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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1일 설교 말씀

 

은혜의 보좌 앞에서 기도하라 (김은호 목사)

 

[시편 28:1-2 ; 출애굽기 17:16]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이다. 은혜를 받으려면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간다는 것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다.

 

[에스겔 1:15]

15.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네 생물은 천사를 말한다. 하나님의 보좌와 천사에게 바퀴가 있다. 하나님의 보좌는 고정되어 있지만 때로는 공간을 초월하여 임재 하시어 주의 보좌를 펴시고 좌정하신다. 우리가 기도드리는 바로 앞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기도로 나아가라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기도의 장소와는 상관 없이 기도하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보좌의 앞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그렇게 기도한다.

 

[시편 28:2]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다윗은 지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다. 다윗의 시대는 아직 성전이 지어지지 않아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는 곳을 향해 거룩하게 손을 들고 기도했다.

 

기도의 태도

기도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자의 자세, 태도가 중요하다. 태도를 보게 되면 그 기도의 간절함과 대상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이 누군가인가에 따라서 태도가 달라진다. 존경하는 사람과 귀찮은 사람을 만날 때 그 태도가 너무나 다르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도 태도와 자세를 보면 그 간절함과 대상을 알 수 있다.

 

부르짖어 기도함

다윗은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시편 28:1a]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시편 28: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다윗은 인생의 황혼기에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했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왕권을 탈권 하려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

 

[예레미야 33:3]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억울함을 묵상하지 말고 소곤소곤 기도하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억울함을 밤새도록 묵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절하게 기도하는 자 만에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과 예레미야는 억울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나의 반석이여

[시편 28:1a]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여호와 주를 나의 반석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편 18:2a]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추상적으로 고상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그런데 유대인은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표현했다. 반석은 요동치 않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들린다. 믿음 좋은 사람도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 변한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신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흔들리고 변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된다. 사람은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 대상이지 의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사야 2:22a]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시편 146:3b]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편 18: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하나님만이 인생의 반석이시다. 영원히 흔들림 없고 변치 않으신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반석이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무덤에 내려가는 자

[시편 28:1b]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시편 143:7]

7.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무덤은 음부다. 참담한 죽음이다. 무덤에 내려간 자는 죽은 자를 말한다. 내가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윗은 그만큼 기도의 응답이 간절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들어주시면 좋고, 안 들어주셔도 무방하다.라고 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서 손을 들라

[시편 28:2a]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다윗은 지금 압살롬의 반란으로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기도할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 손을 들어 기도했다.

하나님께 손을 들어 기도한 사람이 또 있다. 모세다.

[출애굽기 17:11]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아론과 홀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그래서 마침내 이스라엘은 승리하게 되었다. 기도하는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을 때 승리한 것이다. 모세의 손에 초인적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세가 손을 들 때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7:15]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애굽기 17:16](각주)

여호와의 보좌를 향해 손을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얻고 아말렉과 싸워주신다고 맹세하셨다. 왜 모세가 손을 들 때 싸워 주셨는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항복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나의 소망, 야망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이다.

 

모세가 손을 올릴 때만 기도했을까? 죽고 사는 전쟁에서 손을 내렸을 때도 기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겼다. 하나님이 이 기도의 자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셨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분명한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믿음과 손이 함께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애가 3:41]

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믿음 없이 손만 들고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싸워 주시겠는가? 바리세인은 그렇게 했다. 바리세인은 손을 들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은혜의 보좌 앞에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 내게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주님이 힘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손을 들고 기도할 때 반드시 역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라

영적 기도의 승패는 기도의 현장에서 결정된다. 영적 전쟁은 싸움의 현장 보다 기도의 현장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의 현장이 없이 일터에서 승리하려고 한다. 내 힘과 노력만을 가지고 싸워 보려고 한다. 왜 실패하십니까? 실패의 원인은 기도의 현장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노력으로 승리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기도의 현장에서 먼저 승리해야 합니다.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할 때 무너진 일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기적은 기도의 현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