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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22:39

20180831일 금요기도회

 

이렇게 기도하라 (임권동 선교사)

 

[에베소서 6:18-20]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은 인도에서 사역하고 계신 임권동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저는 인도 중부지역에서 다양한 사역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한 것은 1987년 정도입니다. 선교를 하다 보면 선교사님은 어쩌다가 선교사님이 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청년 때부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가 궁금했습니다. 제가 만난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교는 희생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을까. 우리가 너무나 이분법적으로 선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선교적 존재로 선교사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제가 처음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거의 30년 전입니다. 그때 부르심이 지금까지 저절로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매일 아침 새롭게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또 나를 선교사로 부르셨구나 하는 부르심에 대해 선교사로 살아갑니다.

 

내일은 미스터리입니다. 모릅니다.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시작할 때에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때 내가 여전히 부족하고 충성되지 못하지만 또다시 은혜를 주셔서 부르시고 사용해 주십니다.

 

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강하게 마음을 주셨습니다. 처음엔 20년간 섬기려 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은 더 강한 마음을 주셨고 30,,, 평생을 인도를 위해 섬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대로는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주시길 기도드렸고 주님이 주신 두 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로 살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두 아이가 선교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역은 저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열병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왜 나 같은 사람을 보내셨습니까? 능력 있는 자를 보내셔서 현장에서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왜 저를 보내셨습니까?”

 

그러나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다. 너는 내가 보낸 곳에 서 있으면 된다.” 이 말씀 때문에 결국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하는 선교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과 동역자를 통해서 선교를 해 나가시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영광된 목적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만 죄 된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팀 사역을 하라고 하십니다. 단호하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 조건을 달았습니다. 이 팀 사역은 제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셔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책임지십시오. 문제는 생겼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올려드렸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처음 만난 고난은 열병이었습니다. 3일 째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이런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집이 검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검은 장막을 치우시며 울타리를 쳐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울타리가 쳐지던 소리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바닥까지 울타리를 쳐 주셨습니다. 열병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를 책임지십니다. 여러 가지 영적인 치열한 전쟁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키시지만, 하지만 정말 치열하게 전쟁했던 것은 내부적인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비의 집을 떠나서 선교 현장으로 나갑니다. 그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지키고 간직하고 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떠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보여주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떠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운동경기에서 힘이 들어가면 실수가 나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 선교는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교를 나를 위한, 교회를 위한, 선교를 위한 선교를 할 때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출발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고민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영혼을 위해서 나누어 주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기도를 합니다.

[에베소서 6:18-20]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갇힌 자의 모습으로 이 글을 섰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갇힌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자기를 감옥에서 건져주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밤에 우리가 기도할 때 다시 한번 열방을 품고 이제는 보내는 선교사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선교적 존재로 나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집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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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15:01

20180826일 설교 말씀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소서 (김은호 목사)

 

[이사야 33:1-2]

1. 너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2.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이사야 33장의 내용은 먼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1) 애굽과 동맹을 맺음

유다 왕 히스기야는 애굽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의 침공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단히 진노하셨습니다.

 

[이사야 30:2-3]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이 말씀대로 유다는 앗수르의 침공을 받을 때에 애굽에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그들 스스로의 판단을 따라서 애굽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따라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은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강력한 것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거고 결국엔 수치와 수욕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2) 앗수르의 침략과 배신

히스기야가 친앗수르 정책을 포기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자 앗수르가 침공하여 유다의 대부분의 성읍들을 다 쳐서 점령했습니다. 대세가 앗수르로 완전히 기울어지자 사신을 보내어 스스로 굴복을 합니다.

 

[열왕기하 18:14a]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이 얼마나 치욕적입니까.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왕이 원하는 것을 다 줄 테니까 제발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말고 철수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정세에 따라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 받고자 했습니다.

 

[열왕기하 18:14b]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한 달란트는 34.27kg입니다. 은 삼백 달란트는 10,281kg입니다. 금은 1,028kg입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성전 문의 금까지 다 긁어서 줬습니다. 얼마나 치욕적인 일입니까? 그러나 앗수르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제 히스기야는 기도에 무릎을 꿇고 선지자를 보내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기도를 부탁받은 이사야 선지자의 바로 그 기도의 내용입니다.

