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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2017년 07월 02일 설교 말씀

갈까MAGI 2017. 7. 2. 15:49

깨달음이 은혜다 (김은호 목서)

 

[사도행전 10:34-35]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우리의 삶에는 깨달음이 있다.

누군가의 만남, 신앙, 사건 사고 등으로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시편 73:17]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인은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왜 악인은 이렇게 형통하고, 진실되게 살려고 하는 자신은 왜 고통 가운데 사는지를 깨달았다. 악인의 형통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전도서 1:2]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나님이 없음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 깨달을 때가 많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깨달음이 곧 은혜다.

 

베드로의 깨달음.

[사도행전 10:35b]

깨달았도다

 

베드로가 깨달은 것은.

1.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

[사도행전 10:34]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사무엘상 16:7b]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들은 외모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판단하시고 평가하지 않으신다.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 앞에 붙들림바 되어서 쓰임을 받으려면 우리의 중심을, 마음을 잘 단장해야 한다.

 

베드로는 할례를 받은 자나 받지 않은 자나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례는 언약 백성의 표시다. 그래서 할례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 만이 언약의 백성이고 할례받지 않은 이방 민족을 개처럼 취급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신다.

[사도행전 10:35]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지금 베드로는 각 나라, 다 받으신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각 나라는 모든 민족을 뜻한다.

베드로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행하는 자신들 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방인 중의 이방인인 로마의 백부장을 선택하셨다.

베드로는 환상과 실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깨달았다.

 

우리 하나님은 구별은 하시나 차별하지는 않으신다.

1.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구별하셨다. 그 이유는.

 

1) 구원자로 오실 메시아의 탄생을 위해서

메시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

 

2) 구원의 계시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계시하셨다.

농사를 지을 때 못자리가 있다. 이스라엘을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못자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온 인류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셨다.

[창세기 12:3b]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인류다.

 

[마가복음 16:15]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로마서 10:12a]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로마서 10:13]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선택하여 구별하셨지만 구원은 차별 없이 모든 인류가 받기를 원하셨다.

 

2. 달란트의 비유

[마태복음 25:15]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나님은 그 재능에 따라서 구별하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셨다.

 

[마태복음 25:21, 23]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성경은 4달란트 남긴 사람과 10달란트 남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를 맡기신 것을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구별은 그 어떤 것을 종류에 따라서 갈라놓은 것이다.

차별은 정당한 사유 없이 외적인 종류에 따라서 불공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구별이 필요하고 구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을 차별하고 개처럼 취급했다.

[누가복음 18:11]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런 기도가 어디 있는가.

이건 기도가 아니다.

 

[누가복음 18:13b]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은 세리를 의롭다 하셨다.

 

노숙자, 배우지 못했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노약자라고, 외국인 노동자, 장애를 가진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 차별하여 부르신 적이 없다.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이념에 빠져서 누구의 편인지를 물을 때가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선택해야 한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차별이 사라졌다.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드렸다.

우리나라도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남녀 차별이 심했다.

복음이 들어오니 백정이 신앙생활하고 장로가 되었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이라는 책에서 소유가 생겨서 불평등과 차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차별을 해결하려면 소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나오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차별이 심한 것이 공산주의다.

어떤 이념도 뿌리 깊은 차별을 없앨 수 없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차별이 사라졌다.

[야고보서 2:1]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야고보서 2:9a]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차별하는 것은 죄다.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차별금지법.

우리 기독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 법안에 담겨있는 독소조항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 독소조항은 하나님이 죄라고 말씀하신 것을 제도화 시키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학적 성이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고 살도록 하셨다.

 

이제 성을 젠더라고 해서 사회적 성을 결정짓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가증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레위기 18:22]

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로마서 1:27]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면 멀지 않아 남자 며느리, 딸 사위를 받아야 하는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지금 보다 훨씬 심한 인구적 절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유일하게 에이즈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에는 에이즈 환자가 4만 명이 있다. 보균자까지 합하게 되면 에이즈 환자 6만 명으로 추산된다.

국가는 에이즈 환자의 치료를 위해 연간 4조 원을 사용한다.

이것은 국가적 재난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비판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게 놔두자고 한다.

이런 논리는 마약을 하는 사람을 그냥 방치해 두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도, 연쇄살인자도 사랑하신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동성애자만이 죄인인가? 아니다 우리도 죄인이다.

우리가 그들을 향하여 돌로 쳐서는 안 된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이것이 동성애자에 관해서 가져야 할 마음이다.

동성애는 누가 뭐라 해도 죄다. 하나님의 말씀이 죄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교회는 죄는 죄라고 반드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정죄하기 전에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이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그들을 향해서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그들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품어주고, 기도해 줘야 한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나 차별하시지 않으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