 충만은 펄떡펄떡 뛰는 게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내 감정과 의지를 주장하시는 겁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고 그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나를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탐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사도행전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성령 충만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사랑을 흘러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서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46]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성도들을 사랑하되 홀로 외롭게 살아가시는 분들,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하시는 연약한 자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늘에 쌓아 둔 소망

[골로새서 1:5a]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소망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장차 받아 누리게 될 영원한 상급을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

 

쌓아둔이라는 말은 저축하다, 미래를 위하여 비축하다를 뜻합니다.

 

사도 바울이 소망을 말할 때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라고 말한 이유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쌓아둔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0]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하늘에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망이 쌓여지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5:41-42a]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주님 오실 때 죽어 썩어진 우리 몸도 부활하는데 그 모습이 다르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11:35]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마지막 날에 부활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2:12]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실 상이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영광과 상급은 내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3:14]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우리도 부지런히 나를 위하여 하늘의 소망을 쌓아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을 검증하라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신앙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만 무너져도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지 못하며 온전한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 가운데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3]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는 믿음, 소망,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이 세 가지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그 믿음, 내가 그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적 전쟁을 하고 있나요?

 

오늘 내 안에 성도들을 위한 참된 사랑이 있나요?

 

[고린도전서 13:2b]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우리는 가끔 어이가 없을 때 어처구니가 없네? 라는 말을 합니다. 어처구니는 맷돌을 돌리는 손잡이를 말합니다. 손잡이가 없으면 어처구니가 없는 겁니다. 손잡이가 없으면 맷돌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내가 믿음은 있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내 안에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 있나요? 복음의 실천으로 하늘에 소망을 쌓고 있나요? 내가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살면 그것이 바로 하늘에 소망을 쌓는 겁니다.

 

오늘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의 믿음이 있는지, 연약한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영원하고 변치 않는 하늘의 소망이 있는지 점검해 보시고 이제 내 안에 있다면 간직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여러분의 그 신앙을 검증해 보이십시오. 나타내 보이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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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3 12:48

20180923일 설교 말씀

 

히스기야의 실수를 범하지 말라 (김은호 목사)

 

[열왕기하 20:16-19]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능이나 성품이나 행실이 그 부모를 쏙 빼닮았다는 말입니다. 자식은 늘 그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부모를 닮지 않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히스기야와 그 아들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는 어떤 사람인가?

종교개혁을 단행한 사람

[열왕기하 18:4]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우상을 척결했습니다. 십일조를 부활시키는 등 철저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기도로 승리한 사람

앗수르 대군이 쳐들어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능욕할 때에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대군 185천 명을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기도와 눈물을 들으시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시켜주셨습니다.

 

[이사야 38:5b]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히스기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가 매우 좋았던 사람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42명의 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이 악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히스기야는 좋은 왕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열왕기하 18:3b]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열왕기하 18:5]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학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 이후에 300년 만에 등장한 경건한 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아들 므낫세는 정 반대의 왕이었습니다.

 

므낫세는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므낫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12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 다시 우상을 섬겼습니다.

 

[열왕기하 21:2-3]

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3.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

[열왕기하 21:4b-5]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

[열왕기하 21:6a]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서 우상에게 받쳤습니다.

 

[레위기 18:21]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죄 없는 자들을 학살하였다

[열왕기하 21:16b]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이것을 보게 되면 므낫세는 잔혹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는 자들을 신임하며 가까이 하였다

[열왕기하 21:6b]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었다

[열왕기하 21:11]

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 원주민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그들 보다 더 심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24:3]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유다가 바벨론에 대해서 멸망당한 것이 므낫세가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역대하 33:11]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므낫세는 인생의 마지막에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왜 히스기야왕의 므낫세는 이렇게 악한 왕이 되었을까요? 어떻게 선한 아버지에게서 이렇게 악한 왕이 태어났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 원인이 므낫세에 있다고 하지만 그 아버지 히스기야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버지 히스기야의 치명적인 실수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치명적 실수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이사야의 충격적인 예언

