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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23:05

20180629일 금요기도회

 

하나님의 손 (안재우 소장)

 

[이사야 41: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복화술사를 만나기는 대한민국에서는 힘듭니다. 복화술은 입술을 쓰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소리를 던지는 예술입니다.

 

저는 복화술을 한지 25년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에 복화술을 시작할 때는 학교, ,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미국에 보니 책이 있어서 10년 동안 독학을 하여 세계적인 복화술사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 놀이터는 굿판이었습니다. 이모가 무당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전도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 아이가 전도하지 못하게 때리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교회를 가고 싶어졌습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전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제가 교회를 내 발로 혼자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처음 나간 교회가 너무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복화술이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기도굴에서 기도하는데 사진 한 장이 보입니다. 큰 인형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25년 후 2009년도에 한국 최초로 복화술 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때 프로필 사진을 찍자고 기획자를 따라갔는데 인형을 들고 웃으며 찍었습니다. 똑같은 모습으로 제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복화술이 제가 좋아서 하는 줄 알았습니다. 내 실력이 좋와서 이 자리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음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이 재능을 가지고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을 전하는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공연을 보시기 바랍니다.

 

*공연은 아래 화면의 플레이버튼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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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5:44

20180624일 설교 말씀

 

기도로 호흡하고 사랑으로 덮으라 (김은호 목사)

 

[베드로전서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모든 일에는 때와 기한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도 말세, 지구 종말을 얘기하고 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가 말하는 만물의 마지막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여 이루어질 심판과 우주적 종말을 말한다.

 

성경은 예언과 성취로 되어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456회나 나온다.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초림보다도 재림이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다시 오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6:27]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러면 예수님이 심판 주러 다시 오실 때에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베드로후서 3:10]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마태복음 24:29]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하늘의 권능들은 그동안 사람들을 미혹했던 영들을 말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2,000년 전에 그러한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 마지막이 훨씬 더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어쩌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인생에 영원한 하루는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도하라

[베드로전서 4:7]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군인이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초를 서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한다. 절제에 기초한 깨어있는 정신을 근신이라고 말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는 것도, 운동도, 여가 생활도, 수다 떠는 것도, 모임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욕을 따라 다 살다 보면 언제 기도할 수 있겠는가?

 

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1. 우리의 삶이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5:8]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영적 전쟁에는 싸우는 대적이 있다. 바로 원수 마귀다. 마귀는 졸지도 않고 계속해서 두르 다니며 무너트릴 가정과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제자들은 모두 잠들었지만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잠들지 않았다. 사탄은 우리가 삶에 안주해서 삶에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든다.

 

[누가복음 18:8b]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 다시 오실 때가 되면 믿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는 사람이다. 불가 2~30년 전에는 깊은 산골짜기에 기도의 소리가 울려 퍼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도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2.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핍박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성도들은 네로 황제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었다. 그 핍박 앞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베드로는 그러한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다.

 

[베드로전서 4:12-13]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베드로전서 4:16]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런데 누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결론은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는 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전략을 짜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전략과 계획을 짜는 것보다 기도가 먼저다.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먼저다. 누군가를 향해서 비난과 야유를 퍼 붓는 것보다 기도가 먼저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에 무릎을 꿇으면 내 마음에 평안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자는 정체성이 분명하다.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해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따지지 않는다.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누가 최후의 승리를 노래하던가? 돈 있는 사람?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 아니다. 기도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마지막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12]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도바울도 말한다.

[디모데후서 3:1-2a]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자기 밖에 모르고 돈을 사랑한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특징이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오직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삶을 사는 것은 죄다.

 

베드로는 기도를 먼저 얘기하고 사랑을 말했다. 그것은 결국 기도하는 자 만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기도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런데 내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오는 사람, 아주 껄끄러운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기도하는 자만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기도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기도가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기도를 많이 했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 기도하고 난 후에 나는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고린도전서 13: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아주 열렬히 깊게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운동선수가 긴장된 마음으로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과 같다. 이만하면 되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더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핍박, 고난이 더 깊을수록 더 열렬히 깊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한다. 처음에는 열렬히 뜨겁게 사랑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식어간다. 가정에 문제, 직장의 문제가 생겼는가? 서로를 향해서 허물을 들추어내고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와도 서로 합력하여 사랑하면 그 문제를 다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이 무엇일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다.

[잠언 10:12]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사랑은 덮어주는 것이다. 까발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장님이 되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허물이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사랑이 식어지면 죄와 허물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모른다.

 

그래서 마음은 현미경이 되어 버린다. 현미경으로 보게 되면 만질 것, 먹을 것이 없다. 마찬가지다. 현미경으로 사람을 보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보게 되면 허물이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그 보혈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가려주셨기 때문이다.

