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7 특새 1] 예수님의 침묵 (김은호 목사)

 

[마태복음 27:11-14]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때늦은 후회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 중 때늦은 후회를 대표 적으로 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그 은을 도로 갖다 주면서

[마태복음 27:4a]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죽음을 선택합니다.

 

회개와 후회는 구별된다.

회개는 죄로부터의 돌이킴이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행한 그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한 것이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신하고 회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후회만 한 것이다.

뉘우치기는 했지만 주님께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예수님께 나오지 않고 자살의 길을 택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했지만 베드로는 주님께로 나왔다.

 

가룟 유다도 죄를 지었고 베드로도 죄를 지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이켰지만 가룟 유다는 때늦은 후회는 했지만 주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회개와 후회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회개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단순한 후회는 패배의식만을 가지게 만들고 멸망에 이르게 만든다.

 

성도는 후회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후회를 회개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뉘우치는 감정을 가졌는데 그 감정만을 가지고 회개라고 생각한다.

회개는 뉘우치는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께로 돌아와야 한다.

돌이키는 행동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돌이키지 않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그러나 때늦은 후회는 회개가 아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반드시 구원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지만 후회는 우리에게 패배의식만 가져다주고 결과는 사망이다.

 

이 고난 주간 우리 자신을 한 번 성찰하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 숨겨져 있는 죄악들을 찾아내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주께로 돌이키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총독 앞에 섰을 때 예수님께 이렇게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때 주님은

[마태복음 27:11b]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는 답을 하셨다.

그리고 12절부터는 침묵하신다.

보통 고발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부인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변호를 하시지 않았다.

빌라도가 답답하여 다시 묻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신다.

주님은 계속되는 장로들의 고소와 비난 속에서도 한 마디도 응답하시지 않으셨다.

그러자 빌라도 총독이 크게 놀란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쯤 되면 항변하기 위해서 맞고소를 하기도 하고 변론을 하기도 한다.

 

왜 예수님은 침묵하셨을까.


1.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그 일. 일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닮고 따르기를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면

내가 억울하지만, 자존심이 상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지만 내가 침묵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침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 악인들 앞에서의 침묵은 가장 위대한 변론이 될 수 있기 때문.

사실 지금 예수님을 음해하려고 하는 이 사악한 이들 앞에서 변론은 시간만 낭비하는 것과 같다. 이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겠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고소하고 고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고발한 내용은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짖겠다고 한 것.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로마인의 식민통치를 거역하고 반란을 꽤 한다고 한 것.

 

그런데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영적인 진리를 말씀하셨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진정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영적 진리를 아무리 얘기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침묵하셨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실 때가 있고 침묵하실 때가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물어올 때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나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내가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임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 되심을, 예수님이 나의 왕이심을. 이것만큼은 우리가 숨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은밀하게 세상 속에 숨어 지낼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던지 누구를 만나던지 우리의 정체성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오시는 그 마지막 날에 우리를 부인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내 정체성에 대해서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늘 주님처럼 내가 손해를 보고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해도 내가 참고 침묵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이 드러날 수 있다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