[열왕기하 20:17-18]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이런 충격적인 말씀을 들었을 때 히스기야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히스기야의 반응

[열왕기하 20:19]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히스기야는 충격적인 말씀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당대에 일어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지금 히스기야는 자신의 당대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자녀들의 세대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목회자들도 히스기야처럼 생각하며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의 마음속에 내가 목회하는 동안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음 세대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혼자 신앙생활 잘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맡긴 자녀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물으실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다음 세대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은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일 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헌신과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 거룩한 비전을 품고 함께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기도하지 않았다

히스기야는 원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로 승리했고 생명을 연장 받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병을 고침 받은 이후에 영적 해이에 빠졌습니다. 과거에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오늘 기도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언제나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시대가 이렇게 무서워져 가는 것은 어머니의 기도를 모르고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녀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자녀들에게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충실한 모습으로만 비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기도입니다.

 

3. 잘못된 자식 사랑

므낫세는 늦둥이입니다. 히스기야가 42살에 낳은 아들입니다. 죽을 병에 걸렸다가 고침 받은 3년 후에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러니 여호와를 숭배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잘 못을 행해도 훈계하지 않았습니다.

 

엘리 제사장도 두 아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고 훈계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3:13]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래서 결국 두 아들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엘리 제사장도 죽었습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겁니다. 이가봇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저주스러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자녀가 잘 못된 길, 넓은 길로 나가고 있는데,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데 방관하면서 자녀를 잘 못된 사랑으로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잘 못된 길로 나가면 채찍을 들어서라도 훈계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품고 눈물로 금식기도를 해야 합니다.

 

통계를 보면 범죄자의 79%가 응석받이로 자랐다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당대만을 생각하고 내가 사는 날 동안만 평안하고 건강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내가 떠나고 난 후에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되 잘 못된 사랑을 했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왕의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히스기야의 치명적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사랑하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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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1 22:46

20180921일 금요기도회

 

하나님의 탄식 (김은호 목사)

 

[창세기 6:5-7]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한탄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의 탄식

[창세기 6:6]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특별하게 지으시고 좋으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한탄하사 근심하셨다고 합니다.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한탄 (나함) = 뉘우치다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후회하셨다거나 유약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계획을 후회하신다면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시고

근심 = 슬퍼하심, 마음 아픔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이사야 43:21]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목적대로 생활할 때 가장 안정적이고 평안합니다. 그때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립니다.

 

[에베소서 2:10a]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임명받은 우리 인간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상황을 우리가 쉽게 이해하게 표현하신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신인동형동성적

신학적으로는 신인동형동성적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뉘우치시고 후회하신다는 겁니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간의 언어적 영역으로 옮겨 놓은 겁니다.

 

하나님의 탄식이 주는 교훈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고 슬프게 한다.

하나님은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 때문에 탄식하고 아파하십니다. 우리도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간다면 마음 아파합니다. 관계 때문입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있지만 내 삶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죄악이 하나님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하나님의 후회, 탄식, 아픔, 눈물은 우리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탄식을 먼저 하십니다. 관심이 없다면 탄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6:5]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탄식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그냥 무심코 보신 것이 아니라 주목하여 진단을 내리시면서 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죄악도 많아졌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실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10-12]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의인이 없습니다. 아무리 저 사람은 법 없이 살아갈 사람이라도 겉으로 죄는 없을지라도 그 마음속에는 죄악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3:13-15]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겉으로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보여도 하나님은 생각을 보시는데 그 어떤 사람도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17:9a]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대하 16:9a]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하나님은 드러나는 죄만 보시는 분이 아니시고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생각, 죄의 뿌리까지도 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이라고 합니다.

 

[요한13:15a]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우리는 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내가 칼로 돌로 무기로 사람을 쳐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닙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감정, 생각도 살인입니다.

 

[마태복음 5:28]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살을 맞대고 관계를 맺지 않았어도 마음에 음욕을 품고 바라보면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의 죄의 뿌리까지 보십니다.

 

[야고보서 4:8]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두 마음을 품은 것까지도 아십니다.

