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70716일 설교 말씀

 

왜 당신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김은호 목사)

 

[사도행전 10:38, 44-48]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복음의 핵심.

베드로가 전한 화평의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사도행전 10:39b-40]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복음의 핵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아무리 세련된 메시지라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없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 사함을 받았고, 부활을 통해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 원색적인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십자가만 강조하고 부활이 없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사도행전 10:42b]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예수님은 구원자이자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재판장이시다.

 

[사도행전 10:43b]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사도행전 2:36]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3:15]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복음에 대한 반응과 결과.

놀라운 사실은 원색적인 복음이 선포되면 반드시 어떤 반응이 나타난다.

 

[사도행전 10:44]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사도행전 10:48]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했을 때 성령이 임했고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사도행전 2:37b-38a]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베드로가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찌할꼬 회개하면서 3천 명이나 세례를 받았다.

 

[사도행전 4:1-3]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이번에는 정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부활의 복음을 싫어했다.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생명이다. 빛이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의 빛이 비춰지기 시작하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반응을 나타낸다.

동일한 햇빛 아래서 양초는 녹아내리지만 진흙은 굳는다.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들어도 사람의 반응은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외통하고 회개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아멘으로 화답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강박해진다. 급기야는 핍박한다. 설교자를 비난한다.

 

주의 손이 함께 함.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비난이 있을지라도 원색적인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이 복음을 통해서만이 죽은 영혼이 살아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1:20b-21]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손이 없으시다. 주의 손이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한다.

삶의 현장 속에서 주의 임재와 능력을 보고 싶다면 끊임없이 주 예수를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를 전하는 사람은 간증이 많다. 간증이 없는 사람은 예수를 전하지 않는다.

주 예수를 선포할 때에 주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해도 원색적인 복음을 전 할 때 교회는 건강하고 부흥했다.

도덕과 윤리의 메시지를 전하는 곳이 교회가 아니다.

 

[사도행전 10:44]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 언제 임했는가?

원색적인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그곳에 임하셨다.

복음이 채 다 전해지기도 전에 성령이 임하셨다.

도덕과 윤리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있을 때 임하였다.

 

2) 누구에게 임했는가?

[사도행전 10:44b]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말씀 듣는 모두에게 임하였다.

성령은 언제나 말씀과 함께 일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하셨다.

성령님이 분명히 운행하고 계셨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말씀과 성령의 은사를 분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말씀의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말씀에 기록된 성령의 은사와 능령을 부정한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 자신의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말씀에서 벗어난 계시는 없다.

말씀과 성령은 함께 일하신다.

성령이 임재하시는 곳에는 말씀이 있으시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임하신다.

[에스겔 37:10]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하나님의 명령대로 말씀이 들어가니 성령님이 그들 가운데 임하셨다.

에스겔 골짝이의 죽은 뼈들이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다.

절망의 골짝이가 희망의 골짝이가 되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죽음이 희망이 된다.

 

성령님은 언제 가장 강하게 임하시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바로 이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시간은 너무도 중요하다.

 

3) 어떻게 임했는가?

[사도행전 10:44b]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내려오시니” : 덮치다. 밀어닥치다.

 

[사도행전 10:45]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부어주심” : 쏟아져 나오다. 흘러나오다

 

가랑비가 오듯 임하신 게 아니다. 장대비가 오듯이 강력하게 임하셨다.

성령님이 임하셨다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

말씀을 듣고 성령이 임하였는데 아무 일도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는가.

[사도행전 10:46]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 성령이 임한 결과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19:6]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방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설교적인 방언이다

 

원래 하나님의 나라는 언어가 하나였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음으로 인간의 언어가 혼잡해졌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면 언어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언어의 통일, 설교적인 방언이다.

 

고린도전후서의 방언은 기도하는 방언이다.

기도의 방언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하나님께 비밀로 말씀드리는 기도다.

 

성령이 임하지만 모두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방언을 했다고 해서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니다.

방언을 한다고 해서 교만할 것도 없고, 방언의 은사가 없다고 좌절할 것도 없다.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면 그 방언을 아름답게 잘 사용하면 된다.

 

하나님을 높이기 시작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열매가 있다.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에베소서 5:18]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19]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19절에는 노래와 찬양에 관련된 단어가 다섯 번이나 나온다.

성경 한 구절에 노래와 관련된 단어가 다섯 번이나 나오는 구절은 여기 밖에 없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가장 먼저 우리의 입술에 찬양과 감사가 떠나지 않는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원망과 불평이 나오지 않는다.

원망과 불평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

[사도행전 10:38a]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 아래까지 흘러내리듯 그만큼 예수님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다. 그럼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누가복음 4:1a]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1)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행하셨다.

[사도행전 10:38a]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선한 일이란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중에 행한 모든 일이다.

가르치시고, 주린 자들을 먹이셨고, 친구가 되어주시고, 병을 고쳐주셨다.

 

[마태복음 4:24b]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질병 당해본 자들은 알 수 있다. 병 고침이 얼마나 선한 일인지.

 

2)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사도행전 10:38b]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마귀가 하는 일은 사람을 눌리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치셨다.

마귀의 속성은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다. 착취하고 압제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와 상처로 수많은 사람을 압제하고 있다.

더러운 귀신은 돈, 쾌락, 명예, 온갖 두려움으로 매임을 받게 한다.

 

성령님은 자유케하는 영이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

그래서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죄 없으신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셔서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렇다면 온갖 죗성이 충만하고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권면이 아니다. 명령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감당할 수가 없다.

 

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가?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서다.

성령의 충만은 나를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게 된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이타적인 삶을 살게 된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내 중심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보게 된다.

성령의 충만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남은 인생을 예수님처럼 살고 싶지 않으세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음은 명령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어제의 충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기름부음을 받아야 성령의 능력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예수님처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