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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일 설교 말씀

 

은혜의 보좌 앞에서 예배하라 (김은호 목사)

 

[요한계시록 7:9-12]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은혜에 굳게 서라

[히브리서 4:16b]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받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한다.

아무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없다.

 

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하는가?

1. 긍휼하심을 받기 위하여

[히브리서 4:16a]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하여 공함하여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시면 반드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

 

2.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히브리서 4:16b]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도우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하나님은 단순한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다. 어떤 사람에게라도 은혜를 베푸실 수 있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나아갈 것이니라는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한 번에 끝내지 말고 계속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

은혜의 보좌 앞에는 구약 시대에는 1년에 한 번 대제사장 만 이 정결하게 하여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간다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의 영광, 음성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의 보좌를 실전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야 한다. 함께 예배를 드려도 그 거리가 다를 수 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예배로 나아가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라는 말은 79번 나온다. 찬양, 경배, 엎드림이라는 말도 함께 나온다.

[요한계시록 4:10]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요한계시록 19:4]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이십사 장로는 구원받은 자, 네 생물은 천사를 말한다.

오늘의 본문도 마찬가지다.

[요한계시록 7:11]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것을 보게 되면 예배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서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시편 100:4]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궁정은 왕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우리가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찬양이 떠나지 않을까? 찬송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말할 수 없다.

[시편 22:3]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찬양을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에는 언제나 찬양이 있다.

 

[이사야 43:21]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는가?

 

[에배소서 1:6b]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함이다.

 

누가 예배하는가?

[요한계시록 7:9]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흰 옷을 입은 자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7:14b]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들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죄를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이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이들의 수를 십사만 사천이라고 한다.

[요한계시록 7:4]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십사만 사천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십사만 사천 명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은 모든 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24장로는 구 약 시대에는 12지파가 있었다. 신약에는 12 사도가 있었다. 24장로들은 신구약 시대의 구원받은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십사만 사천은 어떻게 나왔을까?

 

12(구약 지파) X 12(신약 사도) X 1000(완전 추과의 수)=144,000

 

이것을 보면 예배는 아무나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 들 만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의 특권을 누려야 한다. 예배를 우습게 여기지 마세요.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예배의 대상은?

[요한계시록 7:10]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예배의 대상이다. 예배를 드리는 자의 영적인 시선은 하나님의 보좌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의식하면서 사람 중심의 예배를 드릴 때가 많다.

 

다윗이 왕으로써의 체면과 체통을 고려했다면 하나님을 상징하는 언약궤 앞에서 어떻게 덩실덩실 춤을 추었겠는가?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사를 지냈다.

[창세기 13:18b]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여호와를 위한 예배를 드렸다. 예배는 나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부부싸움을 하여 마음이 상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우면 기쁨의 찬양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다분히 내 감정에 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나를 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예배라면 내 감정과 상관없이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찬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영적인 시선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바퀴

[다니엘 7:9]

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에스겔 1:15-16a]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네 생물은 천사를 말한다. 그 천사들에게도 바퀴가 있다.

[에스겔 1:19-20]

19. 그 생물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 생물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들도 들려서

20.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바퀴가 언제나 천사들과 함께 있는데 천사들이 움직일 때마다 바퀴도 함께 움직인다. 하나님의 영이 가면 천사들도 함께 움직였다.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이다. 왜 바퀴가 있을까? 바퀴는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고정되어 있지만 때로는 우리 가운데로 움직이신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신다. 하나님의 영이 이곳에 임재 하시면 천사들도 이곳에 같이 온다. 은혜의 보좌와 우리 사이는 멀 수도 있지만 영적인 거리는 가까울 수 있다.

 

[요한복음 4:24]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제 우리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면 하나님이 이곳에 보좌를 펴시고 예배를 받으신다. 예배는 현장감이 있어야 한다. 예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사람들만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다.

예배는 영적이어야 한다.

 

예배를 회복하라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서, 소홀히 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자는 없다. 지금 예배를 소홀히 하면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예배 이상의 삶을 살 수가 없다.

 

가정, 자녀, 사업, 건강, 영적이 권위가 무너졌습니까? 예배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무너졌던 것들이 회복됩니다.

 

[시편 27:4]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은 그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다. 예배를 구했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지 않았다. 다윗은 알았다. 예배가 회복되면 백성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고, 쿠데타 세력도 물리쳐 주시고, 잃어버린 왕권도 회복됨을 믿었다.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현장감 있는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당신의 영광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 주실 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