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215)
설교 말씀 (91)
금요기도회 (68)
말씀 묵상 (3)
Picture (40)
PC-FI (13)
how to clean my pc
how to clean my pc
오디오엔진(Audio Engine) A2 리..
Do what you want
울트라손(Ultrasone) Pro 900,..
골든이어스 리뷰 - 음질편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하는 에펠탑
민이와 별이의 미니어쳐 세상
아주 특별한 발렌타인 깨찰빵 ㅎㅎ
달콤한 인생을 그리는 남자
115,593 Visitors up to today!
Today 4 hit, Yesterday 62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18/07'에 해당되는 글 9건
2018.07.29 13:58

20180729일 설교 말씀

 

내 마음이 눌릴 때 (김은호 목사)

 

[시편 61:1-3]

1.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다윗이 이 시편을 언제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떠난 피난 중에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인생 가운데 가장 처절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에 이 시를 썼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 약해질 때

다윗은 자신이 처해있는 고통적인 상황을 내 마음이 약해질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내 마음이 눌릴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눌린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답답할 때를 말한다.

아타프 쇠약하다, 압도당하다, 수의를 입히다

 

시인은 지금 자신의 마음 상태가 점점점 쇠약해져서 수의를 입고 있는 시체와 같다고 한다.

심장이 멎을 듯 멎을 듯 다급하지만

인생 가운데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심장이 멈출 듯하다.

 

다윗이 당한 일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권을 착탈 하겠다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다윗은 졸지에 왕의 자리에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다윗이 믿고 신뢰했던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략가인 아히도벨이 자신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했다. 그리고 다윗을 향하던 국민의 마음은 이제 압살롬을 향하게 되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아팠겠는가.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눌릴 때가 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생이 꼬일 때가 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을 당하면 화로 인해서 자심의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그러지 않았다.

 

주께 부르짖음

다윗도 우리와 똑같다. 괴로운 일을 당하면 마음이 눌린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이 눌릴 때 주께 부르짖었다.

 

[시편 61:2a]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다윗은 침묵으로 기도하지 않고 큰소리로 반복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했다. 사실 너무나 마음이 눌리면 기도가 안 된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편 5:2]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면서 고난과 역경들을 극복해 왔다.

 

[예레미야 33:3]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성경에는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역대하 32:20]

20.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열왕기상 17: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17:22]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여호와 하나님은 기도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기도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시편 77:1]

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기도의 목소리 보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릴 때 힘 있고 간절하게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 그러나 다윗이 처해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조용히 묵상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에게 다급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오면 어떻게 조용하게 한가하게 묵상하며 기도하겠는가. 그러므로 다급하게 큰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형편을 여러분이 아십니까? 누군가의 기도를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정은 기도의 핵심이고 원동력이다. 소리 내어 부르짖어 기도할 때 열정적인 기도가 될 수 있다” - E.M 바운즈

 

열정 없이 기도하는 것은 전혀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 찰스 스필전 목사

 

다윗은 수많은 고난을 간절히 기도함으로 극복했습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누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마지막에 승리를 노래합니까? 침묵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사야 58:9a]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마음이 눌릴 때 좌절하지 말고 주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땅 끝에서

[시편 61:2a]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다윗은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벼랑 끝에 몰려있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땅 끝은 아무런 희망도, 어떤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인생의 벼랑 끝에서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우리의 마음이 무너질 때 주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 끝에서 주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높은 바위란 대적들이 근접할 수 없는 천해의 요새를 말한다. 표준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 내 힘으로 오를 수 없는 저 바위 위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원수들이 자신을 해하지 못할 가장 안전한 피난처 이심을 말한다.

다윗은 피난생활을 통해 알았다. 어떤 사람도, 어떤 바위굴도 나의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하나님만이 가장 유일한 피난처 이심을 고백한다.

 

[시편 61:3]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시편 18:2]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필요하다. 우리의 원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덤벼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인격, 스펙, 경험, 물질, 친구, 직장, 나의 부모님도 나의 피난처가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산성, 방패, 견고한 망대가 되어주신다.

