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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일 설교 말씀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즐거워하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12-16]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난에 대한 생각

여러분은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난을 좋아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은 내 인생에 저주라고까지 생각하며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사주팔자, 운세를 보기도 하고 양심마저 버리고 비굴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종교를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0]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디모데후서 3:12]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14:22b]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전서 4:13a]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4a]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이렇게 성경은 고난에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복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고난을 복이라고 하지 않는다.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반드시 받아야 할 고난과 받지 말아야 할 고난이 있다.

[베드로전서 4:15]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인한 고난

살인이나 도둑질은 십계명 중 육계명과 팔계명에 속한 중범죄이다. 그다음 악행은 중범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할 때 나쁘다고 얘기하는 범죄를 말한다. 교통법규 위반, 거짓말, 약속 위반 등 사회적 중범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할 때 이건 안된다고 말하는 나쁜 행동을 말한다.

 

그리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타인을 위해 감독관의 입장에 서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이 감독관처럼 되어서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해서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일로 인해서 고난을 받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고난을 당했는데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고난으로 착각을 하며 억울해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고난은 그런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성도들을 보면 예수가 생각나서 그리스도인, 우리말로 예수쟁이라고 불렀다. 존경의 의미가 아니라 경멸의 의미로 불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은 내가 그리스도를 내 삶에 들어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것

 

내 실수로 받는 고난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내가 받는 고난을 말한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으면 굉장히 혼란스러워한다. 그것은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고난을 한 자루에 집어넣고는 흔들어 섞어버렸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고난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 케네스 해긴 그리스도인의 고난

 

이 고난이 나의 잘 못과 실수로 주어진 고난인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고난인지 구별을 해야 하는데 그냥 그 고난 자체로만 대해 버린다. 이 고난을 구별하지 못하면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애매모호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다가왔을 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에 대한 태도

1. 이상히 여기지 말라

[베드로전서 4:12]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상상을 초월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히브리서 11:36-38]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래서 베드로는 불 시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한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낯선 사람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해하려는 적처럼 대하지 말고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 친구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불 시험이 나를 연단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불 시험을 막아 주실 수 있다. 하지만 그 불 시험을 막지 않으신다.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서이다. 성도는 이런 불 시험을 받으면서 의심의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모난 부분이 깎여 지면서 순결해진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불 시험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려 오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나를 실패하게 하거나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를 연단해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과수의 나무를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다. 하나님도 우리를 대하실 때 우리를 연단하여 단단히 세우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니 지금 당하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친정어머니가 오실 때 빈손으로 오시지 않듯이 고난도 마찬가지다. 그 고난의 보따리 속에는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것이 참 많이 들어 있다.

 

고난은 주님 주시는 변장된 축복이다

 

성경을 보면 불 시험당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다윗이 있다. 17년을 사울 왕으로부터 쫓겨 다녔다. 수없이 오랜 생활 동안 굶주리면서 불편한 생활을 했다. 자신으로 인해서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했다.

 

[시편 119:71a]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또 한 사람 욥이 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모든 재산 그리고 건강을 잃었다.

 

[욥기 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절대로 이상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고난에 대한 태도

2.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3]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즐거워하라는 것이 현재 능동형으로 되어 있다. 고대 사회에서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말과 같이 사용되었다. 인사하듯이 반겨 맞으라는 것이다. 고난이 다가오게 되면은 그 고난을 굉장히 존중해 주면서 너무나 기뻐서 날뛰라는 것이다.

 

고난이 다가왔을 때 이렇게 기뻐할 수 있겠는가? 죗성을 가진 우리 인간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편지를 쓴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하고 주님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이렇게 반응했다.

[마태복음 16:22]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렇게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님이 받으시는 고난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순절의 성령 충만을 받고 난 후에는 고난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사도행전 5:41]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고난을 즐거워하며 기뻐하게 되었다.

 

예수님도 고난을 기뻐하신 적이 없다.

[마태복음 26:38]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모든 사람은 고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난을 두려워한다.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해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

 

고난에 대한 태도

3. 부끄러워 말라

[베드로전서 4:16a]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실패, 수치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이라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다니는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분이 계신다.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교회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 역시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고난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용하신 그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 8:38]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자녀로 삼으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그 주님을 부끄러워한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실수로 인한 고난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이 다가오면 즐거워하며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