 

화 있을진저

[이사야 33:1]

1. 너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여기서 너는 앗수르를 말합니다. 학대는 유다를 여러 차례 침공하여 약탈한 것을 말하고, 속였다는 것은 배상금을 받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네가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것만큼 학대를 받고 속이는 것만큼 속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개입하셨습니다.

 

[열왕기하 19:35]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하늘의 천사를 동원하여 앗수르의 군대를 괴멸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패한 산헤립 왕이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믿었던 아들에게 속임을 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앗수르는 학대 당하고 속임을 당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악을 뿌리면 반드시 악을 당하고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둡니다.

 

여호와여 은혜를 베푸소서

[이사야 33:2a]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은혜는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호위를 말합니다.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자신의 약함을 알게 되고 세상을 이길 힘을 받게 됩니다.

 

[민수기 6:25]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오늘 저와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만이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사방으로 욱여싸임을 당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이사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이사야 33:2a]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그런데 기도의 주체가 우리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이사야 선지자는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과 함께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더불어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앙망은 우러러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33:2b]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소서

하나님은 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팔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팔은 하나님의 힘, 능력을 뜻합니다.

 

[신명기 5:15a]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주님이 나의 힘과 능력이 되어달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33:2b]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아침은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어느 특정한 날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그 순간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나의 인생에 힘이 되어주시고 주님이 나의 능력이 되어달라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힘과 능력만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아침마다 주님의 우리의 팔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쇼월터 목사가 지은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이 찬양은 두 제자가 아내를 잃고 힘들게 살아간다는 편지를 받고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기도하고 있는데 신명기 3327절 말씀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신명기 33:27]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쇼월터 목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능력 있는 팔만이 이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고 이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줄 수 있기를 알았기에 그 팔에 안기자는 찬송 시를 써서 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팔이 되십니다. 그런데 그 팔은 영원하신 팔입니다.

 

그의 영원하신 팔이 내 아래에 있도다

하나님의 팔이 내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팔로 안으셨을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품에 안겨야 합니다. 그런데 그 영원하신 팔에 안겨있는 성도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품은 넓고 따듯하십니다.

 

주님의 품에 안기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품에 안긴 자는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평안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밑바닥 인생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넘어질 수는 있지만 아주 엎드려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37:24]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소서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매일 아침마다 주님이 능력이 되어주셔야 만이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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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4 23:09

20180824일 금요기도회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라 (김은호 목사)

 

[시편 16:7-9]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오늘 시편 16편의 강해를 마치려고 합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다윗의 첫 번째 고백이 나를 지켜주소서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다윗이 달랐던 것은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께 피하였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시편 16:2]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 건강, 자녀도 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복의 열매만을 복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진정한 복은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나님 자신이 내 인생의 복이다. 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하늘에 있는 성도에게는 더 이상 연약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땅 가운데 성도는 연약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완전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시편 16:4a]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괴로움이 더 한다.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 받으려 우상을 숭배하지만 결과적으로 괴로움이 더 한다. 우상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매이게 만든다. 그런데 성령이 운행하시면 그런 묶임이 풀어진다.

 

[시편 16:5]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삶의 이유가 되신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지켜주신다. 내 분깃을 지켜주셔서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하신다.

 

[시편 16:6]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땅이 있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이 있다. 그것은 가정, 직장, 내가 머물러 있는 캠퍼스입니다. 더 나가서 우리의 외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역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아름답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복습이었습니다.

 

[시편 16:7a]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훈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훈계 속에는 책망, 징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간음과 살인죄를 지었을 때 주의 종을 보내어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에게 훈계를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훈계를 하지 않는 부모는 마지막에 반드시 눈물을 흘립니다.

 

[잠언 23:13-14]

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우리의 자녀는 천사가 아닙니다. 타락한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방치하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훈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8]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잘 못된 길로 가는데 징계가 없다면 아직 하나님의 친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우리도 자녀들을 훈계할 때 사랑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비교하지 마십시오.

 

오늘 다윗은 주님의 훈계를 복으로 여겼습니다.

[시편 119:111] (새번역)

111. 주님의 증거는 내 마음의 기쁨이요, 그 증거는 내 영원한 기업입니다.

 

부모의 훈계를 잔소리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6:7]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다윗은 잠들기 전에 자신의 양심을 통해 나를 교훈하셨다고 한다. 우리 안의 성령님은 끊임없이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우리를 교훈하십니다.

