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80720일 금요기도회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김은호 목사)

 

[시편 16:2-3]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1절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시편 16: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신앙고백이 참 중요하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자신을 지켜주실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줄 수 없었다. 다윗은 기도만 하지 않고 행동했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와 고백까지는 하는데 행동하지 않는다. 주님께 피해야 한다. 다윗은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 주님께 피하는 가장 확실한 증표는 순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입술로는 주께 피한다고 하지만 순종은 없다.

 

정말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켜주심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편 16:2]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지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라고 고백한다. 다윗의 신앙고백의 특징은 언제나 나의 하나님이다.

 

[시편 31:14b]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이것은 다윗의 체험적 고백이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늘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면 이것은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고백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신분이 바뀌게 된다. 신분으로써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나는 그의 자녀가 된다. 예수를 믿으면 신분의 변화가 가장 먼저 온다.

 

사역적으로 보면 관계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우리는 그의 종이 된다.

 

다윗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알았다. 고백만 하고 끝내지 않았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하지 않고 끊임없이 물었다. 전쟁에 나갈 시기와 때를 물었다. 다윗은 적군의 상황을 묻지 않았다. 적군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윗은 언제나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이 전쟁이 하나님의 뜻인지 물었다. 그리고 때를 물었다. 우리는 때를 묻지 않아서 실패할 때가 많다.

 

정말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면 물어야 한다. 묻지 않고 행함은 죄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우리도 주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 모셔야 한다.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도 그 물음에 답을 주신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물음에 답을 주신다.

 

[시편 16:2b]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 물질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보다 더 깊은 신앙의 고백이 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사람들은 열매를 가지고는 감사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 열매만이 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이 나의 복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복이다. 내가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복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감사하면 그 소유를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복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복은 그 열매가 아니라 주님 자체가 복이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복으로 여기는 신앙을 가졌다. 다윗은 젊은 날에 엄청난 인기와 권력,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오직 주님만이 나의 복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시편 6:2]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다윗도 건강만 회복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깨달았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게 저주받은 사람,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처럼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들을 존귀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이라는 말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도 있다는 말이다. 천국의 백성들이 있다. 그런데 하늘의 성도들과 땅의 성도들은 차이가 많다.

 

하늘의 성도들은 영적 전쟁이 없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을 승리교회라고 말한다.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전투교회라고 말한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끊임없이 우리 안의 죗성과 싸워야 한다. 악한 영의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다윗은 말한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라고 한다. 왜 우리가 존귀한 자들일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인데 내가 그분을 믿고 존귀한 자가 된 것이다.

 

[고린도후서 4:7]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순간 주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가장 볼품없는 그릇이 질그릇이다. 그런데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졌다. 내 인생의 존재가치는 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그랬다. 외모, 실력, 스펙 이런 것들로 가치가 결정됐었다. 예수를 믿은 후에는 그릇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릇에 담겨진 것에 따라서 달라진다. 내 안에 보배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보배이신 주님에 의해서 내 가치가 결정된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의해서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당당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을 존귀하다고 하지 않는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소유한 자가 하나님의 눈에는 존귀한 자다.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존귀한 자로 보아야 한다.

 

[시편 8:4]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5]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이 우주에 비해서 볼품없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저 큰 우주보다도 나를 마음속 깊이 돌보시냐고 한다. 하나님은 내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일지라도 나를 생각하시면서 곤고 하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재를 나눌 수 있는 건 우리 밖에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개는 개같이 소는 소같이 사람은 하나님같이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에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어주셨다.

 

우리의 존재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가치 있게 산다.

 

[시편 16: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기쁨이고 존귀한 자들로 보았다. 하나님 역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스바냐나 3:17]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자식은 하는 것 없어도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기쁨을 준다. 관계 때문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관계 때문에 기쁘신 거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관계다. 십자가의 해산의 고통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누군가의 하나님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이 내게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복이 아닙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