 

[시편 32:1]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물론 죄를 덮어준다는 것은 불의를 눈 감아 준다는 것이 아니다. 연약하여 넘어진 것을 덮어준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죽을 때 자기가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지 않고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죽는다.” - 토니 캄폴로니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러므로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

 

성도 여러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하루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이 우리의 인생에 마지막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한마디로 하면 마지막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도로 호흡하고 사랑으로 덮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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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23:04

20180622일 금요기도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김은호 목사)

 

[누가복음 5:20-26]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중에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가 있었다. 그들은 은혜를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기위해서 모였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환난으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주 예수를 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돌아왔다. 교회의 부흥은 프로그램과 방법이 아니다. 예수님을 전해서 만나고 경배해야 한다.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

[누가복음 5:17b]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를 받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심으로 시작하셨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역하셨다. 하물며 죄 많은 우리가 어찌 성령의 충만함 없이 주의 일을 감당하겠는가.

 

[누가복음 5:18]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중풍병자는 움직일 수 없는 중증 환자였다. 그 친구들은 침상째 메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고 그 중풍병자를 침상 째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려놓았다.

 

[누가복음 5:19]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현장을 멈추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설교를 방해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누가복음 5:20]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언제나 믿음을 먼저 보신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믿음이다

우리는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 파도, 문제를 먼저 본다. 언제나 우리는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문제를 먼저 본다. 그러나 주님은 문제를 먼저 보지 않으신다. 우리 안에 믿음이 있는지를 먼저 보신다.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신다.

 

[마태복음 15:28]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9:29]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마가복음 5:34]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을 따라 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고쳐주셨다.

 

[히브리서 11:6a]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교회 안에서 중직자를 세울 때도 그 사람의 믿음을 봐야 한다. 그런데 그 믿음의 척도가 물질이다. 그래서 주님은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다. 십일조를 드린다, 안 드린다의 문제는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 와의 싸움이다. 주님인가? 만몬인가?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믿음을 보십니다.

 

[야고보서 2:18]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믿음은 관념이 아니다. 철학이 아니다. 믿음은 실제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숨길 수 없다. 여러분은 어떻게 여러분의 믿음을 주님께 보일 수 있나요?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기도하는 것도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동역자

침상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는 네 명의 친구들 때문에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다. 여러분의 부모나 자녀라고 할지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도 쉽지 않은 일을 이 네 사람의 친구는 했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목자이시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 나와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하다. 바울, 다니엘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동역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로의 짐을 함께 질 수 있는 진정한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5:20]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누가복음 5:21]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는 충격을 받았다.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는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데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포했다. 어떻게 인간이 네가 죄를 사할 수 있냐는 말이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죄라고 생각했다.

 

[누가복음 5:22]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생각도 아십니다. 은밀한 가운데 짓는 죄도 알고 계시고, 은밀하게 하는 봉사도 알고 계신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은 다 아신다. 속상해할 필요 없다.

 

[누가복음 5:23]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빠르게 예수님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생각해 냈다. 일어나 걸으라는 기적은 행하지 못하니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죄 사함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검증이 필요 없으나 일어나 걸으라는 것은 당장 확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예수님은 치유보다 죄 사함을 먼저 선포하셨을까? 그것은 지금 이 중풍병자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우리의 생각은 질병 가운데서 고침 받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질병 가운데서 고침 받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영원히 잘 되는 것이다. 우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내 자녀가 성적이 오르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를 구할 때 우선순위가 잘 못되었다.

 

[누가복음 5:24]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누가복음 5:25]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예수님이 말씀하시자마자 곧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전신마비 중풍병 환자가 일어나 걷는 게 아니라 자기의 침상을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은 왜 이 중풍병자를 고치셨을까?

 

[누가복음 5:24a]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입증해 보이셨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누가복음 5:26]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지금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게 되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 보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는 것이 더 신비한 일이다. 나의 그 많은 죄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전능하시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었다는 그 한 가지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죄가 예수를 믿음으로 사함을 받는 것은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최고의 일은 내가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안에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놀라움과 거룩한 두려움이 있냐는 것이다.

 

오늘 그 감격이 없다면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 안에 다시 한 번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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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17:34

20180617일 설교 말씀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라 (김은호 목사)

 

[예레미야 29:7-13]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서 완전한 핵폐기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단계적으로 비핵화가 이루어지고 북한이 개방되고 북한에서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빌론의 평안을 구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레미야의 편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많은 하나님의 사람은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하며 정체성마저도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편지를 쓰게 하셔서 그 편지를 통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생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다.