 

[예레미야 16:17]

17.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

 

누구도 하나님의 눈동자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인정받으려는 것인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늘 저울에 달아보십니다. 결과보다 동기와 과정을 더 중요시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창세기 6:7]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인간뿐 아니라 죄 없는 모든 동물까지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공의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주는 교훈

하나님은 창조물을 다 쓸어버리실 만큼 죄를 미워하십니다.

[창세기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셨으면 그렇게까지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만큼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잠언 8:13]

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교만, 악한 행실, 패역한 입 이것들은 하나님의 눈에 비춰진 대표적인 악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구호가 아닙니다.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겁니다.

 

인간의 죄는 다른 피조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장차 최후의 심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전 우주에 미칩니다. 사람과 관련된 모든 창조물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인간이 범죄 하니까 더불어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육축과 식물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북한도 우상숭배를 하니 그 땅이 황무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탄식에 대하여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탄식하십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대적하는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하나님을 탄식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시원케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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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13:15

20180916일 설교 말씀

 

다음 세대와 다른 세대 (김은호 목사)

 

[사사기 2:6-10]

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지난주 설교 말씀을 전하고 나서 내가 죽고 나면 과연 내 자녀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겠는가? 하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음 세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놀라운 것은 빠른 속도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로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사기 2:10]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물론 세대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낄 만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BTS’

미용에 관심 많은 분은 보톡스,

음악에 조회가 깊으신 분은 비틀스,

신앙을 가진 권사님은 밥티즘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BTS는 방탄소년단입니다. 전 세계에 K-POP을 알리고 한류를 이끌고 있는 글로벌 아이돌 그룹입니다. 이렇게 용어를 가지고도 세대 차이가 극명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다음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세대 차이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은 방황을 하게 됩니다.

 

[사사기 2:8]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여호수아의 죽음

여호와의 종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 시대의 영웅인 여호수아와 그 시대 사람도 죽었습니다.

 

[사사기 2:10a]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함께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면서 함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사무엘상 20:3]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는 이별을 준비하는 날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는 이별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사람을 미워하며 살지 마십시오. 사랑해도 주어진 시간이 짧습니다.

 

여호수아의 죽음 그 이후

[사사기 2:10b]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 없었다는 겁니다. 믿음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믿음에서 떠난 자녀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왜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었는가?

1.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아서

[사사기 2:6]

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땅을 차지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땅을 차지한 것 때문에 자녀들에게 여호와를 가르치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광야의 인생을 살았고 가나안 원주민을 몰아내는 전쟁만을 했습니다. 그러다 자기 인생 가운데 처음으로 땅을 소유하고 집을 짓게 되며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신비하고 기뻤겠습니까?

 

평생을 월세로 살다가 집을 장만한 기쁨과 같았을 겁니다. 그 기쁨에 빠져 버린 겁니다. 오늘 우리들도 사업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자신도 하나님과 멀어지는데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잠언 22:6]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신명기 6:7]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합니다.

 

[여호수아 24:15]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지만 자신을 이어갈 영적인 지도자를 세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지 않게 하려면 자녀들에게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영적으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왜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었는가?

2. 체험적 신앙이 없어서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세대가 나옵니다.

 

[사사기 2:7]

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 세대는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이들은 체험적인 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이적과 기적을 눈으로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사사기 2:10b]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광야로 이끌어내시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원주민을 몰아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가르쳐 주지 못해서 체험적인 신앙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를 뛰어넘지 못하고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체험적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호세아 6:3a]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에 관하여 지식적으로 알라는 게 아니라 경험적으로 알라는 겁니다. 체험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 지식일 뿐입니다. 진리는 반드시 체험되게 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반드시 경험되고 체험될 수 가있는 겁니다.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짜장면을 설명하고 얘기해도 알겠습니까? 실제로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겁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얘기해도 그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겁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십자가를 아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자녀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29:13]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33:3]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을 만나려면 부르짖으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에게 위기가 왔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절호의 기회입니다.

