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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일 설교 말씀

 

기도로 호흡하고 사랑으로 덮으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모든 일에는 때와 기한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도 말세, 지구 종말을 얘기하고 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가 말하는 만물의 마지막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여 이루어질 심판과 우주적 종말을 말한다.

 

성경은 예언과 성취로 되어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456회나 나온다.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초림보다도 재림이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다시 오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6:27]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러면 예수님이 심판 주러 다시 오실 때에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베드로후서 3:10]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마태복음 24:29]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하늘의 권능들은 그동안 사람들을 미혹했던 영들을 말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2,000년 전에 그러한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 마지막이 훨씬 더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어쩌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인생에 영원한 하루는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도하라

[베드로전서 4:7]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군인이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초를 서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한다. 절제에 기초한 깨어있는 정신을 근신이라고 말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는 것도, 운동도, 여가 생활도, 수다 떠는 것도, 모임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욕을 따라 다 살다 보면 언제 기도할 수 있겠는가?

 

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1. 우리의 삶이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5:8]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영적 전쟁에는 싸우는 대적이 있다. 바로 원수 마귀다. 마귀는 졸지도 않고 계속해서 두르 다니며 무너트릴 가정과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제자들은 모두 잠들었지만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잠들지 않았다. 사탄은 우리가 삶에 안주해서 삶에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든다.

 

[누가복음 18:8b]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 다시 오실 때가 되면 믿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는 사람이다. 불가 2~30년 전에는 깊은 산골짜기에 기도의 소리가 울려 퍼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도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2.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핍박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성도들은 네로 황제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었다. 그 핍박 앞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베드로는 그러한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다.

 

[베드로전서 4:12-13]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런데 누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결론은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는 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전략을 짜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전략과 계획을 짜는 것보다 기도가 먼저다.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먼저다. 누군가를 향해서 비난과 야유를 퍼 붓는 것보다 기도가 먼저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에 무릎을 꿇으면 내 마음에 평안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자는 정체성이 분명하다.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해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따지지 않는다.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누가 최후의 승리를 노래하던가? 돈 있는 사람?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 아니다. 기도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마지막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12]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도바울도 말한다.

[디모데후서 3:1-2a]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자기 밖에 모르고 돈을 사랑한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특징이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오직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삶을 사는 것은 죄다.

 

베드로는 기도를 먼저 얘기하고 사랑을 말했다. 그것은 결국 기도하는 자 만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기도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런데 내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오는 사람, 아주 껄끄러운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기도하는 자만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기도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기도가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기도를 많이 했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 기도하고 난 후에 나는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고린도전서 13: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아주 열렬히 깊게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운동선수가 긴장된 마음으로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과 같다. 이만하면 되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더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핍박, 고난이 더 깊을수록 더 열렬히 깊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한다. 처음에는 열렬히 뜨겁게 사랑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식어간다. 가정에 문제, 직장의 문제가 생겼는가? 서로를 향해서 허물을 들추어내고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와도 서로 합력하여 사랑하면 그 문제를 다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이 무엇일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다.

[잠언 10:12]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사랑은 덮어주는 것이다. 까발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장님이 되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허물이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사랑이 식어지면 죄와 허물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모른다.

 

그래서 마음은 현미경이 되어 버린다. 현미경으로 보게 되면 만질 것, 먹을 것이 없다. 마찬가지다. 현미경으로 사람을 보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보게 되면 허물이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그 보혈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가려주셨기 때문이다.

 

[시편 32:1]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물론 죄를 덮어준다는 것은 불의를 눈 감아 준다는 것이 아니다. 연약하여 넘어진 것을 덮어준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죽을 때 자기가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지 않고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죽는다.” - 토니 캄폴로니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러므로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

 

성도 여러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하루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이 우리의 인생에 마지막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한마디로 하면 마지막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도로 호흡하고 사랑으로 덮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