 

바벨론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

[예레미야 29:7a]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바빌론은 자신의 나라를 여러 차례 침공하고 성전을 약탈하고 불에 태운 원수의 나라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벨론은 타도의 대상이었다.

[시편 137:1]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백성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시편 137:8-9]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바벨론이 우리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 약 1,500km4개월 정도 걸어서 끌려갔다. 바벨론의 군인들은 힘들어 우는 아이를 바위에 내쳤다. 그런 모습을 보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겠는가? 북한은 지구상에서 기독교를 가장 탄압하는 국가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북한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면 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을 힘들게 한 기업이나 가정, 어떤 사람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한다면 기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해야 한다. 신앙생활은 내 이념과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마태복음 26:39b]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신앙생활은 내 뜻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왜 바벨론 성읍이 평안을 구해야 하는가?

1. 그 성읍이 평안해야 나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9:7b]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하나님의 명령은 엄밀하게 따지면 바벨론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이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용서는 너무나 힘들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자를 위한 용서는 죽음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하신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왜냐하면 용서를 해야 내가 살고 용서를 해야 사탄이 나와 내 가정을 공격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를 품고 있으면 사탄이 공격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힘들지만 용서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10:5]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우리는 어느 집에를 가던지 누구를 만나던지 기도를 해야 한다.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이 사람이 평안할지어다. 라고 기도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 바벨론 성읍이 평안을 구해야 하는가?

2. 평안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9:11a]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불안, 두려움이 아니다. 평안이다. 하나님의 뜻은 평안이다.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난이 면제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평안이 없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평안이다.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유다 백성들은 지금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을 당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와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해야만 했다.

 

바벨론의 70년 포로생활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70년으로 정하셨을까? 그것은 가장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실 때 징계의 기간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신다. 정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징계하신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징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를 보면 그 내용이 있다.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크기와 길이가 있다.

 

징계가 가볍다면 죄를 범상히 여긴다. 징계가 너무 크다면 영원히 낙심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그 죄와 관계된 징계를 주신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내린 징계는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었다. 하나님은 70년 징계 기간이 끝났을 때에 돌아오게 하셨고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런데 2020년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에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적인 관점,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보게 되면 625전쟁은 우상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여러 곳에서 만일 너희가 우상숭배를 하면 반드시 징계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한국교회 안에 이런 일이 있었다. 193899일 장로교 27차 총회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평양의 서문밖교회에서 있었다. 그 총회는 일본이 강요한 신사참배가 우상숭배가 아닌 국가 행사라고 결의를 했다. 많은 성도와 목사님들이 우상숭배라 하여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총회는 우상숭배를 결의하고 교회가 신사참배에 앞장섰다.

 

그 후 정확히 10년 후 194899일에 평양에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하나님은 2년간의 기회를 주셨지만 한국교회는 회개하지 않았고 625전쟁이 일어났다. 유물론 사상을 가진 공산정권은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북한 땅에 세워졌던 3,500여 교회가 흔적도 없이 문을 닫아야 했다. 1907년 평양에 대부흥운동이 있었다. 그 산실인 장대현 교회가 세워졌던 곳에 주체사상의 총 본산지인 만수대가 들어섰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졌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우상 앞에 절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20년이 되면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바벨론의 70년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 625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2020년이 되는 해에 우리 조국에도 이런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예레미야 29:12]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내가 그렇게 하겠지만 그래도 내게로 와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에스겔 36:36b]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되면 그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에스겔 36:37a]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분명히 약속하셨지만 그래도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도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부르짖어 기도하라

[예레미야 29:12a]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한 기도를 말한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요, 불이 붙지 않은 불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 세네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평범하게 기도하지 말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내게로 와서 기도하라

[예레미야 29:12b]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이것은 회개와 관련되어 있다. 범죄 하여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인데 그냥 기도하지 말고 그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회개하고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하셨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온 마음으로 기도하라

[예레미야 29:13]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온 마음은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의심을 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확신이지 확률이 아니다.

 

[예레미야 29:13]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간절히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경험해야 한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감격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때이다.

우리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이 평화적 분위기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몰아내고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오늘부터라도 간절하게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625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2020년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운명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국의 운명 역시 기도하는 여러분의 무릎에 달려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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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 23:10

20180615일 금요기도회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김은호 목사)

 

[누가복음 5:17-20]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오늘 본문은 우리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를 고치신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아주 껄끄러운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끊임없이 자신들의 잣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정죄하는 이중인격의 사람들이었다.

 

[마태복음 12:34]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예수님이 오죽하면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겠는가.