 

밤마다라는 것은

지속적인 훈계

인생의 밤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나갈 때 인생의 낯에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인생의 밤을 만났을 때 성령께서 내 양심을 통해 내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밤마다 양심을 통해 훈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시편 16:8]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지금 다윗은 사울 왕에 의해서 쫓겨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때를 물었다. 하나님께 물으면 바로 듣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누리게 될 복은?

첫째, 흔들리지 않는다

오른쪽은 강력한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내 인생에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다윗은 위급한 상황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30:6]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자기를 믿었던 사람들이 배신하여 돌을 들어 쳐 죽이려고 했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그 앞에 모시고 살았기에 그 하나님을 힘입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시편 62:2]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3:6]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은 문제를 보지 않고 상황을 보지 않고,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님을 의식하고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광야의 인생길을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풍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누리게 될 복은?

둘째, 기쁨

[시편 16:9]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면 돈다발이 쏟아지지 않아도 기쁨을 누립니다.

 

[시편 16:10]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기쁨이 있는 자를 만나면 그 기쁨이 흘러옵니다. 하나님에게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그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내가 그 주님을 모시고 살면 그 기쁨이 자동으로 흘러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 앞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서 그 주님을 찬양할 때에 주님 안에 있는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에게 흘러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그 주님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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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9 15:05

20180819일 설교 말씀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김은호 목사)

 

[시편 62:1-5]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편 62편의 표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여두둔이라는 사람은 다윗 시대에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세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시편 62편은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반란으로 인해 피난을 가서 지은 시입니다.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절망스러울 때 쓴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땅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인생의 벼랑 끝에서 주저앉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큰소리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시편 62:1a]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성경 원문에 보게 되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오직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시편 62:5a]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다윗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처절한 순간에도 이렇게 외쳤다.

오직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여기서 영혼은 자신의 전인격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잠잠히는 인간적인 수단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표적으로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다가 진퇴양난의 위기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14:13a]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가만히 서서라는 말은 인간적인 수간을 내려놓으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바라본다는 것은?

Truly my soul waiteth upon God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기도입니다. 수동적으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앞에서는 침묵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겁니다.

 

모세와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부르짖어 기도했던 사람들입니다.

 

[시편 62:8a]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수동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적극적으로 나가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체면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 토해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앞에 가서 내 마음을 토하면 부작용이 너무 많습니다. 더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사람에게 토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가서 그 상한 마음을 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의 전략

1. 상황과 문제만을 보게 한다

우리 앞에 있는 홍해, 골리앗, 난공불락의 여리고성만 보게 합니다. 문제와 상황을 바라본다고 해결되나요? 마음이 평안해 지나요? 아닙니다. 바라볼수록 문제가 더 커 보여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사탄의 전략

2. 연약한 내 자신만을 보게 한다

이 세상에 자신을 바라보면서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바라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내 자신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사탄은 늘 내 자신으로 하여금 쓰러지고 넘어진 모습을 보게 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내 연약한 믿음의 수준을 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도하려고 할 때마다 너나 잘해!”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참소합니다.

 

시선이라는 찬양은 예수전도단의 김명선 간사님이 만든 곡인데 나라를 위해 중보기도하려 할 때 너나 잘해!”라는 사탄의 참소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사탄의 참소에 낙심하려던 차에 하나님의 이런 음성을 듣고 이겨냈다고 합니다.

 

네가 어떤 수준이든 간에 네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고 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을 멈추면 안 된다. 너는 작지만 너의 눈을 나에게로 돌려라 기도하는 것은 너지만 일하는 것은 나다

 

사탄의 전략

3. 다른 사람을 보게 한다

사탄은 나를 배신하고 떠난 사람, 주는 것 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바라보게 만듭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 마귀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나로 하여금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며 낙심하게 만듭니다.

 

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가?

1. 사람은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기 때문이다

[시편 62:3]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막상 문제가 생기고 나니까 그 담과 울타리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적군을 막아내는데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은 결코 나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가?

2. 사람은 입김과 같기 때문이다

[시편 62:9]

9. ,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입김은 공허하고 오래가지 못합니다. 입김은 한 순가에 사라집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인간이 입김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입김과 같은 사람을 의지하고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하는가?

1.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시편 62:1]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다윗은 이 절망의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사야 43:11]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호세아 13:4b]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다익선이라고 여러 사람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여러 종교를 함께 섬기기도 합니다.

 

여러분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하는가?