 

오늘 우리 중에 다윗처럼 마음이 약해지신 분이 계십니까? 어떤 가능성도 보이지 않음으로 마음이 눌린 분이 계신가요? 여러분의 땅 끝 벼랑 끝에 서 계신 분이 계십니까?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주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기도 소리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응답하시길 원하십니다.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8.07.27 22:11

20180727일 금요기도회

 

다른 복음은 없다 (김정만 목사)

 

[갈라디아서 1:6-10]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저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을 해 왔습니다. 된다~ 된다~ 잘 된다!! 당연하지!!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하 하 하~ 하나님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와서는 하나님 믿고 신앙이 있는데 교회 밖에서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 모든 짐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오사리 기도원에 가서 1주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방언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귀신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찬송만 해도 놀라운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교회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전도, 선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를 자랑하고 소개해야 합니다.

 

언제 여러분이 가장 행복합니까?

낚시에서 대어를 잡는데 놓치면 옆 사람이 좋아합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봅니다. 어떻게든 넘어트리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자꾸 안 되게 하려 합니다. 세상에서 남이 안 되게 하려는 것만큼 나쁜 게 없습니다.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십니다. 주님은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시고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내 모든 삶을 인도하십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주님 앞에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오.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인간을 찾아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1. 내 복음관에 정착하자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복음만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 복음이 있다면 어떤 이단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2. 내 교회관에 정착하자

주인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인의식이 확실하면 책임 의식을 가지게 되고 그럴 때에 희생 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내 모든 희생은 하늘나라에 기록되어 집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희생 의식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 와서 엔조이만 하고 가려고 합니다.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3. 내 사명관에 정착하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전도일 줄로 압니다. 전도하시면 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세상일에 관심 갖지 말고 영적인 일에 관심 가지시길 바랍니다. 거룩한 열정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4. 내 목양관에 정착하자

목사와 성도, 성도와 목사의 비전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담임목사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5. 내 가정관에 정착하자

중요한 것은 가정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아내, 남편의 외도가 소돔과 고모라 같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관이 정착되어 있지 않아서입니다. 자녀들이 왜 결혼을 안 할까요? 매일 싸우는 걸 보니 결혼 생각이 안 듭니다. 혼술, 혼잡, 혼밥족이 많습니다. 특히 혼신, 혼자 신앙도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자기 좋은 것만 찾아서 예배를 보니 주관적이 됩니다. 절대로 혼자 신앙생활하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 찾아 의지하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이 있어도 나의 힘이 되시는 주를 사랑하십시오. 문제의 해결 자 되시는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교회로 나가십시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사람 보지 마세요, 문제 보지 마세요, 상황 보지 마세요. 주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기도할 때마다 모든 걸 하나하나 해결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합시다.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8.07.22 16:09

20180722일 설교 말씀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김은호 목사)

 

[시편 31:9-16]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 로맹 롤랑

인생은 고통이다” - 쇼펜하우어

 

철학자들의 말과 종교적인 용어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리고 한 번의 고난과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의 인생도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다윗의 인생 고난의 연속

1. 고통과 근심으로 기력이 쇠하여짐

[시편 31:9]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 때문에 눈과 영혼이 쇠하여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편 6:7]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시편 88:9a]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구약성경에서는 눈을 건강의 척도로 말하고 있다. 인간은 몸과 정신과 영이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한 부분이 무너지면 다른 부분도 영향을 받게 된다.

 

[시편 31:10b]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그 고통과 근심으로 인하여 기력이 약해지고 뼈까지 쇠하여졌다고 말한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만큼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

 

다윗의 인생 고난의 연속

2. 모욕과 비난

[시편 31:11]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대적들로부터 욕을 당하고 잘 알고 있던 이웃, 친구들로부터 모욕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친구들이 자신을 피하여 갔다. 친했던 친구들이 돌변해서 격멸의 대상이 되었다.

 

다윗의 인생 고난의 연속

3. 잊혀진 존재

[시편 31:12]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꼭 죽은 자처럼 여겼다. 과거 다윗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을 따르고 칭송했었는데 이제 사울왕으로부터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니 자신을 깨어진 그릇처럼 여긴다.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고 무시했다.

 

잊혀지는 것만큼 두려움은 없다. 내 자신의 존재가 잊혀질 때에 그것만큼 큰 아픔이 없다.