 

순종 없이 일어난 기적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111일부터 21일까지 하는 다니엘 기도회가 있습니다. 이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만 은혜를 받으려고 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자녀에게 여호와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영적인 사각지대에 놔주지 마시고 기도로 준비하게 하시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서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되게 하시길 바랍니다.

 

체험적인 신앙을 가져야 세상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자는 연약하여 넘어질 수는 있지만 영원히 하나님을 떠나거나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려움의 순간이 왔을 때 제일 먼저 떠나는 사람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그 현장을 지키는 사람은 성령의 불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공부, 취업도 중요하지만 진짜 여호와를 경외하면 공부하지 말라 해도 공부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야 합니다.

 

다른 세대의 결과

1.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다

[사사기 2:11]

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사사기 2:12]

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다른 세대의 결과

2. 괴로움이 심하였다

[사사기 2:15b]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하나님을 떠나 살면 행복하고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괴로움이 심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보다도 하나님을 더 풍성히 누리고 기쁨을 누리고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체험적인 신앙이 없게 한다면 우리가 떠난 후에 여호와를 모르는 다른 세대가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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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22:52

20180914일 금요기도회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김은호 목사)

 

[창세기 6:3]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던 시대와 같이 죄악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

타락한 천사들과 인간들

킹 제임스 번역 성경만이 완전한 성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타락한 천사와 인간이 성관계를 하여 거인족 네피림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평범한 여성과 남성이 관계하여서는 고대의 명성 있는 거인이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로 장가와 시집을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0]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사는 하늘나라의 천사고 네피림을 만든 천사는 타락한 천사라고 그럴듯하게 말합니다.

 

이 세상은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입니다. 성경은 천사의 타락과 기원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천사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일에 킹 제임스 번역과 이단들의 말처럼 타락한 천사들과 인간들이 관계를 맺어서 네피림이 나왔다면 노아의 홍수는 사람이 아닌 타락한 천사를 심판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담의 후손, 사람의 딸들은 아담 이전의 인간

창세기 1장의 창조는 혼적인 인간을 만들었고, 2장에서는 그중에 한 사람을 택하여 생령이 되게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 사람들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

이것이 정통적인 겁니다. 신분이 다르고 생활의 양식이 전혀 다른 후손이 만나서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 점점 믿음을 지키며 살아왔던 셋의 후손이 경건이 사라져 가면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2]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그들은 여인들의 외모, 아름다움만 보고 닥치는 대로 자기 아내를 삼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진노하셨는가? - 성적인 타락

지금도 사람들의 선택이 기준이 외모입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24:38]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그때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기 전까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결혼의 동기와 목적이 잘 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은 생명의 창조를 위해서 그리고 관계를 통한 사랑과 즐거움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성을 즐거움으로만 생각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성적인 타락이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로마, 폼페이 모두 성적인 타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국가가 가정을 지켜야 하는데 차별 금지법을 만들어서 동성연애를 합법화 시키려고 하고 종교 차별법을 만들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역행하는 법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타락한데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타락하겠습니까?

 

[창세기 6:3a]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나의 영은 루하그라고 하는 히브리어로 성령, 생명, 생기, 바람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맥적으로 그 뜻을 살펴야 합니다.

 

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여기서는 성령보다는 생명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하여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실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6:3a]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왜 그들을 생명을 거두는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이런 성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육체가 더럽혀지고 죗성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인간이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친밀한 교재의 대상으로 지으시고 사랑을 나누고 싶으셔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정욕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육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 8:12]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육신은 몸이 아니라 타락한 죄의 본성을 말합니다.

 

왜 육신대로 살면 안 되는가?

1. 빚진 자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8:12]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사도바울이 말하는 빚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그 빚을 갚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로마서 1:14]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은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한 평생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왜 육신대로 살면 안 되는가?

2. 육신대로 살면 죽기 때문이다

[로마서 8:13]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악용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이 있기에 육체의 생각을 따라 살아도 된다는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된다고 합리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연약하여 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는 것은 죄 중에 악질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육신대로 살면 안 됩니다.

 

[로마서 8:14]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우리 안에 성령이 없으면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걸로 끝내시는 게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광야의 인생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 육체의 장막을 벗는 그날까지.