 

[누가복음 11:39]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겉모습과 많이 달랐다.

 

[누가복음 11:43]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누가복음 11:52]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53-54]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려는 겸손함으로 앉아있지 않았다. 예수님을 조사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와서 앉아있었다.

 

설교하다 보면 정말 설교하기 싫은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 신학교에서 교수들과 학생들 앞에서는 부담스럽다. 얼마나 본문을 잘 이해했는지를 계속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 기자들 모임이 그렇다. 기자들은 은혜를 받으려는 게 아니라 비판하고 분석하려고 해서 굉장히 힘들다. 연세대 채플에 가서 설교를 하고는 다시는 안 가겠다고 다짐을 했다. 미션스쿨인데 찬송도 안하고 강사를 소개해도 쳐다도 안 본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설교를 하겠는가.

 

교회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전하는 말씀을 비판하고 평가하려고 앉아 있다면 설교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의 열쇠는 주님

어느 집에 모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 그 집에 몰려왔다.

 

[마가복음 2:2]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그 집에 많이 몰려 들어왔냐는 거다.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를 받고 싶어서였다. 이것을 보게 되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은 예수님을 자랑하고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예수님만을 전하는 이런 교회들이 부흥한다.

 

[사도행전 11:20-21]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큰 환난으로 흩어진 평신도들이 안디옥까지 가서 주 예수를 전했다. 복음을 전했더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고 주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 그들은 평신도인데 신학적으로 전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단순하게 전했다. 주 예수를 전할 때 주님이 임재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다. 복음은 단순한 것이다.

 

교회의 부흥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전하고 자랑하고 찬양하고 예수님께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어주실 때 부흥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5:17b]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

누가는 가르침의 능력보다는 치유의 능력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 왜 예수님께는 병을 고치는 능력이 함께 했을까?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이 땅에 오실 때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오셨다.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사역을 감당하셨다.

 

[누가복음 3:21-22]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첫째로 하늘이 열리고, 두 번째로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강림하셨다. 셋째로 하늘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성자, 성부, 성령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도 보냄을 받은 자로써 그 귀한 사역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도 성령을 받고 나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 없이 사역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사역의 열매가 없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심령이 공허해진다.

 

[스가랴 4:6b]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목회는 영적인 것이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할 수 없다. 목회뿐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도 성령의 은혜가 필요하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명령이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신 주님은 광야로 나가서 40일 금식하시며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누가복음 4:14]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소문이 금세 퍼지게 되었고 예수님이 가는 곳 마다 예수님을 만나러 몰려들었다.

 

주님도 성령의 충만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왜 우리는 성령의 능력 없이 내 능력으로 하려니까 고난하고 멘붕에 빠진다.

 

[누가복음 5:18]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 병자는 전신마비의 상태인 중증 환자다. 그런데 사람들이 침상 째 메고 주님께 나왔다.

 

[누가복음 5:19]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어렵게 네 사람이 메고 왔는데 비집고 나갈 틈이 없자 포기하지 않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의 천장을 뜯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내려놓는다.

 

[누가복음 5:20]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셔야 하는데 그 중풍병자를 침상 째 메고 나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의 능력을 베푸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에 가장 먼저 믿음을 보신다.

같은 신앙을 가졌지만 어떤 사람을 풍랑 앞에서 찬양을 드리고 어떤 사람을 두려워 떤다.

 

[마태복음 8:26]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시기 전에 그들의 작은 믿음을 책망하셨다. 주님은 풍랑보다도 믿음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우리는 어떤가?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 풍랑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 가운데 풍랑, 상황, 문제보다도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신다. 우리는 내 인생의 풍랑이 빨리 해결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주님은 내 믿음을 보신다. 주님은 언제나 믿음을 보시고 평가하신다.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믿음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재물, 외모, 가문, 성품,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신다.

 

[마태복음 8:10]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15:26]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믿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믿음이 큰지 작은지를 먼저 보신다.

 

[마태복음 9:29]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마가복음 5:34]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누가복음 18:8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러분 왜 기도하지 않죠?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리, 교파 분열, 이단, 교인 수 감소가 아니라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많은데 신앙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가진 믿음인가? 신앙하는 믿음이가?

 

[누가복음 5:20]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분명히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를 고치시기 전에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을 바라보실 때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 때문에 병을 고쳐주셨다.

 

[히브리서 11:6a]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믿음인데 그 믿음의 척도는 물질이다. 그래서 주님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사람에게는 주인이 딱 둘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인가? 만몬, 물질인가?