 

다윗의 인생 고난의 연속

4. 사방의 두려움

[시편 31:13a]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시편 31:13]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많은 무리들이 자신을 비방하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의논하는 것을 보면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있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사방은 자신이 처해 있는 모든 상황을 말한다. 두려움은 죽음과 같은 극심한 공포를 말한다.

 

오늘 우리 중에도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있는 분이 계십니까? 질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창업하여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에게도 사방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다윗에게도 이런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은 놀라운 신앙을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었다. 성경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이런 신앙고백을 했다.

 

[다니엘 3:18]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 신앙이 필요하다. 시대와 주변이 주님을 부정할지라도 여호와여 그러하여도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반전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신앙고백

[시편 31:14]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내가 아무리 고난과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님만을 의지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많은 사람들은 이쯤 되면 자신을 원망하고 우울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믿음의 길에서 떠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하나님이었다.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시편 118: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시편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다윗은 왜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했을까? 그것은 누군가에 배운 것이 아니라 다윗이 만나고 경험했던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 피할 바위, 요새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에 기록된 그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 내가 만나고 경험해야 할 하나님이시다. 공동체로서의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인격적으로는 나의 하나님이셔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무시하고 핍박할지라도 나의 기도에 응답이 없을지라도 여호와여 나는 그러할지라도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가졌던 아름다운 신앙이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시편 31:15a]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자신의 앞날이 원수들의 손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다.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다.

 

[역대상 29:11]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역대상 29:12]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사실을 믿는다면 주께 붙들림바 되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다윗은 신앙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도에 무릎을 꿇었다.

[시편 31:15]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를 건져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여호와를 불렀사오니다윗은 믿기만 하고 끝내지 않았다. 기도에 무릎을 꿇었다. 나의 앞날이 주께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은 기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우리도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다고 믿는다면 기도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내가 주님만을 의지하겠습니다. 주를 나를 구원하소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여러분의 삶에 비추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8.07.20 22:42

20180720일 금요기도회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김은호 목사)

 

[시편 16:2-3]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1절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신앙고백이 참 중요하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자신을 지켜주실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줄 수 없었다. 다윗은 기도만 하지 않고 행동했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와 고백까지는 하는데 행동하지 않는다. 주님께 피해야 한다. 다윗은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 주님께 피하는 가장 확실한 증표는 순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입술로는 주께 피한다고 하지만 순종은 없다.

 

정말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켜주심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편 16:2]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지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라고 고백한다. 다윗의 신앙고백의 특징은 언제나 나의 하나님이다.

 

[시편 31:14b]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이것은 다윗의 체험적 고백이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늘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면 이것은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고백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신분이 바뀌게 된다. 신분으로써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나는 그의 자녀가 된다. 예수를 믿으면 신분의 변화가 가장 먼저 온다.

 

사역적으로 보면 관계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우리는 그의 종이 된다.

 

다윗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알았다. 고백만 하고 끝내지 않았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하지 않고 끊임없이 물었다. 전쟁에 나갈 시기와 때를 물었다. 다윗은 적군의 상황을 묻지 않았다. 적군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윗은 언제나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이 전쟁이 하나님의 뜻인지 물었다. 그리고 때를 물었다. 우리는 때를 묻지 않아서 실패할 때가 많다.

 

정말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면 물어야 한다. 묻지 않고 행함은 죄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우리도 주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 모셔야 한다.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도 그 물음에 답을 주신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물음에 답을 주신다.

 

[시편 16:2b]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 물질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보다 더 깊은 신앙의 고백이 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사람들은 열매를 가지고는 감사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 열매만이 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이 나의 복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복이다. 내가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복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감사하면 그 소유를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복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복은 그 열매가 아니라 주님 자체가 복이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복으로 여기는 신앙을 가졌다. 다윗은 젊은 날에 엄청난 인기와 권력,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오직 주님만이 나의 복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시편 6:2]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다윗도 건강만 회복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깨달았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게 저주받은 사람,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처럼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들을 존귀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이라는 말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도 있다는 말이다. 천국의 백성들이 있다. 그런데 하늘의 성도들과 땅의 성도들은 차이가 많다.