 

그런데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갑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을 파워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시면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고 모든 것이 형통하지는 않습니다. 얻어맞기도 하고 누명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니까 열매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큰 소리로 찬송합니다.

 

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가?

1.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로마서 8:13]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담배, 술과 같은 것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끊을 수 있게 됩니다.

 

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가?

2. 생명과 평안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서 8:6]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생명과 평안이 임합니다. 돈다발 쏟아져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창세기 6:3b]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은 인간의 수명이 120세가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120

베니아 사람들은 인간의 수명을 120년으로 생각합니다. 60년을 살다 죽으면 60년 동안 귀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창세기 8:22]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노아의 홍수 이후에 지구의 엄청난 변화를 통해 인간의 수명이 단축됐습니다.

 

[창세기 11:11-13]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이것을 보게 되면 인간의 수명을 120년을 못 박은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120년 후에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120년은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회개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신 이후에도 120년 동안 심판을 유보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9]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에 강포가 가득해도 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는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이 임하게 하시려고 시간을 주십니다. 이것이 이 땅의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십니다. 심판을 유보하신 것이지 취소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때가 되면 반드시 임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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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15:19

20180909일 설교 말씀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김은호 목사)

 

[이사야 33:5-6]

5.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6.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응답을 확신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33:3]

3. 요란한 소리로 말미암아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말미암아 나라들이 흩어졌나이다

 

하나님께서 일어나심으로 앗수르의 군대가 도망가고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렇게 될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유다가 패배하는 것이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응답에 확신하여 과거형으로 표현합니다. 더 나아가서 어떻게 전리품을 취할 것인지를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33:4]

4. 황충의 떼 같이 사람이 너희의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가 뛰어오름 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오르리라

 

이것을 보게 되면 이사야 선지자는 응답을 분명하게 확신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할 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그 영광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찬양함

[이사야 33:5]

5.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기도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다시 근심하고, 염려하고, 다시 불안해 합니다. 기도가 끝나면 다시 사람을 의지하고 문제만을 바라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확실히 믿는다면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더 이상 염려와 걱정에 매여 있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6:13b]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도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호와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이사야 33:5a]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존귀는 지휘나 신분이 높고 귀하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존귀하신 분입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고 존귀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이사야 43:4a]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볼 때 보배롭고 존귀하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보배롭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보배롭고 존귀하신 분입니까?

첫째, 높은 곳에 거하시기 때문

[이사야 33:5b]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위치상의 높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처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처소가 높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유를 주장하시며 섬리하시며 다스리시는 영원하신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여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여주십니다.

 

[잠언 4:8]

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왜 하나님이 보배롭고 존귀하신 분입니까?

둘째,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실 분이기 때문

시온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있던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시온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창기가 되었고 살인자들뿐이 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1:21]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자유와 해방만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예루살렘에 충만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시온에 평안이 임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33:6a]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평안과 구원, 지혜와 지식은 따로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면 당연히 평안함이 임하는 것이고, 평안이 임하면 지혜와 지식 역시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앗수르 군대에게 둘러싸인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안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평안입니다. 평안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축복이 아닙니다.

 

[시편 122:6a]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구약의 예루살렘은 신약의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의 평안을 구하라는 겁니다.

 

[예레미야 29:7]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그 성읍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와 직장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이사야 33:6b]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보배는 아주 소중하고 꼭 필한 것으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함이 보배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심을 가지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2]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시편 25:14a]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사람들은 경외함을 단순한 두려움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친밀하심과 경외하심을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의논하시기를 좋아하시고,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기를 원하시고,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행할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단순히 두려워서 무서워 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반드시 죄를 미워합니다. 악인의 길에서 돌아섭니다.

 

[잠언 16:6b]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욥기 28:28b]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금 내가 짓고 있는 그 죄에서 떠나는 겁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내가 싫어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시편 115:13]

13.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왜 여호와를 경외함이 보배인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다

[잠언 1:7a]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여호와를 경외할 때 권위를 인정하고 경청하게 되며 새 성품이 형성되며 꿈과 비전이 생기고 통찰력을 갖게 된다” - 박상진 교수

 

[잠언 9:10]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시편 111:10a]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에 정보와 지식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야 인생의 난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관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 지식과 정보가 없어서 화평하지 않습니까?