 

물질은 가장 영적인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의 싸움이 십일조의 싸움이다. 아무리 신앙생활 오래 해도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내 인생의 주인은 만몬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으로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야고보서 2:17-18]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정말 네게 믿음이 있다면 행함으로 내게 보이라고 하신다. 본문에 나오는 친구들은 행함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보였다. 중풍병자이지만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살려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믿음이 있었기에 침상 째 메고 달려온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자신들의 믿음을 나타내 보였다.

 

진짜 믿음은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철학, 관념이 아니다. 믿음은 확신이다.

오늘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을 주님께 나타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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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15:57

20180610일 설교 말씀

 

이렇게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김은호 목사)

 

[시편 42:4-11]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것이 있다. 영적인 침체를 겪게 된다. 본문에 보면 낙심이라는 단어가 무려 3, 불안이 2번이나 나온다.

 

[시편 42:5a]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시편 42:6a]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시편 42:11a]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4절에 보면 마음이 상하였다는 말도 있다.

[시편 42:4b]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이것을 보게 되면 이 시인에게도 영적인 침체가 왔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도 영적인 침체가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도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엘리야 선지자,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영적인 침체가 있을 수 있다.

 

영적 침체의 원인은 엘리야 선지자는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기대가 사라짐으로 영적 침체를 빠졌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명예가 손상되었을 때, 인기가 사라지거나 제물들을 잃어버렸을 때 영적 침체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선을 행하다 낙심하는 경우도 있다.

 

[갈라디아서 6:9a]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언제 영적 침체가 오는가?

1.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질 때

[시편 42:4]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인은 과거에 여러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전에 나가 축제의 예배를 드렸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하나님의 전으로 나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할 상황에 빠져있다.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마음이 상한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나 홀로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데 눈치를 보며 홀로 나와 예배를 드리는 모습과 온 가족이 나와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비교하면 마음이 상한다. 예배를 드리고 싶지만 건강의 이유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도 다가올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지면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되어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침체에 빠지지 않으려면 예배를 여러분의 인생에 최우선 순위로 두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요나 2:4]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비록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예배드리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언제 영적 침체가 오는가?

2.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

[시편 42:7]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멀리서 보면 장관으로 아름다운데 가까이서는 떨어지는 소리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거대한 파도와 물보라가 덮친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날들이 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물질, 건강,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두렵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두렵다. 이럴 때 우리의 영혼은 낙심한다.

 

언제 영적 침체가 오는가?

3.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할 때

[시편 42:9a]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반석이신 하나님은 자신을 안전에게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이 시인은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그 하나님을 믿는데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냐고 한다.

 

고난이 너무나 크거나 시간이 길어지면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을 때가 있다. 하나님이 꼭 나를 잊어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 영혼이 낙심되고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언제 영적 침체가 오는가?

4. 비방과 조롱을 받을 때

[시편 42:10]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너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냐고 비방하고 하나님을 조롱한다. 그런데 대적들로 인한 비난의 칼이 내 뼈를 찌르듯이 아프다고 한다. 살을 찔러도 아픈데 뼈를 찌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면 그것이 내게 아픔이고 눈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런 영적인 침체가 우리 가운데 왔을 때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1.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시편 42:6]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요단 땅은 이스라엘을 뜻하고 헤르몬과 미살산은 이스라엘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산을 비유하여 말한다. 시인은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한다는 거다.

 

우리도 내 영혼이 낙심되고 불안할 때 과거의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기억을 해야 한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내 인생 가운데 그렇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지금과 미래의 인생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바쁘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2.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라

5절과 11절에 보면 시인은 지금 자신의 영혼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내 영혼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시인은 낙망하고 불안한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의 영혼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진정한 회개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시편 42:5]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42:11]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질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에게 외쳤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여전히 찬송하겠다고 한다.

 

여전히 찬송한다는 것은?

상황에 메이지 않고 반복적으로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

오드’(여전히) : 반복하여, 오히려

오덴누‘(내가 찬송하리로다) : 큰 소리로 찬양하다

 

시인은 자신이 낙망하고 불안한 상황에 있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변함없이 도리어 큰 소리로 반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에게 명령해야 한다. 내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해도 그 상황에 매임을 받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문에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가 아니라 여전히입니다.

 

인생의 밤중에도 찬송하는 것

[시편 42:8]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여기서 밤은 인생의 밤을 말한다. 사람들은 인생의 밤을 만나면 좌절한다. 죽음을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그런데 인생의 밤을 만나면 사람 만나기가 싫어진다. 밖에 나가기가 싫어진다. 입술이 열리지가 않는다. 그럴 때 가만히 있으며 안 된다. 공황장애로 간다. 의지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인생의 밤중에 여전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오륜의 모든 지체들이 인생의 밤을 만났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이다.