2.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요새가 되시기 때문이다

[시편 62:2]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성경에 보면 반석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말합니다. 기준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반석이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환경, 권력, 모든 피조물이 다 변합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변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3:8]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은 시선입니다. 지금 어떤 일이 생겼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누구를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다윗은 환란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그 앞에서 부르짖어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칠 때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적인 시각을 세상에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눈을 들어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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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7 22:37

20180817일 금요기도회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김은호 목사)

 

[시편 16:4-6]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우리는 시편 16절을 금요기도회에서 나누고 있습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위기 때마다 하나님에게 피했다. 나를 지켜주소서라고 기도만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피했다.

 

이것이 다윗과 우리의 차이점이다. 우리는 기도만 하고 주께 피하지 않는다. 말씀을 떠나서 우리의 욕심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주께 피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편 16:2]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놀라운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복의 열매만을 가지고 복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그 열매를 뛰어넘어서 하나님 자신이 내 인생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알았다.

 

하나님이 복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복이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고난도 복입니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를 존귀한 자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땅에 있는 성도도 있고 하늘에 있는 성도도 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전투교회, 하늘의 교회를 승리교회라고 말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자신 안에 있는 죗성으로 인해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넘어지고 질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그 안에 연약함이 있습니다.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말합니다. 그럴지라도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면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스바냐 3:17]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가 내 자신을 봐도 한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면서 기쁨을 금하지 못할까 싶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의 피로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관계 때문입니다. 관계는 실제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내 자신을 존귀한 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메뚜기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시편 16:4a]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의지할 대상을 찾아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다윗이 보니까 사람들이 환란의 때에 아무 도울 힘도 없는 우상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하나님께 피하면 복을 받고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다른 신을 따르면 괴로움이 더해진다.

 

왜 우상을 섬기게 되면 더 괴로움이 더할까?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 신에게 매임을 받게 된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묶인 것이 풀리는 자유함이 있다. 하지만 우상의 특징은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얽매이게 하여 매임을 받게 만든다. 이사를 할 때에도 손 없는 날을 찾아서 이사를 하게 한다. 우리는 호기심으로라도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시편 16:4b]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다윗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시편 16:4c]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타로점을 보고 부적을 붙여본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제주도는 지사가 제사를 지내는 초혼관을 하도록 조례를 만들었다. 그런데 원일용 지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래서 제사의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서 매스컴에서 말들이 많았다. 정치하시는 분들 중에 이런 분이 있나 싶었다.

 

[시편 16:5]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다윗이 왜 하나님께만 피하고, 하나님만을 복이라 말하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지 말하고 있다. 여호와가 내 삶의 터전이고 곧 사업하는 모든 목적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시편 23:5]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는데 뒤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게 살아왔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분깃을 주셨을지라도 그 분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내가 잘 간직하고 바르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수고를 했는데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십일조를 약속하시면서 우리 인생에 메뚜기 재앙을 주지 않으시고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내 인생의 산업과 소득이 되어주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분깃을 지켜주신다.

 

[시편 128:1-2]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수고한대로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

 

[시편 16:6]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땅만이 아니라 다윗의 인생 가운데 베풀어주신 은혜를 말한다. 우리에게 줄로 재어준 땅은 가정, 직장, 교회, 학교, 내가 머무르는 곳이다. 내 삶의 현장을 말한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삶의 현장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보다 관점이 중요하다.

 

여러분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곳, 하나님이 세우신 곳,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곳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나 자신을 아름답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겠습니까? 시각을 바꾸시고, 관점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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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15:37

20180812일 설교 말씀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이 두려울 때 (주경훈 목사)

 

[창세기 32:24-31]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성경은 영혼의 거울이어서 처음에 성경을 읽으면 내가 성경을 읽지만, 성경을 깊게 보면 성경이 나를 읽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야곱과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세상과 하나님 의 중간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신자도 아닌 불신자라고 하기엔 과한 느낌이 듭니다.

 

그의 이름과 출생부터가 그러합니다. 이삭은 아들 이름을 야곱이라고 짓습니다.