 

[전도서 12:13]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 인생의 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든 수고와 부와 명예는 헛되고 헛된 것이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왜 여호와를 경외함이 보배인가?

하나님의 보호와 평안을 누린다

[시편 25:12-13a]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영혼이 평안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시편 34:7]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7: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건져내시고 구해 주십니다.

 

왜 여호와를 경외함이 보배인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는다

[잠언 22:4]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나님은 겸손히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시편 34:9]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잠언 14:27]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악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보호하시고 재물, 구원,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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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7 22:45

20180907일 금요기도회

 

슈퍼맨이 되지 말고 사람이 되라 (김은호 목사)

 

[창세기 6:1-4]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역사를 보면 오늘을 읽을 수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를 보면 지금의 시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 6:1]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사람의 번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복 중에 하나입니다.

 

[창세기 1:28a]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번성은 점점 많아지고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에 계속해서 그 생명이 번성하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9:1]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이 노아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악을 제거하시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7:20a]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번성을 복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92:12]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성경 곳곳에 사람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복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인구 절벽 시대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17조를 쏟아부었는데 결과는 꽝입니다.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고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창세기 6:2]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이 부분에 대한 견해 차이가 많습니다.

 

첫 번째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은 타락한 천사로 인간의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견해는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천사가 아닌 이 세상의 타락한 천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이 시대를 심판하신 것은 천사의 타락이 아닌 인간의 타락 때문입니다. 구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천사는 영적 존재로 장가와 시집을 가지 않는 존재입니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 성별이 없습니다. 인간과 육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담의 후손, 사람의 딸들은 아담 이전의 무리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이중 창조를 믿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성경은 창조와 종말은 희미하게 다루고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희미하게 숨겨 놓으신 창조와 종말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세 번째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은 셋의 후손,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건한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은 사는 패턴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하나님께 속한 자가 있고 세상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셋의 후손들도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셨는가?

1. 성적인 타락

[창세기 6:2]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인들의 아름다운 외모만 보고 마음이 동하면 닥치는 대로 아내로 삼았습니다. 육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불경건한 가인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것인데 단지 육체적 욕망만 보고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마태복음 24:38]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비가 내려서 곧 심판하기 직전인데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갔다는 겁니다. 시집, 장가가 잘 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결혼의 동기와 목적이 잘 못되어다는 겁니다. 결혼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동물적 관계로 더럽혀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생명의 창조

2. 관계가 깊어지고 맺어지는 겁니다.

3.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즐거움만 찾으려고 합니다. 노아의 홍수의 비극은 잘 못된 결혼의 비극이었습니다.

 

우리들 주변을 보게 되면 믿음이 좋은 형제가 얼굴이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자매를 아내로 맺으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바라보고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왜 소돔과 고모라, 폼페이, 로마가 망했습니까? 다 성적인 타락입니다.

[창세기 19:4-5]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관하겠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 성적 관계를 가지겠다는 뜻입니다. 성적 타락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성경을 보거나 인류 역사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에는 언제나 성적이 타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서 동성애를 합법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셨고 둘이 한 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성애는 창조의 질서를 깨트리는 무서운 죄입니다. 동성애는 인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망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정통적인 가정이 파괴됩니다. UN은 계속해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많은 나라에 압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동성애는 배격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동성연애에 빠진 사람들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그들이 동성연애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셨는가?

2. 네피림의 영웅화

[창세기 6:4]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네피림은 힘이 세고 머리가 뛰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지도할 위치에 있던 자 들을 이었습니다. 그 당시 네피림은 좋은 의미가 아니라 악을 행하는 데 있어서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런 네피림을 숭배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네피림은 하나님의 눈에는 비인간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비쳐진 강한 용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이상의 존재를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아내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슈퍼맨이 되지 말고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남보다 강한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슈퍼맨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우리가 그런 인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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