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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3일 금요기도회

 

예루살렘을 사랑하라 (김은호 목사)

 

[이사야 66:10-14]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지지난 주에 해산하시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다.

[이사야 66:9a]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70년 만에 바빌론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회복시켜주시겠다는 것을 임신으로 표현하셨다.

 

[이사야 45:1]

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예레미야 29:10]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사야 66:9b]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그 아이를 갖도록 하셨고 해산도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신다. 이것은 반드시 그 말씀의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잉태 뿐 아니라 해산하시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약속의 말씀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66:7]

7.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진통하기 전에 해산을

고통 없이 해산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고통이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는다고 한다. 망한 나라가 다시 그 나라를 회복하려면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에 다시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다.

 

[에스라 1:1]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그 당시 최고였던 바빌론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바빌론은 무너졌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가라고 한다. 해산의 고통도 없이 순산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려면 임신이 반드시 되어야 하고 그래야 해산이 된다. 그런데 아무리 신앙생활 했어도 내 안에 임신된 아이가 없다. 그런데 해산을 기다린다. 지금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이게 문제다. 임신이 안 되는데 왜 태어나지 않냐고 하나님께 따진다.

임신합시다.

 

임신은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말씀이 내게로 와서 심령에 새겨지고 그 말씀을 붙들고 매일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때가 되면 열매가 나타난다. 해산이 된다.

 

[이사야 66:10a]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역대하 33:4a]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역대하 33:7b]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성경을 보면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두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름을 두겠다는 것은 내가 예루살렘에 있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곳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하 6:20]

20.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두시고 거기서 하나님의 자녀를 만나주셨다. 새 언약의 백성에게는 이 예루살렘이 성전으로써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가 성전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장차 우리가 들어가게 될 천국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21:2]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장차 들어갈 천국을 새 예루살렘이라고 말한다. 천국에는 교회가 없다. 천국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와 보좌가 있는 성전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라는 말은 구약 시대로 돌아가서 그 성전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다윗은 구약 시대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집, 성전을 사모하였다.

[시편 122:6]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평안 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시편 69:9a]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시편 122:9]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중요히 여겼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 누리는 복

1. 함께 기뻐하는 복

[이사야 66:10]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인한 기쁨이 얼마나 충만한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혼자 기뻐하지 말고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고 한다. 몸 된 지체들과 더불어서 기뻐하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기뻐하라는 거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교회는 교회고 나는 나다. 라고 한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면 내가 어려움을 당한 것으로 알아야 하는데 그냥 교회가 어려운가 보다 한다. 이건 그리스도의 지체로써의 자세가 아니다. 교회의 비전, 슬픔, 기쁨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입고 있는 지체이다.

 

[이사야 66:10b]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 슬퍼했던 자 들이 기뻐하게 된다. 그때 슬퍼하지 않았던 사람은 성전이 회복돼도 불평만 하고 화만 낸다.

 

[시편 119:136]

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불평과 원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다윗의 이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마음이고 아픔이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위로

[이사야 66:11a]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엄마의 품에 앉겨 젖을 빨게 된다. 엄마의 품을 위로하는 품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버지시면 교회는 어머니다.

 

[이사야 66:13]

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아버지는 호통을 쳐도 어머니는 늘 자식을 위로한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이사야 40:1]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도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제사 문제 때문에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위로를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받아야 한다.

 

예배시간에 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한다.

 

3. 말씀으로 인한 만족

[이사야 66:11]

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이사야 66:12b]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배고픈 아이가 넉넉히 먹고 즐거워한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3:2a]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영혼을 가진 존재이므로 떡으로만 살 수 없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먹어야 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의 꼴을 먹지 못하면 너무나 공허하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풍성하게 준비해야 하고 성도들은 이곳에 와서 넉넉히 젖을 빨고 영적인 만족감을 가지고 가야 한다.

 

미국의 어느 장로님은 108개의 교회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그는 그 교회들의 허물만 보였다고 한다. 그는 교회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몸 된 교회를 사랑함으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넉넉히 젖을 빤 것처럼 늘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4. 강 같은 평안

[이사야 66:12a]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하나님은 왜 평강을 강 같이 주신다고 하셨을까? 세상의 어떤 형편과 상관없이 평강을 누리게 하신다는 뜻이다. 고난, 핍박,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이 강 같은 평안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편안하면 안 된다. 평안해야 한다.

 

[요한복음 14:27a]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강 같은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다. 장차 우리는 천국에 올라가서 이 평안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 이 강 같은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고난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오늘 우리 안에 이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잉태되기를 원합니다.

 

아멘.