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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11일 금요기도회
노염은 잠깐 은총은 평생 (김은호 목사)
[시편 30:1-7]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이 시편 30편은 다윗이 썼다.
특징은 12절인데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25번 등장한다.
여호와가 10번, 나의 하나님이 2번, 그리고 당신(주)이 13번 나온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 업적보다도 지금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그 일에 집중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역사에 집착하고 관심을 더 많이 가질 때가 많다.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잊을 때가 많다.
다윗은 그 일도 찬양했지만 하나님에게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하나님께 더 집중해야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난다.
다윗의 인생의 삶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다.
시편의 배경.
시편은 함축어를 많이 사용함으로 배경을 잘 이해해야 한다.
[시편 30:6]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게 되니까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라고 한다.
이제 내 나라는 든든하다. 강하다. 나는 강한 왕이다. 누가 감히 우리나라를 약보랴.
나는 결단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영원히.
이것이 다윗이 형통할 때 지은 죄다.
자만, 과신이다.
[시편 30:7]
7.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왜 자신이 이런 자만에 빠졌는지를 적고 있다.
이 형통이 자신의 노력이 아닌 오직 주의 은혜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영적 자만에 빠졌다는 것이다.
형통은 축복이지만, 사람은 형통하면 교만해 지기 쉽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도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말았다.
[시편 30:7b]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셨다.
주가 얼굴을 가리시니까 엄청난 질병과 고통과 대적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민수기 6:25-26]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의 얼굴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 자녀 된 우리에게 그 얼굴을 비추시길 원하신다.
다윗은 영적인 자만에 빠져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했다.
이것이 시편의 배경이다.
[잠언 16:18]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해 지고 싶어 교만해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 진다.
이것은 보게 되면 우리 인생의 최대 위기는 내가 실패할 때가 아니다.
성공할 때다. 기도가 응답됐을 때다.
가난 때문에 넘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풍족할 때 넘어지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시편 30:1]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주를 높인다는 것은 찬양을 말한다.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1.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죽음에서 나를 건져내셨다는 거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사망의 골짝이에 있었는데 주님이 나를 건져주셨다.
2.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다.
다윗에게는 원수가 많았다.
그런데 그 대적들, 원수들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다.
다윗이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이제 끝났다고 모든 대적들이 그렇게 말했다.
이제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박수를 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줄 알았는데 다윗을 보니 별 볼일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극적으로 자신을 그 사망의 골짝이에서 끌어내셨다. 그래서 악인들로 하여금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셨다.
우리의 원수들이 나로 말미암아 승리를 누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시편 30:2]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나를 고치셨나이다.
다윗은 극한 질병 속에 있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 내 하나님께 기도했다.
약속을 지키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맺어진 사람만 할 수 있다.
다윗은 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간절히 부르짖어도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오늘 우리는 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엄마의 하나님이 아니다.
내가 만나고 내가 경험한 내 하나님이셔야 한다.
다윗이 말한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하나님이었다.
물론 신앙의 공동체로써의 신앙의 대상은 우리 하나님이다.
그러나 신앙은 1:1이다.
내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셔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내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닌 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출애굽기 15:26b]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시다.
[출애굽기 15:26a]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하나님의 치료를 경험하려면 순종이 필요하고 행함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 치료의 광선을 발하신다.
[시편 30:3]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올은 죽은 자의 세계를 말한다.
죽음, 구덩이, 음부를 말한다.
도무지 살 수 없는 그런 상태까지 내려갔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자포자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자포자기는 운명을 믿는 세상적인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이렇게 다윗은 1절부터 3절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표현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찬양과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시편 30:4]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찬송하며 감사하라.
이제는 찬송과 감사의 지경을 넓혀 자신만이 아니라 언약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여호와에게 찬송과 감사를 돌릴 것을 축원한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한결같이 자기 자신만이 홀로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영광을 올려드리고 감사와 찬송을 드리려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나 홀로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에 만족한다.
우리는 간증을 중요하게 여긴다.
간증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가운데 이런 일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간증하는 이유는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찬양 드리고,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나 홀로 찬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랑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올려드리고 감사한다.
우리의 삶에 이런 감사와 찬양의 지경이 넓혀지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간증이 있어야 한다.
[시편 30:5a]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이것은 다윗의 깨달음이다.
노염은 잠깐 은총은 평생
노염은 본래 호흡을 하는 수단으로 콧구멍 코를 말한다.
분노를 하면 콧구멍이 팽창한다.
하나님의 노염은 항상 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죄와 무관하게 분노를 표출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의 분노는 죄에 대한 의로우심의 반응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죄를 보면 진노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지은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하기 위한 또 다른 은총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노염을 주셨기에 깨닫게 되었다. 회개했다. 부르짖었다. 회복되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고통의 터널이 너무 길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점으로 보니 잠깐이다. 그리고 은총은 영원하다.
[출애굽기 20:5b-6]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비율이 3:1000이다.
노염이 3이면 은총은 1000이다.
하나님의 진노보다도 은총이 더 크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거다.
5:5면 우린 다 죽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의 노염을 살 때가 있다.
가시울타리를 쳐서 징계를 하실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시울타리를 헤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가시에 찔리면 돌아오고 정신 차리고 상처가 나으면 또 넘어가려고 한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 인생에 사랑의 가시울타리가 없다면 지금 여기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정말 넘으면 안 되는 신앙의 국경선이 있다.
[시편 30:5b]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왜 저녁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까?
우리 인생 가운데 밤을 만나도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
반드시 동이 터오는 희망의 아침을 마지 한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날에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고난이 커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
[전도서 7:14]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형통과 곤고 두 가지를 병행하신다.
형통하면 기뻐하고 곤고하면 낙심하지 말고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지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 가운데 계속 형통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계속 곤고하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면 안 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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