야곱은 히브리어로

아케브’ : 발꿈치, ‘야아코브’ : 배신자, 속이다

야곱이라고 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사기꾼, 속이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야곱은 자기 이름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야곱은 평생토록 속이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는 모태 신앙으로 성장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서라면 편법을 쓰고 거짓을 행하는 것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살아온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이 두려워 보이고 더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땅 가운데 살아갈 때에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야만 내 삶이 안전할 것 같다는 그 안정감을 세상에서 느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지만 자녀 문제만큼은, 회사에서만큼은, 가정생활은, 부부관계는, 노후대책은, 재물에 관한 부분은 세상적인 것들을 더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흔들릴 때마다 우리 안의 야곱이 얼굴을 디밀고 올라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존재가 바뀌어 이스라엘이 되는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는 정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인생으로 변화가 되어집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이 두려울 때

1. 에서의 군대가 아닌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야곱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집으로 돌아갑니다. , 아버지를 속이고 위태로워지자 어머니의 권유로 하란이라는 곳으로 도망쳤었습니다.

 

[창세기 27:44]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며칠 일 줄 알았지만 20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창세기 32:1]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수많은 천사들이 야곱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창세기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그 광경이 너무 은혜로워서 그곳에 특별한 의미를 그 현장 가운데 붙입니다.

 

[창세기 32:2]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마하나임은 천사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6:53]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야곱에게 찾아온 천사는 엄청난 두 군단이었습니다.

 

[창세기 32:6]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이 말을 들은 야곱은 마음이 무너집니다.

[창세기 32:7]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그는 다시금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아서에게 뇌물을 보냅니다. 조금 전 하나님을 만난 모습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창세기 32:7]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입니다. 누가 빠졌습니까? 마하나임이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호위하고 있는데 에서의 군대에 사로잡혀서 판단력과 모든 것이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얼어붙은 강으로는 노를 저어 갈 수 없습니다. 믿음이 식으면 두려움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메시지 보다 에서가 당신을 죽이러 온다는 400명의 군사가 더 커 보입니다. 에서의 400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위기가 오면 자기에게 뭐가 있는지 까먹습니다. 날개를 편다면 비상할 수 있지만 날개를 펴지 않고 뛰어다닌다면 그 날개는 짐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이 두려울 때

2. 에서가 아닌 하나님과 씨름하라

[창세기 32:22]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아무리 생각해도 재물은 안 될 것 같으니 사람을 보냅니다. 에서를 만나면 살려달라고 빌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어떻게 하면 에서의 마음을 풀 것인지 에서에 대한 생각에 가득 차 있습니다.

 

[창세기 32:24]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은 씨름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덮치셨습니다. 야곱의 인생 가운데 에서를 덜어주시기 위하여 달려드셨습니다. 에서와 씨름하지 말고 나와 씨름하자 이 의미를 가지고 지금 야곱에게 달려드시는 겁니다.

 

결국 우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맥스 디프리

 

얍복’ : 비우다, 털어내다, 쏟아내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얍복은 야곱에게 절망의 땅입니다. 그동안 자신의 머리로 안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 되는 한계를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땅이 하나님을 만나는 땅이 됩니다.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을 채우는 땅이 됩니다.

 

[창세기 32:25]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어떻게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할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힘으로는 넉넉히 이기는데 축복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꺾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의 허벅지 관절이 부러져 서 있지 못하고 하나님 옷자락 붙잡고 매달려 있습니다. 그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습니다.

 

나는 못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32:26]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마가복음 10:48]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열정 끈기를 가지고 지금 붙잡고 있는 겁니다. 주님께 매달린 영혼 하나님께서 만져주십니다. 하나님의 터치만으로도 옛사람의 자아가 무너집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은 떨리는 목소리로 야곱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자기 이름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창세기 27:19]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창세기 29: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야곱은 자기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진실 된 고백을 합니다.

 

[창세기 32:28]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소유권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싸우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상과 싸웠습니다. 이제 세상과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은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씨름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하는 존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제 도망치지 않습니다. 에서가 두렵지 않습니다. 절뚝거리며 에서에게 다가갑니다. 잘 걷지 못하지만 걸을 때마다 기억했을 겁니다. 나는 이스라엘이다.

 

[출애굽기 1:5a]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이 구절은 창세기 전체를 정리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형성될 민족의 근간이 형성되었다는 겁니다. 야곱의 허리, 허리라는 단어가 에레크입니다.

 

예레크’ : 허벅지 관절

 

그는 평생 다리를 절 때마다 내가 이걸 의지해서 살았는데 이게 무너져서 절고 있는데 그래서 불편하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떠 올리며 불편하게 그 인생을 살았는데 하나님은 부러진 그 중심 부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민족의 역사를 만들어 가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입니다.

