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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1일 설교 말씀

 

누가 내 인생의 주인인가? (김은호 목사)

 

[말라기 3:10-12 ; 마태복음 6:24]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오늘은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돈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성경은 돈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죄악시 여기지 않는다.

 

[신명기 8:18]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시편 112: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돈은 나쁜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이다.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

1.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6:10a]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돈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온갖 부정과 갈등, 뇌물, 사치, 방종, 살인이 일어난다. 돈 때문에 깨어지는 가정이 너무나 많다.

 

2. 돈은 인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은 인격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돈은 인격이 없다. 돈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도구이다. 그런데 삶 보다 도구를 더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렇다. 우리의 삶의 도구인 돈을 사랑하고 노예로 살아간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함

[마태복음 6:2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주인은 하나님과 재물이다. 재물은 영어로 맘몬(Mammon)이라고 한다. 성경은 돈에 대해서 말할 때 단순한 물질이 아닌 가장 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탐심은 우상숭배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삼으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물질을 더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재물을 섬기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될지를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놀라운 방편을 주셨다. 바로 십일조이다. 십일조로 인하여 탐욕의 지배를 벗어나게 된다.

 

성경은 약 60여 곳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십일조를 부정하는 얘기가 너무나 많다. 어떤 목사는 십일조를 드리면 지옥 간다는 설교를 하기도 한다. 십일조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있다.

 

십일조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이유

1. 십일조는 율법이다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은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십일조를 드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2:15a]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예수님이 오심으로 율법은 폐하여 졌다. 재판과 제사 의식과 관련된 계명을 말한다. 다 폐하여 진 것이 아니다. 다 폐하여 졌다면 우리가 우상을 숭배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는 할례를 받지 않고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음식의 제약도 없다. 그런데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으로 지어지기 전 400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십일조는 율법 이전부터 시행되었다

[창세기 14:20]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라함은 왜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을까?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재물을 드린 것이다.

 

[창세기 28:22b]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드린 소원의 십일조 역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으로 주어지기 전부터 있던 것이다.

 

율법은 폐하였지만 그 정신과 원리는 남아 있다

[마태복은 5:17]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이 폐하여 졌기 때문에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혈의 의미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원리와 정신은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대로 육체의 할례를 받지는 않지만 마음의 할례는 받아야 한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드리고자 했던 율법의 정신은 남아 있다. 옛 언약의 백성은 십일조를 법으로 드렸다. 세금을 내는 것처럼 드렸다. 법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렸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법으로 의무감으로 드리지 않는다. 만약 지금 의무감으로 십일조를 드린다면 그런 십일조는 드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더 풍성한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2. 예수님도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으로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림을 모든 사람에게 자랑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없었다.

 

[마태복음 23:23]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철저하게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도 행하고 정의롭고 긍휼히 여기며 믿음으로 행하는 것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십일조만 드리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믿음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주님은 결코 십일조를 부정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십일조 그 이상을 요구하셨다. 은혜를 더 많이 받은 자에게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

 

내게로 돌아오라

[말라기 3:8]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하였다고 말씀하신다.

 

[말라기 3:9]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제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서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말라기 3:10a]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온전한 십일조란?

1. 청지기 신앙의 고백으로 드리는 것

[레위기 27:30b]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고 십분의 구는 나의 것인가? 그 말이 아니다. 십분의 십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 신앙의 고백으로 십분의 일을 드리라는 것이다.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일지라도 그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잠깐 맡긴 재물을 잘 지키겠다는 청지기의 신앙으로 고백하며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것을 도죽질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 재물의 원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언제나 믿음이었다. 성경을 보면 그 믿음의 척도가 물질이었다.

 

2. 의무가 아닌 은혜에 감격하여 드리는 것

우리가 왜 십일조를 드리는가? 구원받기 위함인가? 복을 받기 위함인가? 만약 그렇다면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에게는 너무나 유치한 것이다.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심에 감격하여 드려야 한다. 강요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나를 시험하여 보라

[말라기 3:10b]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불신앙이므로 금하고 있지만 십일조에 대해서는 나를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십일조를 드리면 드린 만큼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탐욕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손해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나를 시험해 보라는 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확증하는 말이다. 진짜 맞는지 뻥인지 확증해 보라는 것이다. 나의 계산대로 사는 것이 유익이 되는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이 되는지 확증해 보라는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약속된 복

1. 수고한 대로 거두게 된다

[말라기 3:11]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농경시대인 그때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고 하신다. 남보다 더 수고하고 투자했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 수고한 대로 그 열매를 거두게 하리라. 십일조를 하면 떼부자가 되게 하신다는 게 아니다. 수고한 대로, 뿌린 대로 그 열매를 거두게 하신다는 것이다.

 

2.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말라기 3: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우리의 삶의 터전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 가운데 저주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당신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군요. 이렇게 말하게 된다.

 

사탄의 전략

그런데 사람들은 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할까? 그것은 우리 안에 탐욕이 있고 그 배후에는 사탄의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이 땅의 몸 된 교회를 무너트리기 위한 전략이다.

 

[느헤미야 13: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제사장이 떠나게 되니 하나님의 전이 버림받았다고 말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대부분의 교회는 문을 닫는다. 교회는 선교도 해야 하고 구제도 해야 한다. 지난해 우리 교회는 구제와 선교에 40억 이상을 지출했다. 그런데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이런 선교적 사명을 이룰 수 없다. 문을 닫아야 한다.

 

일본교회는 십일조를 설교하지 못한다. 유럽교회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유럽의 교회가 어떻게 되었는가? 대부분 문을 닫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맘몬입니까?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누가 내 인생의 주인 인가를 결정하는 시금석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