 

하늘의 성도들은 영적 전쟁이 없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을 승리교회라고 말한다.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전투교회라고 말한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끊임없이 우리 안의 죗성과 싸워야 한다. 악한 영의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다윗은 말한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라고 한다. 왜 우리가 존귀한 자들일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인데 내가 그분을 믿고 존귀한 자가 된 것이다.

 

[고린도후서 4:7]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순간 주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가장 볼품없는 그릇이 질그릇이다. 그런데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졌다. 내 인생의 존재가치는 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그랬다. 외모, 실력, 스펙 이런 것들로 가치가 결정됐었다. 예수를 믿은 후에는 그릇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릇에 담겨진 것에 따라서 달라진다. 내 안에 보배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보배이신 주님에 의해서 내 가치가 결정된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의해서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당당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을 존귀하다고 하지 않는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소유한 자가 하나님의 눈에는 존귀한 자다.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존귀한 자로 보아야 한다.

 

[시편 8:4]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5]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이 우주에 비해서 볼품없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저 큰 우주보다도 나를 마음속 깊이 돌보시냐고 한다. 하나님은 내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일지라도 나를 생각하시면서 곤고 하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재를 나눌 수 있는 건 우리 밖에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개는 개같이 소는 소같이 사람은 하나님같이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에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어주셨다.

 

우리의 존재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가치 있게 산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기쁨이고 존귀한 자들로 보았다. 하나님 역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스바냐나 3:17]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자식은 하는 것 없어도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기쁨을 준다. 관계 때문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관계 때문에 기쁘신 거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관계다. 십자가의 해산의 고통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누군가의 하나님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이 내게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복이 아닙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8.07.15 15:08

20180715일 설교 말씀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12-16]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리의 잘못과 실수로 받는 고난과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이 있다.

 

[베드로전서 4:15]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우리의 잘못과 실수로 고난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드러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말한다. 우리는 내 잘못과 실수가 아닌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을 때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

 

고난에 대한 태도

1. 이상히 여기지 말라

[베드로전서 4:12]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낯선 사람에서 유래된 말이다. 고난을 친정어머니가 오는 것처럼 반겨 맞으라는 것이다.

 

고난에 대한 태도

2.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3]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즐거워하라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고난이 다가오면 그 고난을 존중해주고 기뻐 날뛰라는 것이다.

 

고난에 대한 태도

3. 부끄러워 말라

[베드로전서 4:16a]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세상은 고난을 실패와 수치로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이라면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1.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13a]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주님께서 당신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이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표현했다.

 

[골로새서 1:24]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가 나의 잘못과 실수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고 하면 그것은 저주나 실패가 아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여하다는 것은 혈연으로 맺어서 떨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연합체,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 주님이 받으신 고난이 새삼 느껴진다. 그 마음이 전달되어 진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14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시고 나온 범브란트 목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특이한 황홀경과 같은 기쁨을 맛보며 살았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주님과 관계가 맺어졌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받는 고난을 주님이 받는 고난과 동일하게 생각하신다.

 

[사도행전 9:4b]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도행전 9:5a]

주여 누구시니이까

 

[사도행전 9:5b]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박해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를 박해한 것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였냐고 하신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그러므로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2. 영광의 날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13]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는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를 말한다. 주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재림하신다. 그날에 주님의 고난에 참여한 자들이 어린아이들처럼 기뻐하며 날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고 영광만을 받으려고 한다. 그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 사람들은 고난을 아주 거창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런 것만이 고난이 아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을 믿음으로 받는 박해와 멸시도 고난이다. 창조의 질서를 어기는 동성애는 죄라고 말하는 것으로 인해서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것도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을 말할 때마다 영광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다.

 

[로마서 8:17b]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요한복음 15:20]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과거 예수님을 미워하고 박해했던 세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은 주는 것 없이 우리를 미워한다. 신앙생활하면서 일부러 고난을 자청하지는 말되, 그 고난이 다가온다면 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로마서 8:18]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장차 주님이 오셔서 내가 누리게 될 영광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돈 때문에 신앙에 양심을 팔지 마시고, 가난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질병 때문에 하나님 원망하지 말고, 장차 내가 누리게 될 영광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교해 보시면 그 영광의 소망 때문에 고난을 이겨내면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3.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14]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영광의 영은 성령님을 말한다. 지금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데 주님이 방관하시면 말이 되겠는가? 반드시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그 고난받는 사람 위에 함께 하신다. 같이 아파하시고 울어주시고 힘도 주시고 순교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마가복음 13:11]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고난받는 자에게는 그만큼 성령님이 강력하게 임하신다.

