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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일 금요기도회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김은호 목사)

 

[누가복음 5:17-20]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오늘 본문은 우리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를 고치신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아주 껄끄러운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끊임없이 자신들의 잣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정죄하는 이중인격의 사람들이었다.

 

[마태복음 12:34]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예수님이 오죽하면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겠는가.

 

[누가복음 11:39]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겉모습과 많이 달랐다.

 

[누가복음 11:43]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누가복음 11:52]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53-54]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려는 겸손함으로 앉아있지 않았다. 예수님을 조사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와서 앉아있었다.

 

설교하다 보면 정말 설교하기 싫은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 신학교에서 교수들과 학생들 앞에서는 부담스럽다. 얼마나 본문을 잘 이해했는지를 계속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 기자들 모임이 그렇다. 기자들은 은혜를 받으려는 게 아니라 비판하고 분석하려고 해서 굉장히 힘들다. 연세대 채플에 가서 설교를 하고는 다시는 안 가겠다고 다짐을 했다. 미션스쿨인데 찬송도 안하고 강사를 소개해도 쳐다도 안 본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설교를 하겠는가.

 

교회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전하는 말씀을 비판하고 평가하려고 앉아 있다면 설교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의 열쇠는 주님

어느 집에 모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 그 집에 몰려왔다.

 

[마가복음 2:2]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그 집에 많이 몰려 들어왔냐는 거다.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를 받고 싶어서였다. 이것을 보게 되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은 예수님을 자랑하고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예수님만을 전하는 이런 교회들이 부흥한다.

 

[사도행전 11:20-21]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큰 환난으로 흩어진 평신도들이 안디옥까지 가서 주 예수를 전했다. 복음을 전했더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고 주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 그들은 평신도인데 신학적으로 전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단순하게 전했다. 주 예수를 전할 때 주님이 임재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다. 복음은 단순한 것이다.

 

교회의 부흥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전하고 자랑하고 찬양하고 예수님께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어주실 때 부흥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5:17b]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

누가는 가르침의 능력보다는 치유의 능력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 왜 예수님께는 병을 고치는 능력이 함께 했을까?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이 땅에 오실 때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오셨다.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사역을 감당하셨다.

 

[누가복음 3:21-22]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첫째로 하늘이 열리고, 두 번째로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강림하셨다. 셋째로 하늘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성자, 성부, 성령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도 보냄을 받은 자로써 그 귀한 사역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도 성령을 받고 나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 없이 사역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사역의 열매가 없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심령이 공허해진다.

 

[스가랴 4:6b]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목회는 영적인 것이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할 수 없다. 목회뿐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도 성령의 은혜가 필요하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명령이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신 주님은 광야로 나가서 40일 금식하시며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누가복음 4:14]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소문이 금세 퍼지게 되었고 예수님이 가는 곳 마다 예수님을 만나러 몰려들었다.

 

주님도 성령의 충만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왜 우리는 성령의 능력 없이 내 능력으로 하려니까 고난하고 멘붕에 빠진다.

 

[누가복음 5:18]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 병자는 전신마비의 상태인 중증 환자다. 그런데 사람들이 침상 째 메고 주님께 나왔다.

 

[누가복음 5:19]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어렵게 네 사람이 메고 왔는데 비집고 나갈 틈이 없자 포기하지 않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의 천장을 뜯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내려놓는다.

 

[누가복음 5:20]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셔야 하는데 그 중풍병자를 침상 째 메고 나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의 능력을 베푸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에 가장 먼저 믿음을 보신다.

같은 신앙을 가졌지만 어떤 사람을 풍랑 앞에서 찬양을 드리고 어떤 사람을 두려워 떤다.

 

[마태복음 8:26]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시기 전에 그들의 작은 믿음을 책망하셨다. 주님은 풍랑보다도 믿음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우리는 어떤가?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 풍랑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 가운데 풍랑, 상황, 문제보다도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신다. 우리는 내 인생의 풍랑이 빨리 해결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주님은 내 믿음을 보신다. 주님은 언제나 믿음을 보시고 평가하신다.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믿음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재물, 외모, 가문, 성품,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신다.

 

[마태복음 8:10]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15:26]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믿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믿음이 큰지 작은지를 먼저 보신다.

 

[마태복음 9:29]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마가복음 5:34]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누가복음 18:8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러분 왜 기도하지 않죠?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리, 교파 분열, 이단, 교인 수 감소가 아니라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많은데 신앙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가진 믿음인가? 신앙하는 믿음이가?

 

[누가복음 5:20]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분명히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를 고치시기 전에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을 바라보실 때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 때문에 병을 고쳐주셨다.

 

[히브리서 11:6a]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믿음인데 그 믿음의 척도는 물질이다. 그래서 주님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사람에게는 주인이 딱 둘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인가? 만몬, 물질인가?

 

물질은 가장 영적인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의 싸움이 십일조의 싸움이다. 아무리 신앙생활 오래 해도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내 인생의 주인은 만몬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으로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야고보서 2:17-18]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정말 네게 믿음이 있다면 행함으로 내게 보이라고 하신다. 본문에 나오는 친구들은 행함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보였다. 중풍병자이지만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살려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믿음이 있었기에 침상 째 메고 달려온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자신들의 믿음을 나타내 보였다.

 

진짜 믿음은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철학, 관념이 아니다. 믿음은 확신이다.

오늘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을 주님께 나타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