[시편 42:11b]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인생의 밤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인생에 밤 가운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이다. 시인은 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시편 42:11b]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지금은 내가 비록 지금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실 것을 믿었다. 이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

 

그렇다. 믿음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동굴은 한없이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터널을 아무리 길어도 그 끝이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인생의 긴 터널 가운데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타나심으로 도우실 겁니다.

 

영적인 침체를 겪으셨습니까? 예배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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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8 22:30

20180608일 금요기도회

 

포석과 전개가보지 않은 길 (이영길 선교사)

 

[시편 32:8-11]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선교를 하시는 분이다. 선교의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영적인 전쟁터에서 당신이 선교하시기 위해서 포석을 놓으신다. 포석은 전쟁을 하기 전에 중요한 거점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소명, 특정한 국가를 위해서 포석을 놓으신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인도로 부르실 때 부르신 곳은 비하르 수도인 파트라로 부르셨고 일정 기간 후에는 마을에 들어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부르셨다. 인도는 카스트 제도로 계층이 나누어져 있다. 그곳에는 가장 낮은 불촉천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700가구로 인구의 70%가 문맹이었다. 그곳의 마을 회관을 거처로 삼을 수 있었는데 글을 읽을 수 없으니 오디오 선교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점점 모였고 그곳이 마을의 교회가 되었다.

 

문맹 퇴치 학교를 열었는데 사람들이 점점 모였다. 쌀 포대자루 같은 곳에 책을 넣어와서 교육을 받았다. 교회 개척과 교육부터 시작하였다. 경제적, 영적으로 모두 부흥하게 되었다. 결국 그 마을의 문맹 퇴치율은 100%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의미 있는 사역 공간으로 허락하신 지리적 포석이었다.

 

제 인생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뀐 것이 가나안농군학교를 알게 된 것이었다. 가나안농군학교의 김범일 장로님이 오셔서 이곳에서 가나안 운동을 하기로 했다. 한국에 나와서 다시 만난 김장로님께서는 인도로 돌아가 당신을 인도의 대통령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한다. 나는 대통령님께 편지를 보냈고 4개월 후에 대통령 비서실에서 만나고자 연락이 왔다. 바쁜 대통령을 만나기 전 하나님께 20분의 시간만 달라고 기도드렸다. 대통령을 만나 20분이 되었을 때 왜 비하르를 택했냐고 물었다. 김장로님은 환자가 있는 곳에 의원이 필요하고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살기 위해서 인도가 살아야 하고 인도가 살기 위해서 비하르가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답변에 대통령은 너무 기뻐하였고 2번 더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지역적 거점을 허락하시는데 전략적 거점을 허락하신 것과 같이 관계적 포석을 놓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인생에서 김범일 장로님을 만나게 된 것은 놀라운 포석이었다.

 

인도는 지식과 연결을 강조하는 연결 지향의 개발형이었다. 나는 그것이 선교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세 번째 포석은 영역의 포석이었다.

내게 있어서 대학과 학문은 가장 친숙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채널로 선교를 하게 하셨다.

 

인도에서 18년을 지내다 아프리카 우간도로 부르셨다. 관계의 삶을 통해서 부르셨다. 인도의 비하르는 처절한 빈곤 지역이었다. 우간다로 가게 된 지역도 빈곤한 지역이었다. 빈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빈곤한 지역과 사람마다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받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없는 상황에서 줄 수 있는 엄두도 안 나지만 줄 수 있어도 주지 못하게 된다. 주는 연습이 필요했다.

 

깊은 마을에 한동대 학생과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소그룹으로 만들고 당신 들이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중 한 그룹에서 미숫가루를 만들겠다고 한다. 콩을 갈아서 먹고 팔면 자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가내 공장을 열게 되었다.

 

이 빈곤을 벗어나려면 주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우간다 쿠미 대학의 총장 자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3년 동안 아프리카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신 것이 생각나서 가서 보니 하나님께서 부르신 땅이었다. 우리가 준다고 했을 때 사람보다 귀한 것이 있겠는가. 내가 선교단체의 대표니까 먼저 아프리카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쿠미 대학을 가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데모를 한다. 교수는 돈을 못 받아서, 학생들은 교수가 안 나와서 데모를 했다. 너무 험악한 곳을 가게 된 것을 깨달았다. 학생이 없다. 하나님이 기독교 대학의 비전을 주셨는데 드디어 대학을 맡게 된 것이었는데 대학을 운영해 보니까 놀라웠다. 대학이 있을 수 없는 곳에 세워진 대학이었는데 그곳에서 대학과 국가를 보게 되었다.