 

[사도행전 6:15]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왜 돌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이 천사 같았을까? 그것은 영광의 영 곧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령님을 깊이 경험하려면 고난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성령이 충만하면 고난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고난을 통과할 때에 성령을 만날 수 있다. 고난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다.

 

영광의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사는 날 동안 정말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실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자들이 죽음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4.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고난은 영광의 순간이 된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복으로 말하고 영광으로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다.

 

[다니엘 3:2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같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출세하고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드러낼 수 있는 때는 고난의 때이다.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고난 가운데 당당하고 즐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당신을 보니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것입니다.

 

이 고난이 나로 하여금 다시 오실 주님의 영광의 날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이 고난이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이 고난이 힘들고 어렵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8.07.13 22:33

20180713일 금요기도회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김은호 목사)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이 시편 16편은 다윗이 썼다. 황금 시, 금언 시라고 부른다. 그만큼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있다. 다윗은 이 시를 가장 어려울 때 썼다. 사울 왕으로부터 쫓겨 다니면서 쓴 시이다.

 

어려울 때를 잘 견디면 금언이 될 때가 많다. 잘 나갈 때 번영의 때에 우리가 얻는 교훈보다는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이 훨씬 많다. 다윗이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은 아주 어려운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노래했다. 다윗의 신앙이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최고의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을 때였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 시를 많이 섰다. 다윗의 인생 가운데 고난이 없었다면 이런 주옥같은 시편은 나오지 않았다.

 

다윗은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다윗만이 아니라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완전한 자는 없다. 모세도 물이 없어 참지 못하는 백성을 향해 참지 못하고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쳤다. 그 일로 인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시켰다.

 

다윗도 살인죄와 간음 죄를 지었다. 그리고 인구조사를 했다. 하나님은 동기를 보신다. 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고 했냐를 보셨다. 자신의 막강한 군사력을 드러내 보이려고 했었다. 그리고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하니까 원수의 나라 블레셋 땅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신앙의 국경선을 넘어선 안됐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신앙의 국경선이 있다. 그런데 다윗은 너무 힘드니까 신앙의 국경선을 넘어 블레셋 땅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신분이 들통났다. 그래서 미친 사람으로 연기를 했다.

 

[사무엘상 21:13]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신앙의 국경선을 넘으면 이렇게 비굴하고 초라해진다.

 

[사무엘상 21:14]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아기스 왕은 연기를 하는 다윗을 보고 진짜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아기스 왕이 왜 그렇게 순순히 속아 넘어갔겠는가? 다윗이 연기를 잘 한 것이 아니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완전한 사람은 없다. 완벽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여기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엘로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지금 다윗이 자기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았기 때문에 나를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무서운 꿈을 꾸면 아빠에게 달려온다. 아빠가 지켜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신앙의 고백이 중요하다. 기도의 내용보다는 대상이 중요하다. 내가 기도하는 대상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면 내용이 달라지 게 된다. 내가 예배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한다. 다윗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았기에 나를 지켜달라고 했다.

 

사람은 나를 지켜줄 수 없다. 그 나라의 최고의 권력자인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데 어떤 사람이 지켜줄 수 있었겠는가. 다윗은 알았다. 하나님만이 나를 지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우리가 언제 이런 기도를 드리는가. 우리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는 이런 기도를 못 드린다. 세상의 줄이 끊어질 때 비로써 그때야 이런 기도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만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인생의 줄을 끊으실 때가 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다윗은 기도하고 행동이 나왔다. 우리는 기도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윗은 기도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갔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많은 성도들이 지켜달라고 기도만 한다. 주님께 피해야 한다. 피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가지 지켜달라고 기도하는데 순종이 없다.

