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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2017년 06월 30일 금요기도회

갈까MAGI 2017. 6. 30. 23:20

이 은혜에 굳게 서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5:12]

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은 겸손이다.

염려의 반대말은 거룩이다.

거룩이란 하나님을 향해 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의심하고 염려할 때에 두 마음을 품게 되고 우리의 삶이 거룩해 질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나누어짐을 싫어하신다.

하나님께 집중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염려를 몰아내야 한다.

근심과 염려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삶의 방식이 아니다.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1) 염려는 백해무익하다.

 

2) 염려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다.

염려가 몰려오면 그 문제를 붙들고 생각하지 말고, 내게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염려보다 생각이 먼저다.

 

[전도서 11:10]

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염려를 떠나가게 하라.

 

3) 주께서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마음을 쓴다.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염려를 맡긴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를 통해서 염려를 주님께 옮겨라.

 

마귀를 대적하라.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대적해야 한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을 믿어야 한다.

 

[누가복음 10:19]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이 믿음을 가지고 사탄을 대적해야 한다.

 

신실한 형제 실루아노.

[베드로전서 5:12a]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실루아노는 누구인가?

베드로가 전서를 썼는데 실루아노로 하여금 대필하여 쓰게 했다.

실루아노의 히브리식 이름은 실라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사도행전 13:13]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중도에 포기하고 요한이 돌아간다.

왜 요한이 중도에 포기하고 선교지를 이탈했을까?

단순히 힘듬 만은 아니었다.

선교정책의 갈등 때문이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강경하게 대하여 너무도 큰 비난을 받았다.

요한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꼭 그래야만 했는가 하는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2차 전도여행을 떠 날 때 바나바와 바울이 크게 다투었다.

바나바는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바울은 거절했다.

그래서 바나바는 요한을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떠났다.

 

실루아노를 신실한 형제라고 말한 이유는?

1) 사도 바울에게 분신과 같은 동역자였다.

초기 사역은 바울과 함께 했다.

바울에게 있어 실루아노는 디모데 보다 더 분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2) 주인공이 아닌 조력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실루아노는 로마의 시민권자였다. 뿐만 아니라 굉장한 지성과 영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행전 15:32]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실루아노를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사역의 주인공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울과 함께 사역할 때도, 베드로와 함께 사역할 때도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써 헌신했다.

이런 조력자 때문에 바울이 바울, 베드로가 베드로가 될 수 있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도 이 실루아노와 같은 많은 조력자들이 있다.

그 분들의 헌신과 충성, 눈물의 기도가 있기에 한국교회를 섬기고 대안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었다.

실루아노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바울과도 베드로와도 그의 사역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삶은 복음을 위한 삶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변질 되지 않았다.

 

이 은혜에 굳게 서라.

[베드로전서 5:12b]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참된 은혜가 있다는 것은 거짓된 은혜도 있다는 것이다.

회개가 없는 용서, 십자가 없는 복음, 예수 믿으면 형통한다는 값싼 믿음.

 

베드로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나를 은혜로 선택하시고, 은혜로 부르시고,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

모든 인생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고난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에 비해서 고난은 잠깐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고난은 우리를 온전하게, 강하게 만든다.

이 고난이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은혜에 굳게 서라.

성도는 은혜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흔들림 없이 굳게 설 수 있다.

 

[디모데후서 2:1]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를 아는 만큼 강해진다.

은혜를 받으면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다.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고 한다.

많은 젊은이 들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학을 믿는다.

 

이럴 때 일수록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을 찾으신다.

굳게 서서 주님을 바라보는 자를 찾으신다.

은혜 위에 굳게 선다는 것은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사람이 하나님을 부정해도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기에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은혜로 강해지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