 

우간다는 제자 훈련이 어려웠고 복음은 있었지만 주변 국가가 전쟁 중이었다. 남수단 난민이 우간다로 들어왔다. 비리비리라는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세계 최대의 캠프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간다로 보내셨는데 주변 국가의 젊은이들을 부르는 선교 거점, 그것을 통해서 국가를 세우는 비전을 주셨다.

 

난민들과 분쟁 지역의 학생들 60명을 전액 장학금을 주어서 가르쳤다. 어려웠지만 우리 나름대로 주는 연습을 하였다. 가난한 사람도 많이 모여서 합치면 남을 도울 수 있다. 남수단에 올라가 부통령을 만났다. 부통령은 한국에 가서 감사하고 싶다고 했다.

 

1년 전 한국에 들어올 때 책을 사가지고 왔는데 르완다의 학살에 관한 책이었다. 르완다를 재건할 때 민족 중심으로 재건했지만 국제 사회에 마음을 동시에 열었다. 그곳에 세드맥 교회의 목사님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남수단 자문위원회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우간다 대사와 인사를 하였는데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선교는 하나님이 친히 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선교의 방책은 하나님이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역적, 관계적, 영역, 국가의 포석을 놓으시고 그 네 개의 꼭짓점으로부터 영적 전쟁의 판을 키워 나가는 겁니다. 그 네 개의 꼭짓점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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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3 15:51

20180603일 설교 말씀

 

하나님! 목마릅니다 (김은호 목사)

 

[시편 42:1-3]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목마름의 고통을 당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목마름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경험했지만 목마름의 고통을 당하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목마름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이런 육체적 목마름뿐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목마름, 승리 대한 목마름, 민주주의에 대한 목마름, 그 밖에도 돈, 쾌락, 명예 등 많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은 누가 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저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시인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었고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시를 썼습니다.

 

[시편 42:1]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 갈급합니다

 

지금 시인은 자신의 갈급함을 목마른 사슴으로 비유하고 있다. 사슴이 동물 중에 가장 갈증을 많이 느끼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슴은 풀을 먹지 않고 일주일 이상을 견디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는 며칠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은 단순한 목마름을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라 죽고 사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인의 목마름은 영적의 목마름이다.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다. 갈급하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아라그인데 고대하다, 부르짖다, 헐떡이다.라는 뜻이다. 지금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만나주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 나에게 이런 영적인 목마름이 있습니까? 세상의 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만나주시지 않으면 지금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이 목마름이 있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목마름의 고통이 우리에게 없다.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개척교회 시절에는 있었는데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점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돈, 취업, 비즈니스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 그 영적인 목마름이 없다는 것이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잡스가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에 초정 되어 한 연설의 말미에 이런 얘기를 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배고픈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주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갈망하라는 거다. 배고픈 자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 배부른 사람들, 출세한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저는 갑질하는 대기업의 자녀들을 보고 분노하기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벌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릴 적부터 배고품을 알고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보고 자랐다면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사야 55:1a]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두 목마를 수밖에 없다. 지금 어떤 사람은 돈, 쾌락, 인기와 명예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런데 물질을 가졌다고 목마름이 사라진던가? 많이 배워 명문 대학을 나오면 목마름이 사라지던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이 있다. 이것은 어떤 것으로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채워질 수 있다.” - 파스칼

 

왜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많은 걸 가져도 부족할까? 우리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영적인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만이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도 내 영혼이 채워지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내 영혼의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

 

그런데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다.

 

[마태복음 5:6]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영적인 만족을 누린다.

 

[시편 107:9]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인격적인 관계다.

 

[이사야 41:17]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오늘도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찾으신다. 똑똑한 자들이 아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사슴이 되기를 바랍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

 

시인이 시냇물로 비유한 것은 우리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되시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13a]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인간은 가진 것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생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영적인 목마름이 온 것이다.

 

[요한복음 19:28]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주님이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외치셨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가 지옥에서 받아야 할 대표적인 형벌이 목마름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6:24b]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죗값을 대신하신 것이다.

 

둘째,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기 위해서다.

 

[요한복음 4:1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무엇일까?

[요한복음 7:37b-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여기서 말하는 생수는 지금 마시고 있는 그런 물이 아니다.

[요한복음 7:39a]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우리 안에 내주한 성령의 역사가 곧 생수를 마시는 것과 같다. 성령이 임하시면 잠자는 영혼들이 깨어난다. 우리의 영혼이 독수리처럼 날아오른다. 세상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평강이 임한다.

 

[시편 42:2]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하나님 갈망합니다

 

갈망하다는 말의 뜻은 목이 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는가?