 

다윗이 이 시를 쓸 때에 자신을 따르는 400~600명과 함께 있었다. 혼자 피하여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원통함을 당한 자, 사회적으로 약자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했다. 그 많은 사람들과 피하여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들을 사랑하고 잘 돌보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은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셨다. 우리도 다윗처럼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오는 동안 언제나 위험은 찾아온다. 엄밀히 말하면 안전한 곳은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는냐가 중요하다. 내가 주님 안에 있는가 주님께 피하고 있는냐가 중요하다.

 

다윗은 늘 여호와를 자신의 피난처로 삼아서 주께 피하는 삶을 살아왔다.

 

[시편 17:7]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다윗은 지금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내가 당신께 피하는데 까닭 없이 나를 죽이려는 자를 당신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사 주님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 달라고 한다. 기이한 사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측량될 수 없는 사랑을 말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이한 사랑이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도 기이한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로마서 5:8]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6]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로마서 5:10a]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다윗이 말하는 기이한 사랑은 문맥적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은총의 날개로 품어주시는 것이다.

 

[시편 17:8]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사람은 바람만 불어도 가장 본능적으로 깜빡거리면서 자신의 눈동자를 지키려고 한다. 눈동자가 히브리어로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을 가까이 가서 쳐다보면 그 사람의 형상이 눈동자에 비쳐서 작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에 우리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켜주신 것은 다윗만이 아니다.

 

[신명기 32:10]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모세가 한 고백이다. 광야에서 백성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셨다고 한다. 광야는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없다. 길이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낯과 밤의 기온차가 크다. 물이 없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낯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다.

 

지금 우리도 구원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광야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여 피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눈동자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치는 자는 하나님을 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을 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윗을 대적하는 사람이 살아남지 못한 이유가 다윗이 하나님의 눈동자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

 

[사무엘상 25:29a]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아비가엘은 다윗이 하나님의 생명 싸개 안에 있다는 것을 보았다. 오늘 이 밤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제사장의 축복

[민수기 6:24]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악한 세력만이 아니고 각종 질병과 전쟁으로부터 보호를 의미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하다. 폭력과 음란의 영에게 노출되어 있다. 자녀들이 잘 되면 뭐 하겠는가. 보호받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다만 악에게서 지켜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시편 127:1]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가 수고하여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한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건강, 물질, 자녀들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8.07.08 15:39

20180708일 설교 말씀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즐거워하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12-16]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난에 대한 생각

여러분은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난을 좋아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은 내 인생에 저주라고까지 생각하며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사주팔자, 운세를 보기도 하고 양심마저 버리고 비굴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종교를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0]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디모데후서 3:12]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14:22b]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전서 4:13a]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4a]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이렇게 성경은 고난에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복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고난을 복이라고 하지 않는다.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반드시 받아야 할 고난과 받지 말아야 할 고난이 있다.

[베드로전서 4:15]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인한 고난

살인이나 도둑질은 십계명 중 육계명과 팔계명에 속한 중범죄이다. 그다음 악행은 중범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할 때 나쁘다고 얘기하는 범죄를 말한다. 교통법규 위반, 거짓말, 약속 위반 등 사회적 중범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할 때 이건 안된다고 말하는 나쁜 행동을 말한다.

 

그리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타인을 위해 감독관의 입장에 서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이 감독관처럼 되어서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해서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일로 인해서 고난을 받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고난을 당했는데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고난으로 착각을 하며 억울해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고난은 그런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성도들을 보면 예수가 생각나서 그리스도인, 우리말로 예수쟁이라고 불렀다. 존경의 의미가 아니라 경멸의 의미로 불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은 내가 그리스도를 내 삶에 들어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것

 

내 실수로 받는 고난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내가 받는 고난을 말한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으면 굉장히 혼란스러워한다. 그것은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고난을 한 자루에 집어넣고는 흔들어 섞어버렸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고난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 케네스 해긴 그리스도인의 고난

 

이 고난이 나의 잘 못과 실수로 주어진 고난인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고난인지 구별을 해야 하는데 그냥 그 고난 자체로만 대해 버린다. 이 고난을 구별하지 못하면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애매모호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다가왔을 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에 대한 태도

1. 이상히 여기지 말라

[베드로전서 4:12]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상상을 초월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히브리서 11:36-38]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래서 베드로는 불 시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한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낯선 사람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해하려는 적처럼 대하지 말고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 친구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불 시험이 나를 연단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불 시험을 막아 주실 수 있다. 하지만 그 불 시험을 막지 않으신다.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서이다. 성도는 이런 불 시험을 받으면서 의심의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모난 부분이 깎여 지면서 순결해진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불 시험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려 오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나를 실패하게 하거나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를 연단해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과수의 나무를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다. 하나님도 우리를 대하실 때 우리를 연단하여 단단히 세우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니 지금 당하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친정어머니가 오실 때 빈손으로 오시지 않듯이 고난도 마찬가지다. 그 고난의 보따리 속에는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것이 참 많이 들어 있다.

