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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5일 설교 말씀

 

은혜를 아는 자여 은혜를 확증하라 (김은호 목사)

 

[고린도전서 15:10]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가 확연히 다른 것이 있다. 세상의 종교는 행위를 근거로 하지만 기독교는 은혜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다.

 

은혜란?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한다.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을 말한다.

[로마서 4:4]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하는 자는 인간의 행위와 선행, 열심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사람이다. 은혜는 서로 베타적일 수밖에 없다.

 

[로마서 11:6]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신앙의 기초는?

인간의 선행과 행위가 신앙의 출발과 근거가 된다면 은혜가 은혜 될 수 없다. 신앙의 기초는 은혜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전서 5:12b]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그런데 은혜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지 못하고 인간의 행위가 기초가 되고 근거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유함이 없다. 감격이 없다. 확신이 없다. 어느 정도의 선행을 하고 의롭게 살아야 내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는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만나본 가톨릭 신자 중에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한결같이 지금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한다. 인간의 선행과 행위를 자신의 신앙의 기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신앙의 기초가 되어 있다면 내 감정, 내 상태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 확신이 있다. 자유함이 있다. 내 인생 가운데 실패가 있고 넘어 짐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자유함이 있고 확신이 있다.

 

물론 행위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은혜와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반드시 행위가 있어야 된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시작은 은혜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인생은 은혜로 시작되었고 은혜로 달려가 마쳤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고린도전서 15:10a]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사역, 인생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의 증거가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9]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과거의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은 유대교 신자로써 부활을 믿지 않고 부활의 신앙을 전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사도행전 9:3b-4a]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도행전 9:5]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나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바울에게는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얼마나 은혜에 감격했으면 한 절에 은혜라는 말을 이렇게 반복하여 사용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에게는 이런 놀라운 감격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에게 이런 은혜의 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이성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영이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내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을 알았겠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이 세상을 쫓으며 죄와 사망의 법에 메여 살고 있을 것이다.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가 되었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안에 이 은혜의 감격이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감격이 있는가? 십자가의 은혜에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그런데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은혜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직분까지 주셨지만 은혜의 감격 없이 냉랭 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에게는 은혜의 감격이 있다.

 

[고린도전서 15:10a]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그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이 수고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은혜에 감격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더 많이 수고한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 은혜는 은혜로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네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왜 선교사들이 목숨의 위험을 받으며 선교지로 떠나는 걸까? 내게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다.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자는 그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헛되이라는 뜻은 공허한, 텅 비어있는 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소갈 되고 고갈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은혜가 풍성히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 이 말은 은혜를 받기 위해 더 많이 수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값없이 받고 누리는 것이다. 더 많이 수고하는 것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내가 두 발로 걷고 보며 말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때로는 여러분의 인생의 가시와 실패도 은혜일 수 있다. 은혜를 아는 자는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다. 반드시 더 많이 수고한다. 사랑과 섬김은 비례한다.

 

[누가복음 7:47]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충성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받은 은혜와 비례한다. 은혜를 많이 받은 자가 더 많이 충성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그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5:10b]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은혜를 아는 자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지 않았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지 않는다.

 

은혜를 아는 자는 은혜의 감격 속에 젖어 살아갑니다. 주를 위해 더 많이 수고합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