[시편 42:2a]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한다.

 

[시편 42:3]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지금 시인은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조롱받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시편 42:3b]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한다. 고난 가운데서도 누리고 있는 평안을 모른다.

 

시인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양식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조롱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얼마나 마음이 상하는가. 오늘도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네 인생이 왜 그러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시인은 도리어 하나님을 갈망했다.

 

내 영혼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아무리 조롱하고 비난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을 판단한다. 기도에 응답이 있으면 살아계시고 응답이 없으면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시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조롱하고 비난해도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갈망한다.

 

갈급함과 갈망은?

그것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다.

[시편 42:2]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 시인은 지금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을 그토록 갈망했다. 예배가 이렇게 중요하다.

 

예배란 하나님의 생수를 마시는 것이다. 주님은 물을 달라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동문서답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목마르십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목마름을 겪고 있습니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당하셨습니까?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 그런 비난과 조롱을 받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오십시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그런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주린 영혼을 채워 주십니다.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기름부음을 허락하실 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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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22:41

20180601일 금요기도회

 

피난처 (원주희 목사)

 

[시편 62:1-12]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 ,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제가 섬기고 있는 샘물호스피스에 많은 후원을 하고 있는 오륜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샘물호스피스 사역으로 25년 째 말기 암 환자와 에이즈 환자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현재 19592명이 봉사 교육을 받고 섬기고 계십니다. 에이즈 환자들의 치과 진료를 섬기고 있고 자연 장지 3천 평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음으로 섬겨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6개월 전에 위암 수술을 했습니다. 1/3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위암 수술을 하면서 억울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25-27]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제가 죽음 앞에 있는 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사역을 하였는데 내가 암에 걸려 두렵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 했는데 다행히 두렵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에 약국을 시작하여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폐결핵이라는 병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사람을 섬기겠다고 다짐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게 됐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이 있기에 저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16-18]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아무리 건강하고 젊었어도 다 늙고 병들어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서 다시 다 만날 것입니다. 죽음 앞에 덜덜 떨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5-58]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말씀을 붙들고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마지막 시간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죽음 앞에 떨지 않는다면 세상 모든 걸 가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신 것은 나누라고 주신 겁니다.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욕심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다 내려놓고 사는 훈련을 하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까? 저녁에는 떠나는 연습, 아침에는 부활의 연습을 합니다. 오늘이 제일 젊은 날입니다.

 

제가 사역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님비 현상입니다. 안 좋은 시설은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호스피스 시설을 짓지 못하게 쫓겨 다녔습니다. 그때 붙들었던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시편 62:7]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다윗이 어려움에 쳐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내용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붙들라는 간증입니다.

 

[시편 62:1-2]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실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고난을 주실 때는 이유가 있다. 사명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시편 62:3]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다윗이 넘어지는 게 아니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쓰러진다는 거다. 하나님이 정리하시면 다 정리된다. 고난 앞에 두려워 떨지 마십시오.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사방이 우겨쌓도 하나님을 바로 알면 두렵지 않습니다.

 

[시편 62:4]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도 방해를 한다. 그래도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정리하십니다.

 

[시편 62:5-6]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1,2절의 구원이 소망으로 바뀌었다. 1,2절에서 크게 흔들리는 것이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시편 62:7]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지금도 어려움이 많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허락하셨다. 중심은 하나님만 바라봐야 한다. 암도 축복일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편 62:8]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백성들아라고 부른 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니다. 배반하지 않았던 백성을 부르는 것이다. 다 도망가도 용사가 남아 있었다. 어려움을 받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한다.

 

[시편 62:9]

9. ,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사람 믿지 말라는 거다. , 명예, 권력 아무것도 의미 없다. 하나님에 비하면 시시하다. 가지고 있돼 의지하지 말라.

 

[시편 62:10]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강압적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뺏지 말라, 갑질 하지 말라 그걸로 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기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재물은 정상적인 것이다. 그것이라도 의지하지 말라는 거다. 가져가지 못하면 내려놓으세요.

 

[시편 62:11]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우연히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편 62:12]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하나님 백성에게는 소망이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겁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끈을 놓지 말라고 어려움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돈이 있으면 사명이 떨어집니다. , 권력이 우리의 피난처가 아닙니다. 사명을 잘 완수하고 천국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아멘.

 

 

카라 | 2018.11.05 06:20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원목사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전에 원목사님께서 촛불집회 참석하지 않아서 전도기 안된다고 메세지를 전하신 것을 어느 집사님이 항의를 하듯 항변을 하면서 촛불집회를 지지하셨는데 지금도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분노를 했습니다.
통화틀 꼭 한번했으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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