 

고난은 주님 주시는 변장된 축복이다

 

성경을 보면 불 시험당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다윗이 있다. 17년을 사울 왕으로부터 쫓겨 다녔다. 수없이 오랜 생활 동안 굶주리면서 불편한 생활을 했다. 자신으로 인해서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했다.

 

[시편 119:71a]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또 한 사람 욥이 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모든 재산 그리고 건강을 잃었다.

 

[욥기 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절대로 이상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고난에 대한 태도

2.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3]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즐거워하라는 것이 현재 능동형으로 되어 있다. 고대 사회에서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말과 같이 사용되었다. 인사하듯이 반겨 맞으라는 것이다. 고난이 다가오게 되면은 그 고난을 굉장히 존중해 주면서 너무나 기뻐서 날뛰라는 것이다.

 

고난이 다가왔을 때 이렇게 기뻐할 수 있겠는가? 죗성을 가진 우리 인간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편지를 쓴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하고 주님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이렇게 반응했다.

[마태복음 16:22]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렇게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님이 받으시는 고난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순절의 성령 충만을 받고 난 후에는 고난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사도행전 5:41]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고난을 즐거워하며 기뻐하게 되었다.

 

예수님도 고난을 기뻐하신 적이 없다.

[마태복음 26:38]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모든 사람은 고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난을 두려워한다.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해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

 

고난에 대한 태도

3. 부끄러워 말라

[베드로전서 4:16a]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실패, 수치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이라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다니는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분이 계신다.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교회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 역시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고난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용하신 그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 8:38]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자녀로 삼으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그 주님을 부끄러워한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실수로 인한 고난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이 다가오면 즐거워하며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8.07.06 22:25

20180706일 금요기도회

 

페르시아 부흥의 열쇠 (이다윗 선교사)

 

[창세기 22:16-17]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저는 페르시아 A국에서 온 이다윗 이라고 합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곧 현장으로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는 시험을 통해 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들어가 약 1년이 지난 후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피를 토하며 결핵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개에게 물렸지만 약이 없어 치료할 수가 없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를 붙잡고 부르짖어 엄마와 동생이 기도했습니다. 아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년간 지내온 추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아이였기에 데려가셔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방 여행을 다녀와서 이 소식을 듣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의사는 멀쩡한 아이를 왜 데려왔냐고 합니다. 이 아이는 결핵이 걸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주님은 결핵의 흔적도 없이 아주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페르시아 부흥의 열쇠라고 하는 아프가니스탄은 사실상 잠겨 있는 땅입니다. 한국과 같은 하늘, 같은 집이지만 다른 종교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부르카라는 것을 입고 다니며 남편만이 얼굴을 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르카를 입으면 옆을 볼 수도 없습니다.

 

하루는 텔레반에게 협박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올라와서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3일 후에 비전스쿨을 섬겨야 할 일이 있어 버티기 위해서 옆 마을로 대피했습니다. 3일 후 비전스쿨이 시작되었고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자녀와 아이의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여 중국 복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 회개하고 주님 앞에 일어섰습니다.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나갔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전도를 나갔습니다. 열흘 후에 돌아왔는데 모두 기쁨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찰에 쫓겨나고, 맞고 핍받 받았지만 복음을 전했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란은 8천만 명 중에서 기독교인이 700백만 명 정도 있습니다. 이란은 이제 더 이상 선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부흥은 공짜가 아닙니다. 순교의 피가 있었습니다. 순교의 피가 흘려질 때 이란 교회의 부흥이 이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논쟁만 될 뿐 통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하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할 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돌을 던지고 핍박을 해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한 명 한 명 전하다 보면 200명 중 한 명을 궁금해하며 돌아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청년은 청년이 성인은 성인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10년 넘게 문이 막혀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땅에 주님께서 문을 열어 주십시오. 죽음 앞에서 십자가의 보혈이 살아 역사하시는 그런 땅입니다. 주님께서 이삭을 받치라는 약속을 아브라함이 지켰을 때 주님은 대적의 문을 여신다는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 따라서 결단하시고 헌신하여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8.07.01 13:17

20180701일 설교 말씀

 

이렇게 서로 사랑하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9-11]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권면했다.

