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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2일 설교 말씀

 

불신앙인가? 연약함인가? (김은호 목사)

 

[사사기 6:36-40]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하나님은 큰 용사로 부르신 기드온을 먼저 준비시키시고 무장시키셨다.

자신에게 말씀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확증시켜주시고 예배를 회복시켜주셨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다.

32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 싸우겠다고 기드온을 따랐다.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

[사사기 6:36]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기드온은 이미 불의 표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는데 전쟁에 앞서서 또다시 표징을 구하고 있다.

 

[사사기 6:37a]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근동 지방은 강우량이 적기 때문에 밤에 내리는 이슬이 참 중요하다. 성경에서는 무려 35번이나 이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런데 기드온의 요청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양털 뭉치에는 이슬이 내릴 수 없는 일이다.

 

[사사기 6:38]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다음 날 아침 보니 자신이 준비한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다. 그 이슬을 짜보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게 되었다.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기드온은 또다시 표징을 구한다.

 

내게 노하지 마소서

또다시 표징을 구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사사기 6:39a]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하나님이 노하실 것 같았지만 또다시 표징을 구한다.

[사사기 6:39b]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사사기 6:40]

40.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셨다.

기드온의 두 번째 요청도 들어주셨다.

 

불신앙인가? 연약함인가?

두 번이나 표징을 구한 기드온의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놀라운 은혜를 받은 기드온이 전쟁에 앞서서 또다시 하나님 앞에 표징을 구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불신앙이라고 말한다.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표징을 구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불신앙이 아닌 연약함으로 보고 싶습니다.

 

기드온의 연약함

1. 하나님의 꾸중이나 책망이 없기 때문

기드온은 나가 싸우지 않고 두 번이나 표징을 구했다. 우리 같으면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의 행위에 대하여 진노하지 않으셨다. 두 번의 표징에 응답해 주셨다.

 

2.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승리의 확신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

기드온은 하나님을 엘로힘(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렀다. 기드온은 자신을 부르신 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기드온은 하나님에 대해 들은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난 사람이다. 그리고 소명도 알고 있었다.

[사사기 6:16]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기드온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부르신 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우리에게도 이 연약함이 있다.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고난의 현장에서, 내 삶의 현장에서, 영적전쟁의 현장에서는 승리의 확신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다.

말씀을 들을 때는 확신이 오는데 막상 싸우려 하니까 우리 안에 확신이 사라진다.

 

왜 기드온은 싸움에 앞서서 연약해졌는가.

 

연약함의 이유

1. 적군이 너무 크고 강하기 때문

내 군대는 초라해 보이는데 나가 싸워야 할 적은 너무 크게 보였다.

현실적으로 미디안의 연합 군대가 너무 크고 강하게 보였다.

우리도 그렇다. 내가 당한 아픔이 너무 크고 당면한 문제가 커 보이면 믿음이 송두리째로 흔들린다.

나는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이고 내 앞의 상황은 골리앗처럼 커 보인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이다.

 

2. 여쭙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

전쟁에 앞서서 표징을 구하긴 했지만 기도는 하지 않았다. 32천의 군사가 모였을 때 기도에 무릎을 꿇었다면 양털의 표징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체험을 과거에 했을지라도 지금 내가 기도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문제와 사람이 커 보인다. 그래서 실제의 현장에서 우리의 믿음이 작동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기도에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한다. 손바닥만 한 구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황과 사람이 작아 보이게 된다.

 

무릎이 떨리거든 무릎을 꿇어라.

 

기도에 무릎을 꿇고 은혜의 보좌에 나가면 그렇게 커 보이던 문제도 작아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연약함을 이겨내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게 된다.

 

믿음의 수준을 따라

하나님은 신앙의 수준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신다.

우리 같으면 기드온의 행동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에게 화를 내거나 진노하지 않으셨다. 어린아이가 때 쓰는 것을 엄마가 들어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를 다 들어 주셨다.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에 따라서 그 사람을 대하신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바로 아들을 주시고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지 않았다.

처음 아브라함의 믿음은 형편이 없었다. 신앙의 국경선을 넘어서 애굽 땅에 들어가 자신이 죽을까 봐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다.

그리고 아내가 바로왕에게 끌려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재물과 함께 아내를 돌려받는다. 이제 믿음이 성장한다.

 

믿음이 생기자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의 집에 있던 318명의 종들을 데리고 9개의 나라가 싸우고 있는 전쟁터에 겁도 없이 참전하여 조카 롯을 구출해 낸다.

그때 아브라함은 또 깨닫는다. 나를 부르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시구나. 이렇게 계속적으로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경험하면서 믿음이 성장해 간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구나. 그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이 성장했을 때 그 수준에 맞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신앙의 수준에 따라서 그 사람을 대하신다.

초등학생에게 대학생 문제를 풀라면 풀겠는가?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신앙의 수준, 영적인 눈높이에 맞혀서 말씀도 하시고 시험을 하신다.

[고린도전서 10:13a]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도 그 사람에게 맞게끔 하신다.

[에베소서 4:13b]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우리의 믿음의 목표가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야 한다.

30, 40년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다.

여러분의 믿음이 추월당하면 안 됩니다.

 

내가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이 더 많은 걸 요구하겠지? 그냥 이러다 천국 들어가면 되겠지.라고 생각들 한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처럼 표징을 구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신뢰함으로 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히 나가서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지 말고 장성한 분량까지 내 믿음이 자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 인생의 산지를 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