 

약한 그 부분 속에서 하나님의 민족을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흔들리십니까? 하나님의 방법보다 세상의 방법이 더 커 보입니까? 에서의 400명 앞에서 무력하게 휘청거리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 역전의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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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22:20

20180810일 금요기도회

 

절망 속에도 돌파구는 있다 (정지운 목사)

 

[예레미야 33:1-3]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강대국의 틈에 갇혀서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33장은 이스라엘의 터닝포인트와 같습니다.

 

[예레미야 33:1]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왕의 죄수들 정치범의 수감소에 예레미야가 갇혔습니다. 사방을 봐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돌파구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1. 말씀이 임하면 역전이 시작된다

[예레미야 33:1b]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두 번째 말씀이 있다는 것은 첫 번째 말씀도 있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32:1]

1.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중요한 것은 시위대 뜰에 갇혀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해 주시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3:1]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정말로 암울한 것은 우리를 짓누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감옥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의 독 안에 든 쥐처럼 현실 안에 갇혀서 절망합니다. 그러나 진짜 절망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겁니다.

 

[디모데후서 2:9]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지금 겪고 있는 고난으로 돌파구가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면 역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여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나 3:1]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 인생의 전반전뿐 아니라 후반전에도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지금도 고난당한 당신을 위해 일하신다

[예레미야 33:2]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창세기 1:26]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주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만 하시고 물끄러미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도 고난을 당하신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향해서 큰 그림을 그리십니다. 내가 그린 그림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그림이 보이지 않습니다.

 

[창세기 39:20-21]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요셉이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을 겁니다. 고난이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의 상황, 절망에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5:7]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절망의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 재물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축소시킵니다.

 

3. 부르짖는 기도가 새로운 간증을 만든다

[예레미야 33:3]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역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부르짖어야만 들으시는지 궁금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원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편 18:6]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하나님은 부르짖지 않아도 들으시는 분이시지만 고난의 때에 정확한 주파수를 맞추시기를 원하십니다. 최악으로 몰고 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기도하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민수기 13:28]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은밀한 일이란 단어가 견고한 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 6:20]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부르짖을 때 아무리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의 일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응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간증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모든 것이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일을 펼쳐 가십니다.

 

우리의 인생에 고난이 찾아왔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레미야 51:54]

54. 바벨론으로부터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도다 갈대아 사람의 땅에 큰 파멸의 소리가 들리도다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7]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절망 속에도 돌파구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역전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현장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다시 한 번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간증의 역사가 일어나는 이 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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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5 14:12

20180805일 설교 말씀

 

심판에 보류된 사람들 (박경철 목사)

 

[아모스 7:1-9]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2.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5.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중보기도의 원형

독일 전쟁사에 보면 한 통신병의 처절한 죽음 이야기가 있습니다. 적국에게 포위되어 본부에게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데 통신선이 끊겨서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전선을 연결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약 1미터 정도가 모자랐습니다. 통신병은 전선의 피복을 벗기고 자신의 양손에 묶고 옆에 있던 다른 통신병에게 빨리 전보를 치라고 합니다.

 

마침내 본부에서 연락을 받고 긴급 지원군이 도착하여 부대원 전원이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통신병은 전기에 감전되어 죽어있었습니다. 이 순고한 한 통신병의 죽음이 부대원 전원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 신학에서는 이 통신병의 순고한 죽음을 일컬어 중보기도의 원형이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희생이 모두를 살려낸 것처럼, 한 사람의 중보가 모두를 살려낼 수 있다는 진리를 오늘 우리 가운데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

오늘 본문 아모스서는 북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메뚜기 떼 재앙으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때 아모스가 중보기도하여 하나님은 그 뜻을 거두시고 재앙을 거두십니다.

 

[아모스 7:2-3]

2.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두 번째 불의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금 이스라엘을 향해서 심판과 재앙을 계획하셨지만 이번에도 아모스의 중보기도로 심판을 거두십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두 번이나 심판을 취소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안에서 중요한 두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의인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키는 큰 힘이 있다

[야고보서 5:16b]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출애굽기 32장에서는 심판을 돌이키셨는데 에스겔 22장에서는 심판을 돌이키지 않으십니다. 동일한 상황이었지만 그 심판의 결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에스겔 22:30-31]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유다는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심판을 당합니다. 바로 중보기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중보기도가 한 민족의 역사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돌아온 사람들은 대개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며 믿기 전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 오 할레스비 기도

 

중보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멸망 받을 사람을 구원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 기도하는 자는 절대 패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지쳐 쓰러져있는 사람을 살려내는 역할을 합니다.