1. 기도하라

[베드로전서 4:7]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보초를 서는 군인처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절제하면서 기도하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 삶이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고난과 핍박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직분과 신앙 연수를 자랑하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은 운동선수가 결승선이 보여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열렬히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질수록 더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사랑은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고 덮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덮어짐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허물이 보이면 정죄하지 말고 덮어주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기도로 호흡하고 사랑으로 덮어야 한다. 이 말은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사랑은 사람과의 관계를 말한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관계가 중요하다.

 

오늘은 이렇게 사랑하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우리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라

[베드로전서 4:9]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대접하는 것이 곧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대접한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필록세노스라고 하는데

필로스’(사랑) + ‘크세노스’(나그네)

대접하라는 말은 나그네에게 사랑하라는 말이다.

 

공동 번역에서는 이 말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여러분은 모두 나그네들이니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극진히 대접하십시오

 

고대에는 숙박시설이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했다. 성경을 보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다.

 

[마태복음 25:35]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때의 심판에 기준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로마서 12:13]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네로 황제의 핍박을 피해 여기저기 피해 살고 있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집과 가정을 개방해서 잘 대접해 드렸다.

 

그런데 자신의 집을 오픈하고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래서 대접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한다.

 

[베드로전서 4:9]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왜 우리가 원망 없이 대접을 해야 하는가?

첫째, 원망 없이 대접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원망 없이 대접하는 것을 잊지 않으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10:42]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는다. - 존 웨슬리

 

내가 지금 봉사하면 당장은 고생과 손해가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이루어진 봉사와 섬김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잊지 않고 복을 주신다.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이 심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보고 자라는 여러분의 자녀들도 누군가를 대접하고 섬기는 자로 살게 됩니다.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베드로전서 4:10]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허락해 주셨다. 만약에 다 동일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은 삭막해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서로 다른 달란트를 주셨다.

 

은사를 주신 이유는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봉사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고 봉사하게 하시기 위해서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이다.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청기기란 오이코노모스관리자라는 뜻이다. 물질과 시간의 원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물질과 시간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은사도 하나님이 주셨다. 그 은사를 따라서 봉사를 하되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온전하게 사용해야 한다.

 

은사를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청지기이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통해 선한 청지기처럼 봉사해야 한다. 자기희생이 곧 봉사다.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절대로 섬김의 삶을 살 수 가없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따라서 섬김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섬김의 자세

1.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말하라

[베드로전서 4:11a]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말로 하는 섬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랄레이’() :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

로기오’() :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때 사용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 할 때는 자신의 사상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서 전해야 한다. 말의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처럼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전해야 한다.

 

섬김의 자세

2.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라

[베드로전서 4:11b]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봉사하는 것 역시 내 힘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 내가 지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열심으로만 하다 보면 선을 행하다가도 낙심이 될 때가 있다.

 

하나님의 공급하는 힘으로 한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을 말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잘 알고 계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오셨다.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으려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해져야 한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전서 4:11c]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섬김의 목적

섬김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그 목적하나만 가지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봉사하는 분들 가운데는 자신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고 힘과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나를 알리기 위해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0: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성도 여러분 더 늙고 병들기 전에, 지금 있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봉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힘이 있을 때 주님의 나라와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만 받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다 보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누군가를 열심히 섬기는 삶을 살다 보면 인생의 기쁨을 알게 된다. 인생의 보람과 행복은 얼마나 내가 베풀고 섬기며 사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내가 얼마나 베풀며 살고 있는가, 얼마나 흘러 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가, 얼마나 섬기는 삶을 살고 있느가를 묻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주님의 기쁨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