 

중보기도는 남도 살리지만 나도 사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1:42a]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예수님은 100% 기도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기도는 100%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중보기도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에 굉장히 기쁨으로 반응하십니다.

 

기도의 힘을 무시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보기도는 영적 기류를 바꿉니다.

 

2. 심판이 보류되었다

아모스의 기도로 메뚜기 떼와 불 심판이 보류되었습니다. 세 번째 다림질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되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재앙을 돌이키시기도 하시지만 완전한 돌이킴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심판하십니다.

 

어느 철학자가 5분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죽여보라고 합니다. 5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소리칩니다.

 

군중에서 이를 보던 한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 철학자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그를 향한 육체의 심판을 잠시 보류해 주셨던 겁니다. 하나님이 곧바로 데려가실 수도 있지만 잠시 보류해주시는 겁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언제 가는 죽고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 죽음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을 자각하는 그 순간 나에게 보류된 심판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어서 주님께 나오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사람에게는 잠시 보류해 주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확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 어떻게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앞으로 나오시기를 간곡히 축원 드립니다.

 

누군가에게는 희소식이 누군가에게는 슬픈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시편 50:15]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 환란에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채 그냥 형식적으로 끌려 나오신 분이 있으실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 동안 그 심판을 얼마 동안 보류해 주실 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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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3 23:03

20180803일 금요기도회

 

하나님을 의식하라 (김철호 목사)

 

[사무엘상 7:3-11]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아무리 이리저리 피해도 결국 하나님께 발견된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창세기 17:1]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신명기 18:13]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모든 시대에 적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사이다와 같이 시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구마처럼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최고의 고구마는 누구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받은 백성이지만 늘 하나님께 같은 죄를 반복하여 지으며 하나님께 마음이 갈 듯 갈듯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펴볼 사람은 사무엘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으로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인생

[사무엘상 7:3]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신랑 신부의 관계와 같이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게 사랑하셨지만 백성들은 변덕스러운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관계는 오래갈 수도 없습니다.

[잠언 4:23]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심장이 하나이듯이 마음도 하나이어야 하는데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을 합리화하는 순간 타락합니다.

 

어느 순간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절대 타협해서도 합리화해서도 안 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순간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말과 행동으로 금방 표출되어 드러납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은 마음의 비율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을 조금씩 줄여간다고 한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한마음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스스로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고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향한다는 것은 마음을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아무리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도 둔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은 일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위하여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야만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혹시라도 두 마음을 품었었다면 하나님을 향한 한마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묻어가는 인생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삶은 묻어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사무엘상 7:8]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어떤 공동체에나 묻어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늘 사무엘에게 묻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8절에는 우리라는 말이 3번이나 나옵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 없습니다.

 

[사무엘상 7:6]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눈앞에 어떤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형식적으로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을 때 기도가 중단됩니다. 사무엘을 향해서 우리를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일대 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저희의 인생이 예수님께 묻어가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저희 모두는 덤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묻어간 인생이라고 언제까지나 묻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을 잊어버리는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묻어가는 인생은 한두 번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위기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묻어가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묻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도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도 응답해 주시지만 그들이 직접 나와 눈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삭줍기 인생

[사무엘상 7:11]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이삭줍기 인생입니다.

 

[사무엘상 7:10]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사무엘이 기도하여 큰 우레가 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호수아 24:12-13]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도 이스라엘 백성의 수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이삭줍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땀 흘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구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서 9:10]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골로새서 1:29]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저와 우리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모습입니다.

 

[이사야 65:23]

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신앙생활에도 성취감이 있습니다. 우리의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해 낼 때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는 해 본 사람이 계속하게 됩니다. 기도의 맛을 한 번 본 사람은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기도의 땀방울을 많이 흘려야 영적인 내공이 쌓이게 됩니다. 수고하지 않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3]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믿음에 대한 수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믿는 것 어렵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때로는 고난도 받고, 상처도 받고, 물질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믿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은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삭줍기 인생은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인생은 이삭줍기 인생을 살아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힘들게 기도했던 사무엘입니다.

 

쉬운 길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쉬운 길은 내가 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어려운 길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만을 남길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무엘상 2:18]

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신앙입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오늘의 기도회를 통해서 나의 시선이 온전히 주님만을 또렷하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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